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벌었지만, 삶은 잃어갔다.

돈에 대한 결핍

by 민준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누구보다 일찍 어른이 되었지만, 불안과 강박 속에서 오늘을 포기한 채 ‘나중에’만 바라보며 버텨온 청춘의 고백.

어린 시절부터 부유하게 자란 적 없는 나는 항상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왔고, 비교는 매번 내 자신이 초라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생각했다. "나중에 돈을 벌면 난 사고 싶은 걸 다 살 거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돈을 벌수록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함께 커져만 갔다.


지금 번 돈을 갖고 싶은 거 사는 데 다 써 버리면 나중에 급할 때 돈이 없어 후회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럼 과거의 나처럼 빈곤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는 절대 살고 싶지 않았다.


20살 회사원의 삶

20살,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한 나이이다. 남들은 대학에 가거나, 재수를 하며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학비, 생활비, 월세, 재수 비용 등을 지원받아 '공부'와 '노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시기였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들이 다 가는 길을 따라가는 또래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출근을 해야 했다.


그렇다. 나는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벌써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고, 다음 달 생활비를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고,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앞으로는 나 스스로가 나를 지키고 책임지며 살아가야 했다.


이 시기에 나는 남들과 나를 점점 비교하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된 또래 친구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우리 팀 선임, 팀장님들과 나를 비교했다. 비교는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그저 내가 점점 작아지고, 초라해질 뿐이었다. 점점 꺼져가는 불씨 같았다. "나도 언젠가 빛나는 날이 오겠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매일을 버텨 나갔던 것 같다.


20살 고졸, 미필이었던 나는 여러 번의 면접 끝에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멋진 커리어맨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적당한 월급과 근무 환경이었다. 그래도 매일 쌓이는 근무 스트레스와, 비교로 얻은 자괴감들은 내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만 갔다.


처음 받아보는 200만 원이 넘는 월급을 바라보면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충동 소비를 할까 봐 겁났다. 월급날이 되면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셀프 선물을 할까?라는 고민과, 저축해야 한다는 강박 사이의 끝없는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초반 몇 개월은 소비에 정신이 팔렸었지만 금세 정신을 붙잡고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박적인 저축이었다. 청약, 주식 투자, 비상금, 월세 등 각 용도 별로 돈을 분류하고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넣어버렸다. 그렇게 돈을 이곳저곳에 빼다 보면 내가 이번 달에 쓸 수 있는 돈은 30만 원 남짓이었다.


30만원짜리 삶

30만 원, 내가 고등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었던 돈 보다 적은 금액이었다. 여유로운 삶을 꿈꿨는데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고작 30만 원이었다.


저축에 강박이 생긴 시점부터 삶이 지치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굴 위해 사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생겼다. 매일을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고, 스트레스가 심한 날 밤에는 꿈속에서도 일하는 꿈을 꾸었다. 이런 날은 하루 종일 일하는 느낌이었고, 육체와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 속에 매일을 버텨나갔다.


나는 단지 '가난'했던 어린 날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을까.

나는 단지 '평범'한 가정의 또래 친구들처럼 고민 없이 놀고 싶고, 여행을 가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을까.


그래도 통장 속에 쌓여가는 액수를 보며 위안 삼았다. 이렇게 조금씩 모으고 모으다 보면 언젠가 큰돈이 되겠지.


지금은 없는 나의 삶

나중에 여유 생기면 '여행'가면 돼.

나중에 여유 생기면 놀면 돼.

나중에 여유 생기면 갖고 싶은 거 사도 돼.

나의 삶은 '나중에'라는 말에 잠식되어 갔다.


하고 싶은 것을 참고, 해야 하는 일만 하는 삶.

그 삶은 20살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다.


꽃다운 나이라고 말하는 20살.

나는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일만 하며 보내버렸다.


나는 깨달았다.

'가난'을 벗어나는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을.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애써야 겨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그 가난 속에 머물러 있다.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가난해진 것 같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난을 벗어나는 날이 오긴 할까?


어쩌면, 가난은 한 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 꼬리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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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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