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봤다. 단박에 (16)
나를 알아봤다. 단박에(16)
“누구세요?”
인기척을 느낀 뒤 한참만에 김천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동네 어르신들의 소개를 받아서 이렇게 왔어요.”
“무슨 일로?”……..
김천만은 낮술을 하고 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입에서 썩은 냄새가 났는데, 하마터면 그냥 입을 막고 목에 칼을 쑤셔 넣어 죽일 뻔했다.
킬러는 이런 냄새를 제일 싫어했다.
“네 제가 꽃배달 서비스 사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주 및 김천 구미 지역 책임자를 구하고 있어요.”
“꽃배달 이요? 시골에 무슨 꽃을 배달해요. 장례식장 꽃이라면 모를까?”
설득을 해야 하는데, 킬러는 사람 죽이는 것보다 이런 게 더 힘들다고 느꼈다.
심지어 긴장이 되었는지 식은땀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땀은 흘리지 않았다.
“제가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분을 찾고 다닌다고 하니까, 동네 어르신들이 소개해 주셔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네? 제가요?”
김천만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바보처럼 웃었다.
한 달 고정수입 100만 원 보장과 건당 인센티브를 주는 조건으로 킬러는 김천만과 구두 합의를 했고, 그 첫 업무로 서울에서 여행 온 여자에게 남자친구가 보내는 꽃과 메모를 전달하는 것이라 설명을 했다.
킬러는 가방에서 카드와 펜을 꺼내 김천만에게 불러주는 글자를 카드에 쓰라고 했다.
“즐거운 여행 하세요.”
카드에 김천만 필체의 글자가 완성되었다.
신기한 것은 한번쯤은 왜 내가 카드에 글을 써야 하나 또 꽃배달을 왜 진짜 꽃으로 안 하고 가짜 꽃으로 하냐고 물어볼 만했는데, 김천만은 아무런 질문이 없었다.
운이 좋아 배우를 잘 고른 것 같았다.
아마도 김천만은 꽃배달 대행 서비스는 다 이렇게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제 타깃인 김연지만 한옥스테이에서 사람 많은 곳으로 나와주고 김천만이 조화와 카드를 그녀에게 전달만 하면 되었다.
만약 김연지가 끝내 읍내나 마트에 나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김천만이 한옥스테이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경우 보는 사람도 많아서 자칫하면 스토커 대역 연기가 들통날 가능성도 있었다.
제일 좋은 것은 김연지가 읍내에 한 번은 나오는 것이었다.
지금부터는 호텔방이 아닌 차 안에서 타깃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이 쉽게 풀리려고 그러는지, 다음날 킬러의 눈에 김연지가 어린 꼬마 두 명을 데리고 한옥스테이를 나와 버스를 타려는지 정거장에 서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망원렌즈로 버스 노선표를 보니 읍내로 가는 것이 확실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타깃은 예상대로 버스에 올랐고, 킬러는 김천만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입니다. 지금 바로 카드랑 꽃 챙겨서 나오세요.
“트럭은 일단 읍내 군청 주차장에 차 세우세요.
제가 여성분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다시 전화해서 알려 드릴게요.
반드시 카드 챙겨요… 알았죠?”
킬러는 통화를 마치고 조용히 버스를 미행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인 김연지와 두 꼬마는 킬러의 예상대로 읍내에서 하차 후 군청 뒤에 있는 애견샵에 들어갔다.
그녀와 살집이 있는 꼬마가 한옥스테이에서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는 장면이 자주 보였는데, 아마도 고양이 간식을 사러 읍내에 나온 것 같았다.
킬러는 바로 김천만에게 전화를 했다.
“김천만 씨 지금 어디세요?”
“지금 출발했어요.”
“잘했어요. 군청 주차장에 차 세우시고 거기서 대기하세요”
꽃이랑 카드는 챙겼어요?”
“네”
김천만이 아무 생각 없다는 듯이 드라이하게 대답했다.
“제가 여성분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다시 전화해서 알려 드릴게요.
반드시 꽃이랑 카드 챙겨요… 여자 이름은 김연지.. 카드 전달 알았죠?”
김천만은 이 이상한 꽃배달 서비스에 대해서 의심은 일도 하지도 않았고 곧이어 군청 주차장에 도착했다.
애견샵 쇼핑을 마친 세 사람은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고 킬러는 김천만에게 한번 더 통화를 했다.
“사거리 00 식당에 지금 들어갔어요.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기다리세요.
찾기 쉬울 겁니다. 여자 한 명에 꼬마 두 명이 식당에서 나올 겁니다.
잘 기억하세요.
여자의 이름은 김연지… 이름 말하고 꽃 전달..
그다음 카드… 꺼내 읽고 전달… 반드시 전달
오케이?”
킬러는 지금 똑같은 말을 김천만에게 수십 번 반복하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김천만이 너무 이 배역에 적역이라 아주 멍청했다.
김천만이 식당이 있는 읍내 사거리에 먼저 도착했고, 타깃은 여유로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망원렌즈의 앵글에 두 사람이 다 잡혔을 때, 킬러는 이 순간이 사람 죽일 때 보다 더 긴장을 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드디어 시나리오대로 김천만은 타깃에게 다가가 말을 하고 카드를 읽고 꽃을 전달하고 돌아섰다.
‘아… 카드를 전달해야 하는데…’
다행히 김천만은 빼먹은 것을 기억했는지 갈 길을 가지 않고 돌아서 카드를 전달했다.
멀리서 보니 너무 어색하고 바보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일단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CCTV도 있고 주변 목격자도 많았다.
이제야 제일 힘들게 구했던 스토커의 역할이 끝이 났다.
지금부터는 제일 쉬운 사람 죽이는 일만 남아서 그런지 킬러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마음이 놓였다.
킬러가 차의 시동을 켜고 마지막으로 타깃의 모습을 망원렌즈로 보는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타깃과 같이 있던 두 명의 꼬마 중 하나가 먼 거리에 있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렌즈의 거리표시를 보니 800미터였다.
그냥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제법 멀리 있음에도 운전석의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냥 기분이 나쁘고 찝찝해서 꼬마의 시선을 억지로 무시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나를 알아봤다. 그것도 단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