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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Jun 05. 2021

미술을 보다, 느끼다!

배움기록, 2021년 6월, <미술을 보는 눈> 강의를 듣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명사초청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연자는 <방구석 미술관> 책으로 유명한 조원재 작가였다. 주제는 "미술을 보는 눈- 창조적 관객으로서 미술을 즐기는 법"이었다. 미술을 좋아하지만 그 이유는 설명 못하고, 미술전시를 즐기지만 관람하는 방법도 모르겠는 나로서는 흥미로운 강의 주제였다. 그럼 어떻게 미술을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그럴싸한 정답이 있을 것 같기고 하고, 그냥 느끼는 거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선 미술작품을 텔레비전이나 책, 그밖에 여러 주변의 소통 채널과 비교해보자. 강연자는 미술이란 '매우 불친절한 의사소통방식'이라고 말한다. 귀가 쫑긋해지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하고 싶은 게, 표현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그걸 직접 얘기해주지 않는다. 미술품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감상하려고 하면... 내가 몰라서 모르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뜻밖에 자아비판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나는 줄곧 이렇게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강연자는 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자고 한다. 아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여기엔 항상 양면성이 있다고. 내가 알고 있다는 '지식'이 오히려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미술작품을 볼 때 가장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감각이라고 언급한다. 우리는 시각, 촉각, 청각 등의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타고난 재능으로 미술품을 만나는 걸로 이미 충분하다고 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영화, 2012)가 자료화면으로 나왔다. 이 영화에는 20세기 초반 파리를 배경으로 여러 예술가들과 미술품들이 나온다. 아름다운 느낌은 남아있지만 본 지 오래되어서 내용은 가물가물 했다. 짧은 영상으로 폴(대학교수)과 길(소설가 지망생)이 함께 미술관에 있는 장면이 나왔다. 그 유명한 모네의 <수련> 작품 앞에서 폴은 줄곧 자신의 지식들을 늘어놓으며 작품보다는 일행을 더 자주 바라보고 있었다. 유식하고 자부심 있어 보이지만 감상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반면 길은 작품에 훨씬 주의를 기울이며 매료된 듯한 표정으로 몇 마디 말을 했다. 나는 길의 입장으로 폴의 모습을 동경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정작 화가 클로드 모네는 <수련>을 어떤 마음으로 그렸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장님이 막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을 그리고 싶었다."

클로드 모네 <수련>

 

 해저 5천 미터의 생명체를 본 적이 있는가? 강의 자료에 나온 물고기는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이 없었다. 심해에서는 시각이 필요치 않아 사용하지 않으니 퇴화된 것이다. 우리는 감각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만 이는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용하지 않으면 감각이 둔화되고 그만큼 세상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미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호한 미술작품을 만날 때 잘 모르겠다며 투덜거리곤 했지만, 미술은 불친절하기 때문에 더욱 돋보이는 것이었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여러 감각들은 미술을 만났을 때 깨어날 수 있다. 그러면 감각들을 깨우며 세상에 좀더 민감해질 수 있으며 자연스레 새로운 생각도 할 수 있게 된다. 미술을 넘어서 새로운 책, 영상, 제품들을 탄생시키는 동인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감상하기 어려운 작품은 무엇일까? 강연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꼽았다. 모나리자가 면사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냐고 말을 건넸다. 응? 눈이 동그래지는 순간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라 더욱더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설사 루브르 박물관에 간다 해도 <모나리자> 작품 앞은 관객들이 꽉 찬 공연장 같아서 감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나도 십여 년 전 루브르 미술관에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여기도 저기도 관람객이 많아서 여유 있게 바라보는 건 쉽지 않았고 이미 잘 알려진,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작품들은 금방 지나쳤었다. 누구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정작 감상한 사람은 찾기 힘든 아이러니였다. 고전이나 명작으로 알려진 책도 비슷하지 않을까. 누구나 내용을 알고 있지만 그래서 완독한 사람은 드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현대미술로 넘어오면 알쏭달쏭해지는 순간이 많아진다. 이때는 더욱 상상력이 발휘해야 한다. 이게 어떤 걸 말하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민하지 말라고 한다. 먼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궁금할 수도 있고 자료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만든 작품을 굳이 또 다른 무엇에 의존해서 이해해야 하는지 되묻는 강연자의 말은 꽤 인상적이었다. 음식을 만들 때 소금이나 후추 따위로 간을 맞추듯이 미술작품을 단지 나의 감각을 돋우기 위한 조미료로 생각해보라고 했다. 미술이 훨씬 가볍고 가깝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서도호,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 2013>


마르셀 프루스트 "진정한 발견의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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