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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Mar 31. 2022

Essay #2

스스로 살기

25년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이 10대에 본가에 나와 살았다고 했던가.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집을 떠나본 적 없었다. 기숙사에 발조차 들인 적이 없었다. 여행은 언제나 친구들, 혹은 학교에서 우르르 몰려갔다. 오롯이 한 공간을 나 혼자 차지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좋은 기회로 일을 시작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 가지 고민은 거리였다. 집에서 직장까지 거리는 꽤 멀었다. 더욱이 대중교통으로 편도 2시간이 넘는 곳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운전 면허가 없다. 이런 경우는 선택지가 없다. 바로 혼자살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짐을 살 때는 여행 떠나는 느낌이었다. 한 주간 임시로 회사 숙소에서 지내며 쓸 생필품, 옷, 세면도구를 챙겼다. 마치 정기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설렘은 잠시였다. 그 다음 주에 회사 숙소에서 나와 혼자살이를 위해 다시 짐을 싸면서 깨달았다. 짐싸기가 반복되면 여행은 일상이 된다. 그 일상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를 인정하는 일상이다. 결국 내가 이동하는 곳도 사람 사는 곳임을 알고, 조금이라도 수고를 덜고 싶은 간사한 마음에 하나둘씩 포기가 는다.


자취하기 전에 지인들이 말했다. 혼자 살면 막상 집으로 가기 어려워진다고. 내 시간, 공간이 중요해져서 집에 잘 안 가게 된다고 했다. 단연코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내가 엄마를 아무리 사랑해도 엄마의 말을 끝까지 집중해서 듣지 못하더라고. 그러면 괜히 불효하는 느낌이야.”였다. 그 말을 들은 뒤, 매번 짚을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가족의 말에 집중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아니었다. 내 일에 바빠서, 내 생각에 빠져서, 내 삶이 먼저여서. 집에서 살 때 나의 빼기는 슬프게도 가족들이었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을 바꾸는 건 ‘돈’이라고 했다. 일을 하니 돈이 들어오고, 혼자 사니 돈이 나갔다. 그렇게 나의 철옹성 같던 습관이 쉽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습관은 바로 아침 챙겨먹기이다. 나는 눈 뜨자마자 밥 먹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전날 밤 내일 아침식사 메뉴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아침이 내 삶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내 한 몸에다가 집까지 관리하려면 아침밥은 사치였다. 씻고 나가기에 바쁜 것도 사실이지만, 설거지, 문 단속, 청소, 세탁, 각종 정리 등이 발목을 잡는다. 그때 깨달았다. ‘아, 다들 배가 안 고픈 게 아니라 배고픔을 느낄 새가 없는 거구나.’


두 번째 습관은 젓가락으로 과자 먹기다. 어느날 동생이 젓가락으로 감자칩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왜 젓가락으로 과자를 먹느냐고. 그의 답은 손에 묻지 않아서였다.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일이나 공부를 하며 과자를 먹어도 내 물품에 흔적이 묻지 않아서 좋았다. 그 이후로 언제 어디서든 과자를 젓가락으로 먹었다. 혼자살이 첫날, 부각을 뜯으며 든 생각은 스스로도 놀라웠다. ‘방금 설거지를 했는데, 또 설거짓거리가 생긴다고? 말도 안 되지.’ 손으로 부각을 집어먹는 일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혼자살이는 우선순위를 세우는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밥 먹고, 짐 싸고, 씻는 그 모든 순간에 우선순위를 세운다. 1순위를 하기 위해 나머지 순위들은 밀려난다. 아침식사 대신 출근이, 젓가락 세척보다 배고픔 해결이 먼저다.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다. 하나씩 포기하면서 깨닫는다, ‘아, 그동안 모든 행위가 가능했던 건 나와 함께 한 사람들 덕분이었구나. 그동안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고, 과자 먹은 젓가락을 치운 건 모두 내가 아닌 그들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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