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늙고 많은 것을 잃어버린 할머니와 같이 살며 든 나의 생각들
망각이라는 것이 신의 선물이라지만 종종, 잊고 잃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작년 한 해는 상실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피부 아주 가까이 느껴지는 해였다. 아주 갑자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이모의 암소식을 들었다. 다행히도 이모는 항암치료 중에도 씩씩하다. 가끔은 그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자라나는 암세포 소식을 들을 때면 갑자기 그를 잃을까 덜컥 겁이 난다.
사람이 세상에 나오고 언젠간 떠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질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근 그런 사람이 생겼다. 우리 할머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고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땐 운이 좋게도 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살아계셨다. 사실 외할아버지는 내가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떠난 날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가장 처음 마주한 가장 가까운 죽음이었으니까. 그리고 외할머니가 떠난 날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 내가 가장 처음 마주한 가장 급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내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 모든 기억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다. 우리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까지 다섯 식구가 같이 사는 대가족이었다. 어릴 적 가족소개를 할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걸 말할 때면 내가 특별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마치 남들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 다 떠나고 할머니만 남았다. 할아버지도, 외할머니도 떠날 때는 다 작아져서 떠났다. 태산같이 느껴졌던 할아버지도 자기 주장 강하던 외할머니도 떠나기 전 모습은 늙고 작아진 한 인간이 차가운 침대 위에 누워있을 뿐이었다. 생이 다해서 세상을 떠나는 모든 사람은 다 작아지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퍽 서글펐다. 마지막 남은 우리 할머니도 떠날 땐 아주 작아지겠구나 싶었다.
내가 할머니와 떨어져 있던 시간은 약 5년 남짓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집을 나왔다. 내가집을 나오면서 다섯 식구가 복작복작하게 살던 집에 할머니는 혼자 남았다. 그렇게 5년을 혼자 살던 할머니 집에 별안간 내가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늙고 많은 것을 잃어버린 할머니와 같이 살며 든 나의 생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