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Mar 06. 2022

좋은 카페란

Briget st.john 브리짓 세인트 존 

https://www.youtube.com/watch?v=aaP4A856qLc&ab_channel=BridgetStJohn-Topic



카페에 잘 안 갑니다.


옛날에 너무 좋아했었거든요.


저는 증산쪽에 사는데요, 동네에서 책 읽을만한 마땅한 카페에 가려다 


3월이 되어 날씨도 좋아진데다 토요일이라 걸어서 연남동에 가기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오데옹이라는 쇼룸을 구경해볼까 하고요. 친구가 유약 발라 구운 도자기로 된 십자가 사진을 보여줬는데 근사하더라고요. 손으로 만들어 구운 투박한 느낌이 아름답더라고요. 그래서 구경하러 가려 했습니다. 저에게 자주 있는 일인데, 닫았더라고요.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아무튼 발걸음을 돌려 




골목 안쪽으로 나아가는데, 그러자마자 





  길가에 왠 투박하고 저마다 다르며 톤 다운 된 여러 색의 가구들이 평화롭게 놓여 있는데, 평화로운 게 아니라 잘 볼수록 저마다 모두 신선하고 쿨하며 고급스러웠고 게다가 자연스럽게 늘어서, 놓여 있는 겁니다. 거칠게 낡은 아스팔트 바닥에, 투명한 파란 하늘 아래, 쾌청한 공기 속에, 주말의 환한 낮의 조용한 골목에 이렇게 죽 늘어서 있었어요. 베를린이 연상됐습니다. 머릿속에 짙고 인상 깊게 남아있는 이미지 중에 제가 찾아낸 겁니다. 너무 좋은 느낌을 받을 때 꺼내서 이렇게 보이게 되는 거예요. "베를린 같다."


  나는 오래간만에 완전히 확신에 차서 "여기야." 라고 말했습니다. 지가 뭐라고. 아무튼 "여기로 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바깥에서 안 쪽이 훤히 들여다 보이진 않아서 창 안을 잠시 들여다보고 나서야 오픈했다고 알 수 있었으며 안도했습니다. 오데옹보다도 여기가 닫혔있었더라면 나는 너무 아쉬웠을 겁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카페에 들어간 건 오래간만이었습니다.






  술도 안 마시고 해서 저는 길을 가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는 일, 카페를 찾아 걷는 일, 방에 있다가도 좋아하는 카페를 가는 게 노는 것의 거의 전부였었습니다. 이십 대 내내 그러다보니 나름 조금만 보고도 좋은, 그러니까 내 마음에 들 카페를 기가 막히게 골라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십대에 유럽(베를린과 암스테르담은 한 번씩이고 파리에는 네 번, 삼십대에 파리에 한번 더)에 가서도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만 했어요. 한 도시에 한 달씩 머물렀고요, 멀미가 심해서 버스나 택시 타는 것도 싫어하고 지하철도 그래서(갑자기 다른 장소로 저도 모르게 이동하는 기분이 싫기도 하고요) 걸어다니거든요. 숙소를 도심 중심부에 잡아요. 그러곤 걸어다녀요. 걸으면서 어디 카페 들어가는 걸 좋아했거든요. 서울에서도 그랬어요. 지방에서 올라와서 살다보니까 좋아하는 동네에 월세방을 얻어 살았었습니다. 산울림 소극장 쪽에 오래 살다 그보다 더 오래 상수역 쪽에 살았었어요. 그러다 서서히 일어난 일이겠으나 한 순간으로 느껴지는 언젠가부터 카페에 가는 일이 지겨워졌어요. 10년 쯤 반복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걸까요? '가서 뭘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건 저희 부모님이 저한테 하는 말, 술 마시는 친구들이 '맨날 카페 가서 뭐 하냐?' 라고 매우 많이 들었던 말이거든요. 이해가 갔습니다. 그 뒤로 오 년 정도가 지났어요. 밥을 먹을거면 밥집에 가고, 술 마실거면 술집에 갑니다. 우리 집도 아닌거 예쁜 장소 찾아가 사진 찍는 일에는 아주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사람이 카페마다 득시글거리는 것도 답답하게 여겨졌고요. 그리고 하루에 에스프레소를 들이부어도 상관없던, 하루 7잔 가량으로 섭취하던 카페인 양이 하루 한 잔으로 줄어들기까지. 그런데 왜 7잔에서 6잔, 그러다 4잔 이렇게 되지 않고, 하루 7잔에서 '세 잔 마셨는데 잠이 안 온거야...?', '두 잔도 못 마신다고?' 이렇게 되는 겁니까? 그렇게 카페에서 멀어졌습니다. 솔직히 비슷하다고 생각도 했어요. 인테리어를 잘 해도 못 해도 비슷하다. 까부는 거죠. 뭘 안다고. 카페를 하도 많이 다니고 좋아해서 좋아하는 카페 여기저기에서 일도 오래 했었거든요. 카페 마스터 하고 카페 오픈 하는 건 항상 꿈에 섞여있었습니다. 근데 어느 날 부터 카페가 별로 안 좋게 느껴지는 거예요. 꿈이었던 일은 하찮게 여겨졌습니다.  저는 더는 카페에 다니지 않고, 원래도 무리하게 많이 걷는 것, 산책하는 것 등 걷는 걸 매우 좋아하는데, 더 빡세게 걸어다녔습니다. 상수 살면 종로는 당연히 걸어서 놀러가는 곳이고, 한남동도 당연히 가고, 진짜 많이 걷고 싶은 날은 강남에서도 걸어 돌아오고요. 왕복으로 갔다 올 때도 있고, 편도로 걸을 때도 있어요. 이러다보면 밥 먹으려 음식점에 들어가는 일 외에는 좀처럼, 어쩐지 잘 멈추지 않게 됩니다. 걸으며 지나는 카페의 겉면을, 창 안으로 비치는 내부를 구경하다보니 점점 카페 하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잘 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은 것 같고, 점점 나는 나이가 드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왕성하게 한참 쌓고 다져야 할 나이였으나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네요.



