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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Mar 31. 2022

Essay #3

어리숙하게 살기 1

가장 좋아하는 어린 시절 사진이 있다. 세발자전거를 타는 나와 뒷좌석에 앉은 동생이 카메라를 가만히 바라본다. 나는 기억도 안 나는 그때, 동생은 자전거를 보면 자연스럽게 뒤에 앉았다. 최근까지 그 시절을 떠올리면 ‘어린 나이에도 동생을 책임지는’ 누나였음에 책임감을 되새겼다.


성별이 달라도 우리 남매는 꽤 살갑다. 좋아하게 된 친구에 대한 고민, 과제와 일에서 터지는 울화통,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식탁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를 좋아한다. 그날도 우리는 오랜만에 거실 tv로 드라마를 보며 조잘조잘 떠들었다.


퇴근하고 자취방에 오니 동생이 확진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로 인해 다음날 출근 대신 주민센터와 병원에 갔다. PCR을 받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땠다. 그런데 문제는 확진 문자였다. 그 문자나 증명서가 없으면 가족이어도 PCR을 받을 수 없었다. 이미 자가키트로는 음성이 두 차례 넘게 나왔고, PCR이 필요했다.


그 아침에 그는 자고 있었다. 당장 업무가 밀리고, 그 업무를 상사분들이 해야한다는 상황이 답답했다. 당장 다음 주에 업무를 많이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고민을 깊어만 갔다. 집에서 곤히 자는 그를 깨우려고 10번도 넘게 전화를 했다. 그의 전화는 그때도 지금도 무음모드다.


그때 떠오른 건 아빠였다. 전화해보니 출근해서 집에 없었다. 그 다음 엄마에게 전화했다. 당신도 출근 중이었다. 당신은 나의 전화를 받고 나오기 직전 동생에게 약을 먹인 것이 본인 탓이라고 했다. 그 약기운에 깊은 잠에 들었을 거라며.


괜시리 화가 났다. 그가 아픈 것을 망각했고, 그의 목소리가 찢어져가던 것이 희미해졌다. 오로지 평소 그가 새벽 4-5시까지 깨어있느라 아침에서야 잠드는 일상을 사는 사람이라는 게 자꾸 뇌리에 밟혔다. 그 순간, 엄마는 전화로 나의 분노를 듣고 크게 걱정했다. 아픈 애가 무슨 죄냐며.


그를 깨우는 데 거의 혈안이 되어갔다. 애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던 차에 동생이 일어났다. 부스스한 정신에 그는 증빙서를 보내주었다. PCR이 끝났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남은 건 집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엄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아픈 애가 무슨 죄냐, 약 먹인 본인 탓이고, 일찍 나온 본인 탓이라며. 집에 돌아가는 그 길에 그 말이 그렇게 속상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동생과 엄마, 그 누구도 잘못이 없었음을. 오히려 지금 불안해서 잘못을 빚어가는 건 나라는 걸. 잘못이 칼이 되어 상처를 내고 있다는 걸.


처음이었다. 미안함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엄마, 내가 아직 어른이 덜 됐나봐. 앞으로도 내가 모자란 소리 하면 지금처럼, 계속 그랬던 것처럼 잘 이끌어줘.” 그 말에 엄마 목소리는 훨씬 밝아졌다. 그런 와중에도 혹시 나도 아프지는 않은지, 출근 안 해도 괜찮은지를 물었다. 전화를 끊고 어리석었던 나와 너무나도 상반되는 그녀의 생각에 눈물을 삼켰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지금껏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그 사진일 수 있었을까. 우리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식탁에서 나누다가 드라마를 같이 볼 수 있었을까. 멀리 떨어져서 살기 시작하고 난 뒤부터 카톡을 자주 주고 받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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