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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Mar 22. 2023

Work #11

아침에 일어나 나를 출근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출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는 게 좋아." 첫 정규직이 되어, 20층에 가까운 높은 빌딩에서 멀리서 보이는 롯데타워와 빽빽한 빌딩들을 배경으로 그 말을 들었다고 상상해보세요. 학교 다닐 때도 숱하게 들었던 말이어도 그 무게는 남달랐어요. 회사생활의 첫 발은 '이른 출근'이구나!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 '일찍' 출근하기 시작했어요. 비단 5-10분 빨리 간 게 아니었어요. 60~90분 정도 일찍 가곤 했는데, 그렇게 후다닥 간 이유가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나를 출근하게 한 건 편안한 안정 때문이었어요. 커리어 시작과 함께 첫 자취를 시작했어요. 내 힘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속절없이 지각쟁이가 되는 거죠. 더욱이 첫 운전이었기 때문에 남들은 10분이면 갈 거리를 저는 20분이나 걸렸어요. 안 그래도 서툰 운전에 사람이 붐비는 차와 사람들은 더 무서웠어요. 자연스럽게 출근을 일찍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웃픈 이야기였지만, 지각이 걱정되시는 분들께 '환경을 뒤짚어보기'를 추천 드려요. 그 속에서 어떻게든 편안한 루틴이 될 때까지 부지런함을 발휘하게 될 거예요.


    또 하나는 안정에 초점을 맞춰볼까 해요. 그 전에, 안정은 흔들림이 없이 안전하게 자리 잡는 것이라는 뜻이래요. 재밌는 건, '안정'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물리학적 뜻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뜻과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그 뜻은,


어떤 계(系)가 외부의 작용에 의하여 미소한 변화를 받아도
본디의 상태로부터 별로 벗어나지 않고 일정한 범위 이내에 있는 상태.


라고 해요. 외부의 작용이 준 변화가 '미소하다'는 데 눈길이 갔어요. 입가에 은은한 웃음이 한 조각 올라가는 단어인 미소는 '아주 적다'를 의미해요. 그 정도로 작은 변화를 생각해볼까봐요. 한 발로 중심을 잡는 나를 떠올려보면, 거기에 누군가 손가락으로 톡! 건들면 넘어지지 않겠죠? 그때 우리는 안정적이에요. 하지만 누군가 손바닥으로 퍽! 밀면 한 발로 선 자세에서 벗어나 바닥에 철푸덕 넘어질 거예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일은 한 번의 퍽! 치기로 많이 바뀌게 됐어요. 바로 온전한 내 시간이 '이제는 진짜' 필요하다는 갈망이 누군가의 힘이 가득 실린 손바닥이었어요. 처음 회사에 입사하면 내 시간을 찾기가 어려워요. 언제 어떻게 내 일을 해야할지 모르거든요. 선배들과 팀장님의 이야기에 몸을 맡기고 일하고 적응하기도 벅차곤 했어요. 다행스럽게도 그 시간은 비교적 금세 지나갔어요. 이제 언제 나의 쉬는 시간이고, 언제 나의 열일 시간인지가 분간 가기 시작하죠. 그때부터는 일에서 중심을 잡아가요. 쉽게 말하면, 업무시간의 루틴이 생기는 거죠. 아침에 와서 밀린 뉴스레터와 메일을 정독하고 회신한다. 오늘 하루 할 일을 워크로그에 작성한다. 어제에 이어서 진행하는 일 혹은 우선순위가 급한 일 등을 오전에 집중해서 처리한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거나 산책을 한다. 오후시간에는 비교적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업무를 한다. 차츰 안정된 일 상태가 형성돼요.


    아이러니하게도 일에 적응할수록 내 시간이 차츰 없어졌어요. 일의 양이 많아져서, 예상치 못한 일이 닥쳐서, 그 외에 다양한 이유로 안정이 깨져요. '변화가 미소하지 않구나!' 느낀 건 저녁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였어요. 시간을 작게 나누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방해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을 찾게 됐어요. 결론은 출근 전, 해가 뜨는 시간을 내것으로 만들게 된 거죠. 이때 일어나서 가만히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며 머릿속을 정화하기, 평소에 하고 싶었던 공부해보기, 미뤄둔 집안일 하기 등 1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집중해요. 시작이 반이다. 이 말처럼, 하루를 내가 원하는 대로 시작했으니 남은 하루는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감을 만드는 거죠.


    그 뒤에 맞이하는 출근은 달랐어요.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한 티스푼 정도 더 얹은 거죠. 사실 대단한 변화는 아니에요. 하지만 '안정'의 물리학적인 뜻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사소한 변화에도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이어가는 근육을 조금씩 키워카는 거죠.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울퉁불퉁한 근육은 아니에요. 그래도 언젠가 정신 차리고 보면 잔근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은 커지겠죠.


    한 마디로, 요즘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건 그 출근 전 시간이 주는 힘 덕분이에요. 정말 작은 자극에도 쉽게 피로해지고 불안정해지기 십상인 삶을 항상 비슷한 컨디션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힘. 그런 힘이 더욱 더 강해지기를 기대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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