  이게 다 서론이라는 게 믿어지시나요? 모두 쓸데없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카페에 가는 일이 왜 그렇게까지 시시해졌었나 그것도 우스운데, 매일같이 다니다 안 다녔었다고요. 그런데 이 카페는 이리카페의 옛날을, 처음 수카라에 갔던 감동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이 느낌은 뭐냐면, 어느 면을 보면 이런 느낌이 오는 거예요. 나쁜 게, 미운 게, 싫은 게 아무것도 없겠구나. 그리고 약간 커다랗게 공간에 흐르는 음악이 이 공간처럼 저에게는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모르는 음악이라 더 좋았고요. 압도됐습니다. 그다지 공간을 둘러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조금 얼고야 말았어요. 만석이 아니라 다행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엔 만석으로 보였어요. 거기에 들어차 있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고 근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장님 커플이 멋진 것도 봤어요. 더는 둘러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흥분했었거든요. 날씨와 어울리는 좋은 음악이 흘렀습니다. 실내는 환한 바깥에 비해 어두침침해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이 나 아늑했어요. 답답하지 않은 아늑함, 그늘진 아늑함,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려오고 음악 소리도 꽤 커다랗게 울렸지만 고요함을 느꼈습니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 저 음악이 나왔어요. 나무가 바람에 이리저리 빠르게 흔들렸어요. 따뜻하고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그보다 빠르게 나무잎 전체가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흔들거렸습니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그 말인 즉슨 생활에 독서를 다시 섞게 되었단 말입니다. 손 닿는 곳에, 침대 머리맡 테이블과 책상 위에, 가방 속에 두고 손으로 딱 잡고 종이 결을 만지며 눈으로 활자를 더듬는 일이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스며들었으며 무료한 생활을 무료한 거라고 깨닫게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렇다면 무료하지 않게 만들어 보라고 부추기기 시작한 겁니다. 



  아무튼 책을 읽으려 카페에 온 것인데, 마음속으로 다시 카페에 다녀야겠다. 여기 붙박이 해야겠다. 월요일에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여기 오면 되겠다와 같은 이 카페에 관한 생각을 하도 하고 있다보니 산란해져서 책이 잘 읽히지 않았어요. 사장님은 해외파겠지? 여기 꼭 베를린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요. 저는 사람이 많으면 주위를 잘 둘러보지 못합니다. 또 마음이 들떠서 보고 싶은 만큼 구석구석 공간을 구경할 생각이 안 났어요.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배가 고파져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고 기사 식당에서 돼지 불백을 먹고 또다시 이 가게로 돌아갔습니다. 영혼이 저기에 묶여 있었거든요, 이미. 




공간에 매료된 건 오래간만이었는데, 반갑게도 다시 신선해진 기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와인을 먹겠다고 앉았습니다. 낮에는 사람이 많았으나 저녁에 다시 갔을 땐 한산했어요. 그제야 나는 가게를 둘러봤습니다. 




  독일에서 수입한 거라는 레드 와인 값은 77. 이었습니다. 


  다 마셔갈 즈음 근처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만나기로 했는데, 여기서 영원히 나가고 싶지 않아서 그들이 이쪽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러곤 같은 브랜드의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PETNAT 와인도 한 병 더 마셨어요. 




    저에게는 이런 겁니다. 저에 비해 사장님의 취향이 뛰어나서, 제 눈과 가슴은 그 공간에 있는 동안 미운 건 아무것도 발견해낼 수가 없어요. 그건 평화입니다. 해방이에요. 이 카페에 있는 가구들은 다 좋고 비싼 거였으나 그만으로는 다 되는 건 아닙니다. 배치가 중요하잖아요. 바깥 화장실로 가는 문으로 가기 전에는 두툼하고 짙은 검은 커튼이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여기저기 걸려있는 빈티지 옷은 브랜드가 좋기도 좋지만 특이하면서도 조용한, 무게 있으면서 새로운 그 가게의 느낌과 맞닿아있어요. 그림 두 점을 구경했습니다. 사장님이 그린 것으로 보였어요. 계속해서 좋은 음악이 흘렀습니다. 저의 귀에는 생경하게 들려왔어요. 아는 음악이 나오지 않아 좋았습니다. 사장님들은 친절하셨으나 지나친 건 아무것도 없었고 가게처럼 차분하셨어요. 이토록 흥분한 건 저뿐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홍대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흥분을 또 느끼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는 이럴 때 스스로가 우스운 인간처럼 느껴집니다. 가볍고 별 볼일 없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배울 점이 있다는 건 좋은 거예요. 저는 내일도 거기에 갈 겁니다. 질릴 때까지 좋은 느낌을 흡수하겠습니다. 밖으로 나갈 구실이 생겼어요. 평일이면 저는 종일 집에서 꼼짝 않고 앉아있거든요. 본 적 없는 느낌, 가구나 물건은 본 적 있더라고 주인이 공간에 섞어 만드는 느낌은 사람의 색이 느껴져요. 제가 생각하는 취향이요. 손길, 고유의 느낌. 거기는 커다랗고 자유롭고 편안하고 고요하고 질 좋으면서도 위화감 없이 가슴에서 거기와 닮은 감정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이전글 서른 다섯, 엄마가 보고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