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 Nov 01. 2022

Essay #7

10월 넷째 주 회고록

느지막히 기록으로 남기는 일주일 회고록입니다. 사실 근래 들어 어떤 글을 언제 쓸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바삐 살아간다는 핑계로 글 쓸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침 6시쯤 눈을 뜨고 새벽 1시가 넘어서 자러 가기 전까지 쫓기듯 할 일만을 하며 달려왔습니다. 궁색한 변명처럼 보였던 ‘바쁘다’는 말이 그저 말뿐이었는지, 정말 그렇게 숨 가빴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때,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바쁘다면 그 바쁜 얘기를 남겨보면 어떨까. 말로만 바쁘다고 하지 말고.


10월 넷째 주였습니다.


월요일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출근으로 시작합니다. 일요일에 아침을 맞는 집과 월요일에 아침을 맞는 집은 다릅니다. 조금 내려왔는데도 더 차가운 공기로 가득한 집에서 일어나고, 일주일을 맞이하기란 그다지 상쾌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적막한 그 공기가 주는 담담한 마음으로 일주일을 맞이하기에는 나쁘지도 않습니다.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갈 수 있는 건 그 담담함 덕분입니다. ‘오늘도 가야지 뭐 어쩌겠어.’ 혹자는 참 안쓰러운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마음이 그대의 생각보다 꽤 멋진 일들을 이루게 해줬습니다. 그렇게 매일의 출근이 쌓여 커리어가 되어가는 것처럼요. 일을 마칠 때쯤, 귀한 손님이 온 걸 알았습니다. 주말에 몰린 시험을 떠올리자면 공부도 못한 주제에! 감히 놀러나갈 생각을 해? 하는 생각이 괘씸합니다. 언제나 늘 그렇듯이 놀고 싶은 뽀로로는 성실하려 했던 자아를 쉽게 이겨버립니다. 귀한 손님과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유쾌했습니다. 간만에 정말 많이 웃었고, 그 덕분에 아주 행복했습니다. “이번 주에 오늘이 제일,,생각해보니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이 말은 안 되겠다. 이번 달 중에 오늘이 제일 많이 웃은 것 같아!” 라는 말이 절로 나왔으니까요. 한껏 기쁜 마음을 들고 집에 가니 약속했던 코칭 시간입니다. 비슷한 관심사와 전공을 가진 이에게 강점 코칭을 했습니다. 오늘은 날이 좋으려는지, 기나긴 장문의 감사 인사를 받았습니다. 아직 코칭을 하기에는 어리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그 말을 언제 들었냐는 듯이, 그 감사 인사가 ‘그렇지, 이 일은 진짜 너무 즐겁고 행복한 일이야.’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충만해진 그 밤에, 조금 더 좋은 성인이자 선배이자 코치가 되기 위해서는 배움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해버립니다. 그렇게 마감기한이 당장 내일인 레포트를 마감하겠다는 일념 하에, 노트북을 켭니다. 노트북 옆에 한참을 서 있기만 하던 모니터에 눈이 갔습니다. 웬일인지 평소에 짐 같던 그 모니터에 노트북을 연결했습니다. 동생이 두고 간 그 모니터 덕분에 화면을 크게 보며 밤새 연달아 3개의 레포트를 적어내려갔습니다. 그 밤에 가족 카톡방에 ‘동생 덕분에 듀얼 모니터로 할 일 한다잉’ 이라고 보내버렸습니다. 오늘의 교훈은 할 일을 미리 하되, 행복한 일이 많은 날이라면 많은 일이라도 행복하게 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요일은 어제 기운의 연속선 상이었는지 흐릿해집니다. 아무리 행복한 하루였어도 지나친 피로가 얹히면 흐려진다는 게 눈 뜨며 든 생각입니다. 어제 밤새 쓴 레포트를 내면서 문득 오늘은 좀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이걸 제출하면 중간 사이즈의 산을 넘은 셈이었으니까요. 인생의 진리는 바쁨은 언제나 한순간에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왜 나눠서 잔잔하게 바쁠 수는 없는 건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회사에서 우당탕탕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이제 해가 져서 밖이 어두워졌습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퇴근할 때 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6시만 돼도 어둑어둑합니다. 어두운 하늘은 꼭 오늘 하루가 얼마 안 남았다고 보채는 것 같습니다. 부랴부랴 집으로 가서 시험 공부를 시작합니다. 머리가 소화하기 정말 힘들어하는 빅데이터 분석 이론을 넣습니다. 식사도 1-2시간을 하면 체할 텐데, 그렇게 이어진 머리의 식사는 감사하게도 코칭으로 잠시 쉬어갑니다. 오늘은 상담을 공부하시는 분을 코칭했습니다. 어쩌면 저보다 훨씬 전문가라고 생각하니 어제보다 훨씬 긴장됐습니다. 괜히 말실수를 하지 않았는데도 잘못하고 있다는 찜찜함이 줄곧 있었습니다. 코칭을 잘 마무리했지만, 오늘 코칭은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경험해야겠다는 다짐을 남깁니다. 이 다짐은 또 어제처럼 배움을 이어가게 만들어버립니다. 이정도면 중독인가 싶지만, 마침 시험은 일주일도 안 남았고 공부는 이제 ⅓ 정도 마무리되어 가는 때라 영 여유롭지도 않았습니다. 눈이 나도 모르게 감길 때가 돼서야 하루가 끝나갑니다.


