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할머니의 세상은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
우리 할머니는 1936년생이다. 이번에 전입신고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할머니의 나이는 올해로 여든 다섯. 내가 지금껏 살아온 생애를 두 번 남짓 더 살아야 할머니와 비슷해진다. 삼 개월 넘게 지켜본 할머니의 일상은 아주 단조롭다. 할머니들의 삶은 원래 이렇게 단순한가 싶기도 하다.
여든 다섯 할머니의 하루는 단순하다. 일곱시쯤 일어나 버티칼을 걷는다. 밖을 한 번 둘러본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남은 잠을 청한다. 아홉시쯤 아침을 챙겨 먹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점심 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고 건너편 아파트 단지로 산책을 나선다. 이십 분 남짓한 산책을 마친 뒤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저녁 시간이 되면 저녁을 챙겨 먹고 해가 질 때쯤 버티칼을 친다.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방에 들어가 잠을 잔다. 종종 빨래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것 외에 특별한 이벤트는 없다.
“사는 게 지겹다.” 할머니와 다시 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외출 준비로 부산스러운 내 뒤로 한숨 같은 할머니의 말이 지나간 적이 있다. 그 말의 무게가 가볍지 않아 순간 멈칫 했었다. 하지만 이내 ‘원래 삶이 다 그렇죠 뭐’라며 가볍게 되받아 쳤다. 진짜 한숨이 그 뒤에 들리는 듯했으나 애써 무시하며 집을 나섰다. 다행히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사는 게 지겹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할머니의 그 말은 자꾸 곱씹게 된다.
나도 잠시 내 삶이 지겨운 적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음에 주체성을 잃어갈 무렵, 사는 게 지겹다고 느꼈었다. 부유하는 상태로 지냈던 그때 처음으로 삶이 지겹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시간이 언젠가 지나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내 내 삶은 다채로워지고 바빠졌다. 그러나 나는 안다. 할머니의 지겨운 삶은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을.
나이가 들면서 굳어지는 몸은 행동반경을 좁게 만든다. 혼자 압구정 현대백화점을 제 집 드나들 던 할머니는 이제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가는 것도 힘겨워한다. 어느 날은 몸이 제 맘 같지 않아서, 어느 날은 그냥 귀찮아서. 길어지는 코로나는 할머니의 삶을 더 단순하게 만들었다. 교회에서 운영하던 실버대학(원래 노인대학이었지만 재학생들의 원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과 아파트 노인정은 문을 닫았다. 모일 곳이 없어진 할머니들은 가끔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는다. 안부는 정말 안부일 뿐이다. 다른 할머니들의 삶도 우리 할머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 종편 채널에서 나오는 트로트 프로그램, 건너편 아파트 단지, 베란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이게 할머니가 만나는 거의 유일한 세상이다. 할머니의 세상 바깥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없어진다. 아주 시끄럽다. 하지만 나의 할머니의 세상은 고요하다. 새로울 것도 없다. 그렇게 할머니의 세상은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
요즘 할머니는 나와 있으면 어릴 적, 젊었을 적 강렬했던 기억을 얘기하곤 한다. 대구에서 할아버지와 상경한 이야기, 공산당이 집에 찾아온 이야기 등등. 몇 주에 걸쳐서 같은 얘기를 스무 번쯤 반복하고 나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증조 할아버지가 영덕 군청의 군수로 있었다는 얘기를 스무 번쯤 들었으니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손녀라고 같은 이야기를 스무 번이나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에 치여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를 쏟아가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과거의 이야기를 길어 올려서라도 할머니의 단순한 삶이 조금은 다채로워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할머니의 세계가 과거로 향한다 해도 그 세계가 조금은 넓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다시는 할머니 입에서 삶이 지겹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세계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집 근처에서, 집으로, 방으로, 더 작은 곳으로 좁아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세계가 천천히 작아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내가 작은 균열을 만들어 할머니의 세계가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할머니의 세계를 톡톡 두들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