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한 결핍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까지 셋이 전부였다.
대부분의 가정들은 엄마와 아빠가 있는 게 당연하지만, 그 당연한 것이 나에겐 처음부터 없었다.
아빠의 얼굴은 기억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할 장면 자체가 없었다.
어릴 땐 그게 그저 당연했다.
어린 시절 가족 그림을 그릴 일이 있으면 나는 아무렇지 않게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까지 단 세 사람만 그렸다.
아빠는 내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또래 아이들과의 교류가 많아지던 시점에 나는 점점 깨달았다.
우리 집은 다른 집과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친구들과 주말 이야기를 나눌 때 다른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캠핑에 갔다 온 이야기, 엄마 아빠와 다 같이 여행을 갔던 이야기들을 말할 때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엄마는 항상 바빴고, 주말에는 피로에 지쳐 잠을 잤다.
주말이면 나는 혼자 혹은 동생과 단 둘이 놀이터에 가서 놀았던 일 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가끔은 주말에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갈 때면 엄마는 피로에 지쳐 영화 중간에 잠들어 버렸고, 우리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저 그 시간, 그 장소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족한 아이들로 보이지 않도록 노력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결핍 때문에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을까.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남들이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있지만,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작아져갔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친구 중 한 명은 아빠와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와 어쩌다 친하게 지낸 적이 있는데, 서로의 결핍들을 알기에 우리는 장난으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너네 아빠랑 우리 엄마랑 결혼하면 되겠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는 이야기지만,
그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우리 둘 다 '무엇인가' 채우고 싶었던 아이들이었으니까.
태어날 때부터 어딘가 비어 있는 삶에 익숙해져야 했던 아이.
그 아이는 지금까지도 잘 살아가고 있다.
누구보다 '평범함'을 간절히 바랐던 아이.
그 아이는 지금까지도 잘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평범함을 갈구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