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의 처음

친구에 대한 결핍

by 민준하

처음은 늘 낯설었다.

새 교실, 새 친구, 새 선생님.

매번 모든 것이 낯설고, 또 처음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총 여섯 번의 전학을 다녔다.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늘 익숙함을 버리고 낯섦을 끌어안아야 했다.


새로운 교실에 들어서는 발걸음은 늘 무거웠다.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은 아이들에게 설렘이었고, 나에겐 부담이었다.

첫날엔 늘 자기소개가 있었고, 최대한 웃으며 아이들과 잘 어울려야 했다.

첫인상 하나에 교실 안 내 위치가 결정됐으니까.


가장 괴로웠던 건,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저 ‘전학생’으로 불렸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도 이름 대신 ‘전학생’으로 남았다.

내 이름을 알아도 다들 '전학생'으로 부르는 게 편한지, 날 그렇게만 불렀다.


전학 첫날이면 선생님들은 항상 나를 위해 아이 한 명을 짝지어주곤 했다.

“이 친구가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줘.”

내 짝꿍이 된 아이도, 나도 부담스러웠다. 억지로 만들어진 연결고리는 어색하고 불편했다.


전학이 거듭될수록 나는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말수는 줄어들었고, 눈치는 늘어났다.

“너는 어디서 왔어?”

수없이 반복된 질문 속에서 나는 점점 나를 설명하는 일에 지쳐갔다.


익숙해질 때쯤이면 또 짐을 싸야 했다.

한 번도 온전히 ‘내 교실’이라고 느껴진 적 없는 교실들.

그곳들은 늘 언젠가 떠날 장소처럼 느껴졌다.


전학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더 지쳐만 갔다.

아무리 웃으며 다가가 보려 해도 아이들은 이미 몇 년을 함께한 무리 속에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점점 투명한 존재가 되어갔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도 특별히 기억나는 친구가 없다.

전부 스쳐 지나간 인연일 뿐이다.


학창 시절, 마음 놓고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이 자라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끝날 인연’이라는 생각에 마음의 문을 닫고, 형식적인 관계에 머물렀다.

그렇게 관계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결국 끝났다.


첫 번째 전학은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였다.

나에겐 처음이었기에 은근히 설레는 감정을 안고 교실을 찾아갔다.

‘어떤 아이들이 있을까?’라는 기대감에 힘차게 교실 문을 열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20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동시에 관심을 받았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1학년이고, 아직 모두가 어색한 시기였기에 쉽게 친구가 생겼다. 그곳에서 3학년까지 잘 지냈다.


두 번째 전학은 3학년 1학기였다.

행복하게 다녔던 학교 생활이 아쉬울 정도로 떠나기 싫었다.

하지만 내가 원한다고 남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세 번째 학교로 갔다.

아직 다들 나이가 어렸기 때문인지 그곳에서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다행히 이 학교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간에 또 전학을 가면 어쩌나 싶었는데, 3년이라는 시간을 같은 곳에서 보내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중학교에 배정받았다.

배정받은 중학교에 예비 소집일 갔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는 경험이 그저 신기했다.

교복을 입는다는 설렘과, 어른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 같은 중학교에 배정받아 기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배정받았던 중학교에서 예비 소집일까지 참석했지만, 정작 입학식 날 나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세 번째 전학이었다.


입학식에 배정을 받았기에 나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엔 다를지도 몰라.’ 스스로를 그렇게 속이며 교실 문을 열었지만, 그곳에서도 내 이름 대신 여전히 ‘전학생’으로 불렸다.

아무리 입학식에 전학을 갔다고 해도, 선생님이 나를 '전학생'으로 소개했기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은 내 이름 대신 '전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곳에서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학 없이 지내다가 무사히 졸업까지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는 시기가 찾아왔다.

안타깝게도, 고등학교 1학년이 시작되던 3월 나는 그 학교를 한 달도 다니지 못하고 네 번째 전학을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3월에 전학을 가게 된 경우는 많지 않아 아이들의 관심이 수도 없이 쏠렸다.

“쟤 왜 전학 온 거야?”

속삭이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나는 애써 못 들은 척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그곳에서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깊게 사귄 친구도 있고, 교실에서도 대부분의 아이들과 잘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처음으로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다.

익숙해질 무렵, 또다시 나는 떠나야 했다.

그곳에서 1년을 채 다니지 못하고 나는 다섯 번째 전학을 가야 했다.


전학을 간 그곳에서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가 되었다.

텃세가 심해 친구 하나 사귀기 어려웠고, 나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홀로 남겨졌다.

점심시간에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 혼자 먹어야 했다.

혼자라는 게 창피해 점심을 먹었던 날보다 먹지 않았던 날들이 더 많았다.


전학을 간 그곳에서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가 되었다.

텃세가 심해 친구 하나 사귀기 어려웠고, 나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홀로 남겨졌다.


점심시간이면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 늘 혼자였다.

혼자 먹는 게 창피해서, 밥을 먹은 날보다 굶은 날이 더 많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다시 한번 전학을 가게 된다.

그것이 나의 여섯 번째 전학이었으며, 내 인생 마지막 전학이었다.


그때는 친구 사귀는 일보다 그냥 하루빨리 졸업하기를 바랐다.

모두가 입시 준비로 바쁘다 보니, 서로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 시기였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끝은 찾아왔다.

무사히 졸업했고, 스무 살이 된 나는 마침내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섯 번의 전학. 여섯 번의 낯섦.

처음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 했지만, 반복될수록 조용해지고 스스로를 숨기게 됐다.


수업 시간에 하는 모둠활동이 죽기보다 싫었고, 매일 찾아오는 점심시간이 두려웠다.

급식 대신 매점에서 간단한 빵으로 때우는 날들이 많아질 때마다, 배는 찼지만 마음은 점점 공허해졌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에게도 마음 맞는 학창 시절 친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지금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낸다.

혼자여서 외로운 순간도 있지만,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평화도 있다.


나는 ‘여섯 번의 처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모든 낯섦과 외로움을 지나며, 내면은 천천히 단단해졌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단단해지는 방법을 배워온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게 낯설었던 만큼,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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