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만나요!”라는 일본어 디엠에 곧장 구글맵 링크 3개가 온다. 하나하나 처음 본 식당들이다. 현지인 식당의 묘미를 또 느끼길 기대하며, 생선회, 육회, 나베 등이 군침 돌게 하는 식당을 하나 골라 보낸다. 곧장 내일 저녁 8시 넘게까지 일하니 9시에 예약되는지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 식당이 5시에 여니 그쯤 연락할 거라고 답장이 온다. 이거 꿈일까?
2.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렌트카를 운전해 후지산을 본다. 한국과 완전 반대 방향으로 가는 도로, 인도로 바로 들어가는 차들, 자욱한 안개에 부쩍 짧아진 가시거리로 나와 메이트는 잔뜩 긴장한 탓에 피곤하다. 저녁 8시까지 운전하느라 녹초가 되버린 메이트가 그답지 않게 40분 넘게 낮잠을 잔다. 그를 보며 그제서야 걱정이 밀려온다. 괜히 그녀와 만나자고 했나?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지?
3. 걱정을 뒤로 하고 발걸음은 식당으로 향한다. 회색 높은 건물 1층에 이자카야처럼 보이는 식당이 3개나 있다. 그녀가 디엠으로 보내준 식당 이름을 일본어로 틀린그림찾기 하듯이 비교한다. 건물 안쪽에 작은 입구에 적힌 글자로 식당을 찾았다. 식당 입구가 마치 어제 본 오뎅바 입구 같다. 미닫이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면 신발 벗는 곳이 보인다. 고개를 살짝 들면 사람들이 다 좌식으로 앉아있다. 주방에서 2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여성 서버가 식당을 한 번 쭉 훑는다. 그녀에게 “We had a reservation. Name (일본인 친구의 이름)“이라고 영어로 말해도 그녀는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다. 예약이 몇 시냐고 적힌 번역 앱을 보여주기에 손 모양과 함께 영어로 Nine을 외쳐도 고개가 갸우뚱하다. 설마 이 식당이 아닌가!
4. 마침 일본 친구에게 디엠이 온다. 도착했다고 들어가 있냐고 묻는다. 잽싸게 들어와있다고 보내자 가게 문이 밀린다. 그녀가 나타난다! 그 친구와 서버 사이에 간단한 일본어 대화 후 가장 안쪽에 비어있던 테이블로 자리를 안내 받는다. 세프가 운영하는 다찌석도 좋았지만, 우리가 안내 받은 자리가 더 좋았다. 좌식처럼 보이는데 앉으면 테이블 밑에 내려가는 공간이 있어서 다리를 그 아래로 내려놓게 되는, 일종의 좌식과 입식의 조화 같은 자리다. 일본 친구가 여기 밥 맛있다며(here rice is good!) 메뉴판을 준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가 가득한 탓에 그녀에게 메뉴 주문을 맡긴다. 서버와 사뭇 긴 대화를 나눈다. 우리 너무 많이 먹게 되는 건 아닐까?
5. 메뉴를 기다리는 와중에 일본 친구가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흰 포장 봉투를 건넨다. ‘프레젠또!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선물은 그녀가 일하는 가구 회사의 제품인 복슬복슬한 그레이색 담요다. 내일 도쿄로 넘어가는데, 도쿄는 시즈오카보다 춥다며 설명한다. 이러면 내가 준비한 선물이 너무 약소해지는데. 아무리 내가 직접 만든 비즈 반지라고 해도 그녀의 사려깊음과 마음 씀씀이에는 비할 바가 못될 거 같아서 차마 내 선물을 주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때 메이트가 자랑스럽게 반지를 꺼내 들며 일본 친구에게 건넨다. ‘it’s ring that she made’라고 말하며 나를 가리킨다. 부끄러운 마음에 영어로 중언부언 반지를 설명한다. 그 반지를 받아들며 너무나도 감사해함과 동시에 본인이 오늘 입은 빨간 가디건과 커다란 은색 귀걸이, 지금도 착용하고 있는 핸드폰 케이스가 한국 강남 지하 상가에서 사온 거라고 자랑한다. 한국 제품의 만듦새가 좋고 저렴한 게 좋았다며. 그녀 덕분에 시즈오카가 너무 좋아지려고 한다.
6. 테이블 위에 기본 찬이 올라온다. 콩, 소라, 아귀간. 잠깐, 아귀간? 이게 기본 찬이라고? 먹어보니 이건 기본이 아니라 요리다. 우리 테이블에 있는 세 접시를 본 뒷 테이블에 한국인이 있었는지, 속삭인다. ‘우리는 저런 거 안 줬는데.’ 뒤이어 복어 튀김, 육회, 회 한 접시가 나온다. ‘고레와 난데스까?’라고 물어보니 친구는 복어 튀김을 번역기로, 육회를 영어로 horse meat라고, 회를 tuna라고 말한다. 아니, 육회가 말고기라고?! 한국에서도 못 먹어본 말고기 육회를 먹어볼 기회다. 메이트는 복어 튀김을 처음 먹어본다. 모든 게 새로움 천지다. 내가 먹기엔 한국에서 먹은 복어 튀김보다는 조금 더 바삭한 식감과 짭조름한 맛이 인상적이다. 메이트는 제주에서 먹은 말고기 육회에서는 말고기 특유의 냄새가 있었는데, 이번 말고기 육회는 그 냄새가 아예 안 느껴진다고 한다. 같은 재료를 써도 어떻게 맛을 내느냐에 따라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동시에 매번 같은 여행(먹고 보고 놀고)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 이어질 수 있나? 물음표가 그치지 않는다.