수요일은 여러 일정을 쥐고 시작합니다. 회사일 이후에 코칭이, PT가, 그리고 그 뒤에 저녁약속이 있다는 걸 알고 출근을 준비합니다. 그 중간중간 혹은 이후에 시험공부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침대에서 처음 떼는 걸음이 무겁습니다. 이 모든 일정을 다 버틸 수 있을까. 그럴 때마다 23살 때 친구들과 자주 외치던 말을 곱씹어봅니다. “해보기나 해봤어?” 이 말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말보다 더 승부욕을 불러일으킵니다. 나를 상대로 내가 결연한 자세를 취하게 만듭니다. 회사에서 비용 처리, 결과보고를 후다닥 마치고 나니 벌써 일주일의 중턱이 넘어가버렸습니다. 수요일 업무시간이 끝나면 새삼 한 주가 진짜 빨리 지나간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화요일까지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니!) 집에 가자마자 코칭을 준비합니다. 미리 보내주신 결과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면서 문득 어제 코칭이 떠오릅니다. 오늘은 더 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코칭에 임합니다. 5년 정도 멘토링을 하면서도 매일 ‘오늘은 어제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마음 졸이곤 했습니다. 이 마음이 어서 튼튼해져서 부담이 안 됐으면 좋겠다가도, 이 마음 덕분에 긴장감이 생겨서 감사하기도 합니다. 긴장감이 드는 코칭을 마치고 PT에 갑니다. 저번 주에 운동도 식단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PT쌤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럴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운동 수행 능력도 많이 떨어졌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머리를 혹사하느라 몰랐는데 그간 몸도 참 많이 힘들었겠다 싶었습니다. 그날 PT가 끝나고 PT쌤은 귀여운 호박통에 무설탕 사탕을 담아 주셨습니다. 이 사탕이 혹독한 한 주를 보내는 데 꽤 좋은 연료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사탕을 집에 고이 모셔두고 맥주 타임을 가지러 나갑니다. 꽤 춥고 늦은 시간인데도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어준 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시원한 살얼음 맥주와 함께 적당히 매운 마라떡볶이의 조합은 귀여운 호박통만큼이나 좋은 응원이 됩니다. 좋은 사람들에게 받은 응원으로 가득 차서 오늘도 시험 교재를 폅니다. 맥주 때문인지, 이미 목요일로 넘어간 시간 때문인지, 그냥 피로 때문인지 60점이 넘어야 하는 모의고사 점수는 반타작에서 오를 기미가 안 보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속상해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현명한 사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일이 잘 안 될 때는 일단 일어나서 차 한 잔 하라는 말씀을요.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안 되면, 잠깐 놓고 열 식힐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 덕분에 오늘은 자러 갑니다.


