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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Mar 31. 2022

Essay #4

어리숙하게 살기 2

결국 확진이었다. 문자를 봤을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럴 수 있지, 싶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당신들의 몸이 좋지 않았던 때가 불과 며칠 전이었다. 멀리 떨어져서 산다는 핑계로 그들의 아픔은 몰랐다. 당신은 아픔도 잊은 채 하루종일 약 먹고 잠은 잘 잤는지 걱정이었다.


긴장된 건 그 다음 전화부터였다. 회사에 연락 드렸다. 혹시 나로 인해 선배들이, 혹은 그들의 가족들이 아픈 건 아닐지 걱정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마치 보고를 전하듯이 직속 선배들께 소식을 전했다. 그 전화와 문자를 준비하던 마음은 그야말로 한숨이었다.


언젠가 한 선배가 차를 태워다 주시며 말했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할 때, 내가 입사하기 전에 회사 선배들이 한 약속이 있었다. 누군가 확진이 되더라도 그 사람을 탓하기 않기로.


탓하기는 쉽다. 분노도 사그라들고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정확히 말하면 탓하기를 ‘택하기’ 쉽다. 그걸 알고 있었고, 그렇게 했기에 각오를 해야했다. 나에게도 탓하기의 화살이 쏟아질 수 있다.


차츰 선배 한 분 한 분이 연락을 전했다. 사수분의 전화가 울렸다. 나의 공백으로 그의 업무가 지금도 많은데, 더욱 늘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확진 전까지도 나의 업무량과 컨디션을 신경 써주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화를 받자마자 툭 튀어나온 말은 “죄송합니다.” 였다.


그 외에 할 말이 없었다. 그간의 감사한 일들은 모두 그 시간으로 인해 죄송해질 수 있었다. 그의 답은 “뭐가 죄송해, 몸은 좀 어때?” 였다. 그 말에 눈물이 왈칵 났다. 안도감과 죄송함이 뒤섞였다. 울음소리가 전화기를 넘어가지 않게 참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전화를 끊을 때까지 잘 쉬라는 말뿐이었다. 그 다음 주가 끝날 때까지 그는 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전화로 묻는 건 오직 안녕뿐이었다.


뒤이은 연락도 따스할 뿐이었다.몸 건강히 오라는 연락, 잘 챙겨먹으라며 보내준 음식 등 누구도 화살을 쏘거나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나는 본인과 가족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존재였다. 이 위험한 생각은 내 안에서 사라졌다.


선배들은 자신의 걱정을 녹이고 남을 먼저 보듬는 사람들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 내 걱정을 불화살로 쏘아대던 나와는 결이 아예 달랐다. 그날 전화를 다 받고 난 뒤, 불안감이 해소되며 밀려온 건 안도감이 아니었다. 바람이 벗기지 못한 옷을 해가 벗긴 이야기처럼 바람이었던 내가 해가 되지 못했음을, 그것도 가족에게 바람이었음을 느낀 속상함이었다. 부끄러움이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 깨닫게 해준 감사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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