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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Mar 21. 2022

Essay #1

담담하게 살기

눈을 뜨니 목이 칼칼했다. 밤새 건조해서였을까. 혹은 몸이 안 좋았던 부모님을 주말에 뵙고 와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나도 모르게 스친 바이러스 때문이었을까. 따듯한 물을 마시며 바깥을 보았다.


흐린 날이었다. 하늘은 색이 없었다. 누구나 기운을 읽기 쉬운 날인 터라, 더 기운을 내려고 걸어갔다.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5,000보를 넘게 걸었다. 시원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가 마지막 걷기일 줄 알았다면 5천 보에서 멈춰서 택시를 타지 않았을텐데.


회사에 가니 으슬으슬 추웠다. 직감상 몸살이었다. 몸살 감기약을 먹고 코로나 검사를 해보니 음성이었다. 그 날 퇴근하기 전까지 회사에서 먹은 알약만 해도 5개가 넘어갔다. 버티다 보니 어느새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수능 때 손에 땀이 맺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신기했던 것처럼, 아플 때 식은땀이 나보기도 처음이라 어찌할 줄 몰랐다.


그날 밤은 침대와 혼연일체였다. 계속 자고 자도 몸살 기운이 떨어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런 데도 코로나가 아니라니 신기할 정도였다. 가벼운 감기 하나 없이 보낸 지난 2년이 무색했다.


25살 3월 중순의 월요일은 처음 혼자 아픈 날이었다. 내 몸이 아파도 출근과 일, 그리고 집안일까지 신경 써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 아프면 병원까지 부모님이 나를 업고 가셨다. 그 이후 가만히 누워서 자고 쉬기만 하면 약과 밥을 챙겨주셨다. 그래서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내가 먹을 밥을 만들고, 먹은 뒤에 치우고, 방을 수시로 환기하고 이런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가족들과 떨어져서 아파보니 유난히 그들의 공백이 크게 느껴졌다. 아프면 서럽다고 했던가? 사실 서러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서러움이 아닌 슬픔과 감사를 느꼈다. 우리 가족은 한 명이 아프면 다같이 아팠다. 어릴 적 그게 가족의 화목함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한편, 모두가 아픈 와중에 나는 아프면 돌봄을 받았다. 그 말인 즉슨, 누군가는 아픈데도 나를 돌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분명 아파도 출근해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쉬지도 못하고 나를 살폈다.밤새 이불 덮어주고 열을 재면서 가슴을 졸이면서.


아프지 않아도 퇴근하고 오면 다 내팽겨치고 뻗어버리고 싶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몸 하나 아픈 것도 힘든데 내 아픈 몸을 뒤로 하고 다른 사람을 보듬어야 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면 참 철없는 시간이었다. 나의 것보다도 무거운 책임과 나이를 지고도 당신들은 한 번도 그 짐이 무겁다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마음이 무거운 날이면 당신들께 내 무거운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에도 아픈 하루를 보내는 내내 당신들은 계속 전화로 상태를 살피며 내 짐을 나누어 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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