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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ul 11. 2022

Essay #6

어른에게도 생각의자가 필요한 이유

[핵심 모아보기]

1. 나의 잘못(원인)은 무엇이고, 그 결과(파장)은 무엇인가?

2. 이 잘못을 복기할 공간(생각의자)가 내게 있는가?

3. 이 잘못을 돌아보고 성찰할 충분한 시간이 존재하는가?


실수를 어떻게 대처하는 게 나을까? 어릴 때 우리는 ‘잘못한 즉시 사과하라’고 배운다. 일단 여기서부터 쉽지 않다. 잘못했음을 인정하기란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한편, 생각해보면 어릴 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못한 까닭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땐 지킬 자존심도, 부담스러운 책임도 크지 않았다. 그때 나는 부모님의 질문에 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너가 잘못한 게 뭔데?”


사과보다 나의 잘못한 점을 인식하기는 더욱 어렵다. 나의 행동이나 말이 원인이 되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잘못의 출발점인 나의 행동과 말만 보면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예컨대, 짧고 단호하게 말하기는 말이 서툰 어린 동생에게는 잘못이 될 수 있지만, 리더로서 말할 때 필요한 자질이 될 수도 있다. 즉, 상황에 따라 잘못을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어린시절과 20대 신입사원은 ‘잘못했다’고 말하기 쉽다. 20대 신입사원은 어린시절이 지나고 10년이나 지났어도 회사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어린아이와 다름 없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방법을 터득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그 둘의 또다른 공통점은 잘못한 점을 인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의 행동이 상대에게 혹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그 파장을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나의 실수의 전말은 서투른 촉박함 그 자체였다. 우선 시간이 조여왔고, 교육이 진행되기 전에 통제할 변수가 많았다. 더욱이 처음으로 100명에 달하는 많은 인원과 소통하고 있었다. 이때 핵심은 한 마음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속도다.(속도는 빠르기를 나타내는 속력과 달리, 방향의 의미로 지닌다.)


하루는 교육 대상자들에게 팀장 후보자로서 이수하는 교육을 안내하는 메일을 보냈다. 발신 직후, 교육 대상자 소속사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내년 팀장 후보자 목록이 바뀌었다고. 해당사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지 지금 생각하니 아찔할 정도였다. 하지만 메일은 이미 갔다.


목록이 변경됐다는 전화를 듣고, 바로 메일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인원이 많은 만큼, 속도가 느렸다. 당황한 손가락은 회수 버튼을 여러 번 누르기에 이르렀다. 조금 뒤, 회수 처리됨을 알리는 메일이 여러 개 왔다. 하나씩 열어보니 회수된 현황은 다 다르게 나왔다. 인사팀 직원 분은 다시 연락을 주셨고, 솔직하게 메일 회수를 했으나 이미 메일을 열어본 분들이 계시다는 답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 내가 파악한 잘못은 인사팀에 최종 확인하지 못하고 중요한 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그로 인한 파장은 해당사의 팀장 후보자임을 어쩌면 대상이 아니었을지 모르는 분들에까지 전달한 점, 그로 인해 해당사에 인사 시스템에 혼란을 빚은 점이었다. 그 다음 잘못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회수를 여러 번 해서 메일 회수조차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워진 상태였다.


이 모든 혼란의 전화와 클릭 소리를 들은 선배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솔직히 말씀 드렸더니 돌아온 답은 놀랍게도 질책이 아니었다.


일단 일어나. 잠깐 쉬었다 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당장 메일 회수하고 정정 메일을 최대한 빨리 써서 잘못을 인정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선 선배를 따라 탕비실로 향했다. 잠깐 쉬면서 깨달았다. 열이 오른 전자기기의 폭발을 막기 위해 퓨즈가 끊어져버리는 이유를.


퓨즈가 끊기지 않으면 열로 인해 전자기기는 폭발한다. 그 폭발은 아주 짧은 시간에 사람을 다치게 하고 물건을 파괴시킨다. 이후의 폭발 처리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이들에게 상처로 남는다. 열로 인해 퓨즈를 순간 끊지 못하면 그 후폭풍은 전자기기 하나에서 끝나지 않고 넓게 오래 퍼져버린다.


우리의 생각보다 자주, 잘못은 그때가 아니라 잘못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또 발생한다. 잘못이 일어났을 때, 우리 부모님께서 생각의 의자에 앉아 스스로 상황을 복기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을 기억하는가? 어른이 되어도 나의 생각의자와 시간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잠시 쉬는 동안, 전화 주었던 인사팀에서는 올해 교육 인원 수를 오히려 늘리기로 결정하였다. 즉, 메일을 이미 받은 사람과 바뀐 목록에 있는 사람 모두 팀장 후보자 교육에 입과시킨 것이다. 되레 인사팀에서 갑자기 명단을 바꿔서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또한 내가 생각한 파장과 달리 메일 항의 문의는 단 한 건도 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인원과 함께 할 수 있는 해피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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