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의 시신 (24)
연지의 시신 (24)
형사인지 병원 실무자인지 분간이 안 되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병원 안치실에 들어온 김 회장은 연지의 시신을 본 순간 테이블 옆에 있는 손잡이를 잡지 못했으면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20년 전 사랑했던 아내의 시신을 병원 안치실에서 본 이후 또다시 그녀에게 얻은 유일한 혈육이 지금 김 회장의 눈앞에 죽어 누워있었다.
처음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누워있는 연지의 차갑고 창백한 얼굴에 김 회장의 손이 닿자 감겨 있는 연지의 눈이 파르르 떠는 것 같았다.
김 회장은 죽은 연지가 자기를 보고 눈물을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얼음 같은 김 회장의 눈에 눈물이 비치더니 눈밑에 고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고여있던 눈물이 영화 속 슬로모션처럼 아주 천천히 빰을 타고 내려왔다.
말없이 내리는 뜨거운 눈물은 턱에 고이더니 안치실 형광등 빛으로부터 모든 것을 차단했고,
서늘한 안치실을 천천히 데웠다.
김 회장은 떨리는 손을 뻗어 연지를 덮고 있는 어깨 아래 하얀 천을 천천히 내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안치실 담당자와 형사들은 이런 김 회장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하고 그냥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제야 신원 확인을 한답시고 형사로 보이는 한 사람이 말문을 열었다.
“음…. 따님인 김연지 씨 확실합니까?”
김 회장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날 서있는 눈으로 꼼꼼히 누워있는 연지의 몸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한 곳을 응시했다.
‘연지의 옆구리… 저것이 치명상이다.
자상의 흔적으로 보아 예리하고 큰 칼날이 갈비뼈 사이 횡격막을 지나 간까지 들어갔다.
연지는 숨도 쉬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고통을 안고 마지막까지 고통 속에 천천히 죽어 갔을 것이다.
이것은 전문 칼잡이 짓이다.’
단순 강도가 아닌 전문 킬러의 소행임을 직감했다.
나머지 자상들은 경찰의 눈속임을 피하고자 한 프로의 눈속임이었다.
정적이 흐르고 이제는 그에게 뿜어 나오는 섬뜩한 살기가 뜨거워진 안치실 온도를 내리기 시작했다.
시신 확인 절차가 끝나고, 안치실을 나오자 두 명의 형사가 말을 걸어왔다.
“어제 오전 성주군 인근 숲 속에서 피해자가 숨져 있는 것을 지나가는 스님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과학수사대 법의관 소견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예리한 도구에 의한 사망입니다… 음… 그리고 따님을 따라다니던 용의자가 있었습니다.
현재 살인 용의자는 성주군에 사는 43세 김천만이라는 사람입니다.
일정한 직업이 없이 따님의 주변을 스토킹 한 것으로 보이며, 우발적으로 따님을 살해 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용의자의 시신은 오늘 근처 저수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유서는 없었지만, 용의자 차량에서 피해자인 따님의 신발과 목걸이, 그리고 살해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칼이 발견되었습니다.”
김 회장은 두 명의 형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살해 현장은 어디인가요?"
“살해 현장은 시신 발견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 용의자 차량 발견 주변으로 추정됩니다.
살해 후 시신을 옮긴 것으로 보이는데,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려 정확한 위치 파악이 어렵습니다. 잠시만요…”
두 명 중 한 명의 형사가 방금 온 전화를 받았다.
“지금 용의자 차량에서 발견된 피 묻은 칼에서 용의자 지문과 피해자 혈흔이 일치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
형사들은 김 회장에게 고개를 숙이고 뒤로 돌아섰다.
수사가 제대로 시작도 아니한 채 종결되는 느낌을 받은 김 회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연지한테 받은 문자 메시지는 가짜였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신이 말해주는 치명적 자상의 흔적은 시골 스토커의 우발적 실수가 아니고 전문 프로의 솜씨였다.
김 회장은 조용히 울고 있는 심장과 세포 하나하나, 모공 하나하나를 진정시키며 다짐했다.
‘살인자는 분명 따로 있다.
이제부터 나의 슬픔과 눈물은 잠시만 미뤄두고 진짜 범인을 잡는다.
잡아 그냥 죽이지 않는다….
반드시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