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 대한 결핍
“나는 지금도 매일 아침 옷을 다린다. 다려진 주름 사이로, 열세 살의 내가 여전히 살아 숨쉰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엄마는 옷을 사주지 않았다.
그 여름, 나는 단 두 벌의 옷으로 계절을 버텼다.
하나는 운동회 때 반에서 맞춘 파란색 반티였고, 다른 하나는 집에 있던 평범한 티셔츠였다.
내일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건 나에게 사치였다.
고민이라고 해봐야 어제 입지 않은, 남은 한 벌을 고르는 것이 전부였으니.
옷장 문을 열 필요조차 없었다.
선택지가 두 개인 잔인했다.
나는 매일 그 두 벌의 옷을 번갈아 입으며 여름을 견뎠다.
사춘기를 앞둔 열세 살 아이에게 옷 두 벌은 단순히 부족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치였고, 부끄러움이었다.
친구들이 새로운 옷을 입고 학교에 올 때마다 나는 몸을 웅크렸다.
옷에 달린 작은 브랜드 로고 하나, 소매 끝의 자잘한 장식 하나가 왜 그렇게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없던 것들이었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뚫어져라 보지 않아도, 나는 매일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 내 옷차림을 비웃지는 않을까, 똑같은 옷을 또 입었다고 수군거리지는 않을까.
내 불안은 자라났고, 스스로를 숨기듯 점점 말이 줄어들었다.
학교에 가는 발걸음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그 시절 엄마는 왜 옷을 사주지 않았던 걸까.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지금에야,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조금은 이해된다.
엄마는 늘 바빴다.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쉼 없이 일해야 했다.
어쩌면 옷은, 엄마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는 항목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일부러 나를 외면했다기보다는, 살아내느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옷이 아닌, 밥 한 끼와 잠자리 같은 생존에 가까운 것들에 집중해야 했던 시절.
우리 가족은 늘 서로가 각자의 자리를 지키느라 바빴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작고 사소한 결핍은 늘 후순위로 밀려났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앨범 속 나는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두 벌의 옷이 반복되는 사진들 속에서 바뀌는 건 계절과 배경뿐이다.
특히 강렬한 파란색 반티는 내 결핍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네온사인 같았다.
다른 아이들도 가끔 반티를 입었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 옷을 입고 오는 아이는 나뿐이었다.
반티의 쨍한 색감은 그 자체로 ‘또 그 옷’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아이들 눈에도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직접 묻진 않았다.
대신 나는 더 조용해졌고, 더 숨었다.
이 때문일까.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옷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무 살을 넘기고 직접 돈을 벌게 되자,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라도 하듯 옷을 사 모았다.
하루에 한 벌, 많게는 두 벌씩도 샀다.
소비는 곧 보상이었고, 옷장은 과거의 결핍을 덮는 일종의 방패였다.
나는 옷을 대하는 나만의 규칙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규칙은 매일 아침 다리미질을 해서 옷을 주름 없이 입는 것이다.
사실 꽤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주름진 옷을 보는 순간마다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구겨진 파란색 반티, 빛바랜 티셔츠, 말라붙은 여름의 기억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다려진 옷을 입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주름 하나 없는 옷은 마치 새 옷처럼 느껴졌고, 그 작은 착각이 나를 위로했다.
매일 새로 태어나는 느낌, 누군가의 시선에 숨지 않아도 되는 감정.
다려진 옷에는 그런 의미들이 붙어 있다.
두 번째 규칙은 검은색 옷만 입는 것이다.
검정은 눈에 띄지 않는다. 튀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입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강렬한 파란색 반티와는 정반대의 색이다.
나는 그 색을 선택했다. 일부러, 철저히.
색감이 짙은 옷은 두 번만 입어도 ‘그 옷’으로 기억된다.
검정색은 그렇지 않다.
무채색의 자유, 반복을 숨길 수 있는 색.
그것이 내게는 가장 안전한 옷이었다.
이제 내 옷장은 온통 검정으로 가득하다.
마치 과거를 덮는 담요처럼 조용하고 단단하다.
나는 지금도 옷에 대한 결핍을 감추며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습관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지나온 시간을 껴안는 방식이다. 다려진 옷의 주름 하나, 무채색의 조용한 옷장 하나에도
어린 날의 그림자가 스며 있다.
그 그림자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무심한 듯 조심스럽게 옷을 고른다.
이제는 원하면 얼마든지 옷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한 자리에는
아직도 그 여름의 아이가 웅크리고 있다.
파란색 반티를 입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던 아이.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여름,
같은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로 멈춰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가 고개를 들 때까지,
나는 내 옷을 다리고, 검은 옷을 입고,
매일 아침 나 자신을 다시 입힌다.
언젠가, 그 아이가 고개를 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