목요일은 이상한 마음으로 눈을 뜹니다. 어제 수북히 쌓인 캘린더 일정을 보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 것과는 다릅니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한 동료이자, 동갑이었던 친구가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녀의 취업을 계속 응원해왔기에 오늘은 기쁜 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그녀와 함께 한 시간에 제가 받은 평온함과 도움을 떠올리자면 아쉬움도 공존했습니다. 두 마리 토끼는 오늘 제 손에 잡히지 않겠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업무를 마무리하고 선배들이 마련해주신 자리에서 모두 모였습니다. 그녀의 마무리를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사실 이번 주에 또 다른 마무리를 예정 받은지라 유난히 마무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나의 끝도 어려운데 2개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시간을 한 1년 정도 거슬러 가서, 인턴과 과외 그리고 학교가 모두 다 마무리되어가던 때였습니다. 모두 만족스럽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작보다 제게 마무리는 한 100배 정도는 더 어려웠습니다. 그때 제 선배께 여쭤봤습니다. “마무리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나요?” 그 분도 여전히 어렵다는 말이 위로가 된 하루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2개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마무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지금, 다시 그 날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그녀의 마지막 근무일에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 시간 덕분에 우리가 여기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앞으로 볼 날이 더 이어질 거라는 희망을 봤습니다. 그녀를 보내고 집에 혼자 남아 어제에 기어 모의고사를 풉니다. 아예 안 되면 포기라도 하겠는데, 점수가 50점 후반, 그리고 60점을 결국 넘습니다. 감질맛 나게 하는 게 이 공부의 미치는 면입니다. 소맥과 그녀와의 이야기, 그리고 빅데이터로 하루를 가득 채우고 이제 잠으로 비우러 갑니다.


금요일은 유난히 부지런했습니다. 인생 첫 회사 야유회 날이었습니다. 수원으로 올라가기 전에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습니다. 서울에 아침에 운전해서 가기는 처음이라 설렘과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고속도로를 출근시간에 탄다니 정말 직장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보내고 본사 건물을 지나오니 더 그런 의젓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괜히 어른이 된 것 같은 만족감은 긴장감을 녹여버렸는지, 수원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쏟아집니다. 1시간 일찍 도착한 건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다 수포로 돌아갑니다. 부족한 잠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차에서 자버렸습니다. 30분 정도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한층 밝습니다. 찌뿌둥한 몸과 마음은 차에 그대로 두고 야유회 장소로 갑니다. 이 푸르르고 단풍으로 알록달록한 가을날에 야유회라니! 출발할 때 버거운 마음은 점점 흐려지고 조금씩 기운이 차오릅니다. 그리고 어제에 이어 이별을 예정 받은 선배와 함께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왠지 먹먹한 마음이 들 줄만 알았는데, 어느샌가 그의 미래를 응원하게 되어갔습니다. 더 좋은 곳에서 더 행복한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의 말씀을 들으면서 서서히 퍼졌나봅니다. 그제서야 이별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해가 아직 떠있을 때 야유회를 마치고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족 그 누구도 없었지만, 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녹진히 쌓인 피로가 다 풀리는 듯 했습니다. 그대로 이불 속에 들어가니 차가운 공기를 느낀 집은 아득해집니다. 오롯이 온기를 느끼며 잠깐 잠에 들었습니다. 가족들 소리에 잠에서 깬다는 게 새삼 따듯한 기분이라는 걸 느끼며 눈을 떴습니다. 그대로 시험 교재를 펴고 모의고사에 붙어있는 딸이 안쓰러운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잠시 대화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잠들고 나서야 다시 교재를 폅니다. 부디 내일이 어서 지나가길, 이번 주가 빨리 넘어가길 바라면서.