7. 갑자기 뒷 테이블에서 한 여성 분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온다. 그 분은 일본 친구를 톡톡 치더니 반갑게 대화를 나눈다. 일본 친구는 그녀와 그 동행인 남성 친구가 다 친구라고 한다. 세상에나, 시즈오카는 이렇게 작은 동네였어? 일본 친구와 그녀가 한참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친구가 남성 친구를 가리키며 그가 도쿄에서 왔다고 도쿄 맛집을 추천 받아보라고 권한다. 그는 본인의 소개를 기다린 것처럼,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나와 메이트랑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도쿄의 맛집과 카페를 추천해주려고 본인의 핸드폰을 한참 뒤져가던 그를 보며 또 짙은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따듯한 친구들이라니. 역시 유유상종이다.
8. 우리를 맞이했던 여성 서버가 다른 테이블에서 난처하던 차다. 나와 메이트가 일본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지, 그 테이블의 손님이 묻는다. “한국 사람이세요?” 오, 그 손님과 동행은 한국인 커플이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자신들은 우리가 받은 3개의 기본 찬을 받지 않았는데 가격에 포함되었다고 말해도 서버가 알아듣지 못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유창한 영어와 바디랭귀지, 그리고 서툰 일본어를 섞어 일본 친구에게 그 커플의 자초지종을 알렸다. 그러자 일본 친구가 서버에게 일본어로 말하자 그 서버가 바로 이해했다는 표정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영수증을 가지고 왔다. 그 커플은 감사합니다, 땡큐, 아리가또고자이마스를 연이으며 가게를 나갔다.
9. 우리 테이블에 날치알, 김, 다진 참치가 올라간 일본 공기밥이 나왔다. 우리가 주문한 적이 없어서 서버에게 에에? 라는 반응을 보이자, 일본 친구와 신나게 대화를 나누던 여성 분께서 “메리 크리스마스! 프레젠또!”라고 외친다. 이 사람들의 온기에 녹아버릴 지경이다. 얼마 뒤 그 여성 분과 동행이 나가는데 우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언젠가 또 시즈오카에 오면 그들과 이번처럼 우연히 마주치길 바라며.
10. 시간은 어느새 11시를 향해간다. 가게엔 나, 메이트, 일본 친구뿐이다. 일본 식당은 손님이 없어지면 가게를 일찍 닫기도 한다고 알려주며, 일본 친구가 한 잔 더 할 건지 묻는다. 새벽 늦게까지도 여는 카페 겸 바가 있고, 그곳도 아주 재밌다며. 이러면 또 안 갈 수 없다. 식사가 마무리되어 가던 차에 여성 서버 분이 라스트 오더를 물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국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고 여럿 봤다며 추천을 구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18살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꽤 많이 봤다. 취향 메이트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격앙된다. 그 흥분을 서버도 느꼈는지, 내가 말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일본 친구가 번역해줄 때를 간절히 기다린다. 영어로 말하는 나를 또렷히 보고 들리는 말을 핸드폰에 검색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일본 친구를 보며 그녀의 번역에 경청한다. 시종일관 모든 대화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줄곧 무릎을 꿇은 자세였던 그녀에게서 연결감과 동시에 묘한 생경함을 느낀다.
11. 만족스러운 포만감 때문인지 새로운 흥분 때문인지 모를 기분으로 카페 겸 바로 나선다. 역시 그 곳의 남성 사장님과 여성 사장님도 일본 친구의 친구다. 그 둘은 커플이 아닌 동업자라고 소개해주며 그 가게의 최애 메뉴를 소개한다. 메이트는 그녀의 추천에 따라 진저라떼를, 나는 일본에 있는 내내 먹은 말차라떼를 주문한다. 바삐 눈동자를 굴리며 가게를 구경하던 차에 음료가 나온다. 흰 종이 잔에 ‘감사합니다’ 한국어가 또박또박 적혀있다. 그 잔 밑에 일본어로 감사의 말을 적지 않을 수 없었다. 예쁘게 적힌 한국어에 비해 못난 일본어에 속상해할 새도 없이, 일본 친구가 또 누군가를 반긴다.
12. 그는 누가 봐도 호탕해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는 인상이었다. 일본 친구는 예전에 디엠으로 추천한 시즈오카 차 맛집의 사장님이 이 친구라며 소개한다. 그 남성 분은 우리에게 내일 자신의 가게로 놀러오라고 하고, 나와 메이트는 아쉽게도 내일 오전에 도쿄로 이동하는 일정이라고 한다. 그러자 왜 도쿄를 가냐며 그가 묻고, 우린 도쿄 일루미네이션을 보러 간다고 한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일본 최고의 일루미네이션은 시즈오카에 있다며 당장 보러 가자고 한다. 밤 12시가 다 넘은 때 그와 일본 친구, 나, 메이트는 그의 봉고차를 타고 일루미네이션을 보러 간다. 그가 계속 영어로 자신만만하게 자랑하는데, 웬걸! 일루미네이션을 하던 곳에 불빛이 하나도 없다. 알고 보니 10시에 소등한 것이다. 너무나도 쑥스러워하는 그는 우리 호텔까지 우리를 데려다준다. 우린 내일 아침 그의 카페가 여는 시간에 어떻게든 그 카페에 가겠노라 약속하고 헤어진다.
13. 12월 말, 2025년을 마무리하며 나와 메이트는 시즈오카와 도쿄를 다녀왔다. 인스타그램에 도쿄 크리스마스와 연말 소식이 흘러 넘쳤지만 나와 메이트의 최애 여행지는 시즈오카였다. 일본 친구가 내년 2-3월에 한국에 오기를, 우린 또 내년에 시즈오카처럼 다른 나라의 작은 도시에서 그 나라 사람과 분위기에 푹 빠지는 여행을 하길 기대하며 2025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