토요일은 ‘드디어!’ 하는 마음에 눈이 떠졌습니다. 오늘만 지나면 다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살면서 대학 발표가 나는 날, 오래 준비한 프로젝트 발표를 앞둔 날, 입사 결과가 발표된 날 다 긴장됐습니다. 하지만 근 2년 새 취침시간까지 깎아가며 달려오면서 꽉 붙든 믿음은 ‘일하면 여유로워지겠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한 주는 그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회사생활도 가족과의 시간도 그 외에 다른 소중한 것들을 아낄 새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과부하가 오기 직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사수가 “적당히 해!” 하신 말씀은 이런 가혹한 스케줄을 경고하신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침 일찍 그 종지부를 찍으러 중학교로 갔습니다. 새삼 ‘우리 반에 들어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웃긴 짤들로 전하는 사진이 문에 붙은 걸 보자니 웃음이 납니다. 그 사진을 찍어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친구들에게 보냅니다. 그들의 노고에 찬탄을 보내며. 시험은 이전의 것과 달리 끝나면 바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시험장에서 두 번째로 나가며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 영어 시험이 있든 말든 지금 당장 동기를 만나 실컷 놀 작정이었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갔음에도 동기는 선뜻 집으로 초대해줬고 그간의 일 이야기를 나누었고 맛있는 점심식사를 대접해주었습니다. 칼칼한 샤브샤브와 첫 모금부터 시원했던 맥주는 ‘수고했다!’는 말보다도 더 짙은 응원이었습니다. 샤브샤브 때문인지 든든한 응원 때문인지 부른 배로 간만에 버스에 탔습니다. 운전을 시작하며 버스를 탈 일이 확연히 줄었습니다. 새삼 버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안내 멘트,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어폰도 없이 그 소리와 따듯한 햇살을 쬐며 바깥 구경과 졸기를 반복하다보니 집에 도착합니다. 내일 영어 시험을 잘 보려면 그간 못 잔 잠을 잘 자야 한다는 핑계로 낮잠에 빠집니다. 겨우겨우 잡아주던 졸음이 한꺼번에 터졌습니다. 눈 뜨니 해는 없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랑 집 근처 카페에 가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려던 참이었습니다. 이번 주 내내 연락 하나 제대로 하지 않은 딸에게 먼저 전화해서 “살아는 있냐!” 라고 서운한 마음을 토로하셨던 터라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그런 야속한 딸은 자기가 코칭을 받는 일정이 있다는 걸 카페로 걸어가는 길에 울리는 전화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한 1시간 30분을 전화로 코칭 받으면서 그간 품어온 나의 목표와 열망, 생각을 가감 없이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기만 했어야 하는 엄마 아빠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집에까지 걸어가면서 팔짱을 꼭 끼고 싶었던 건 아직 잘 살아있다고, 엄마 아빠를 떠나 악 쓰고 있지 않고 곁에 잘 붙어있을 거라고 말하기 부끄러워서였습니다. 그 날 밤에는 사놓고 결국 한 번도 펴보지 못한 영어 책을 두고 모의고사를 끄적였습니다. 다음 주엔 반드시 시험과 이별하리라, 이 이별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며 잠들러 가기 전까지요.


일요일은 대망의 마지막 시험날이었습니다. 아침에 가는 길이 생각보다 일러서 버스 중간에 내려서 한참을 걸었습니다. 시험은 왠지 모를 부분은 멍 때렸고, 왠지 모를 부분은 잘 풀렸습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시험이 끝나고 가장 후련한 노래들만 들으며 집에까지 걸어갔습니다. 중간에는 전화도 하면서요. 길다면 긴, 하지만 분명히 정신 없던 스케줄이 끝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묘한 느낌이 든 건, 그 스케줄을 다 마치고 다시 저번 주와 다름 없이 짐을 챙겨서 내려가는 루틴이 주는 반복감이었습니다. 분명 다 마무리했는데 다시 시작될 것만 같은 이 불안은 뭐였을까요.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신경 쓰기 싫으니까 청소하고 빨래를 하며, 그저 웃기만 하면 되는 드라마를 보며 자꾸 생각합니다. ‘내일부터 이어지는 하루는 진짜 뭐 안 해도 돼.’ 웃프게도 오늘도 코칭이 있었습니다. 특히 저보다 일 경력이 긴 분이라 걱정이 많았습니다. ‘내가 도움이 안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시험이 다 끝나고 평정심을 찾아서인지 그날따라 유난히 경청이 잘 됐습니다.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자 자연스럽게 예리한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끝에 “코치님, 밖에서 유료로도 하시나요? 나중에 또 하게 될 것 같아서 문의 드려요.” 라는 최고 극찬을 들어버렸습니다. 사실 이번 주는 그저 hectic!(이 단어 발음 자체만으로 숨 가빠서 바쁨 그 자체가 잘 느껴진다)하기만 한 게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노력으로 그 이상의 경험이 켜켜이 내 안에 쌓이는 기회로 가득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Essay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