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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Jul 19. 2021

성냥들에게 -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성냥팔이 소녀가 남긴 편지

 이제 와서 말인데 그거 어떻게 한 거니?

 내가 그러니까... 너희 중 하나를 꺼내 들고 벽에 찌이익하고 그었을 때, 갑자기 불이 막 일렁이며 커지던 거 말이야. 눈앞에 난로가 보이고 훈훈한 공기가 돌면서 진짜로 손이 따뜻해졌거든. 그건 성냥 한 개비로는 안 되는 거잖아? 고작 한 개비로 그렇게나 따뜻할 순 없잖아?


 처음엔 분명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거든. 다시 한번 성냥불을 켜서 식탁이 보이고 군침 돌게 맛있어 보이는 거위를 보았을 때도 그랬어. 내가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건가 덜컥 겁도 났어. 근데 포그 꽂힌 거위가 뒤뚱뒤뚱 다가오는데 말이지… 순간 내 손에 뭔가 닿았어. 그 포크가 튕겨 나와서 내 살에 닿는 게 느껴진 거야. 그래서 너무 놀라서 성냥을 놓치는 바람에 다시 성냥불이 꺼지고 말았지. 그렇게 식탁도 음식도 사라져 버렸고. 진짜일리 없는데 정말 그럴 리가 없는 건데. 너무 생생해서 말이지…. 믿을 수 없는 건데 믿어져 버렸어. 그다음부터는 마음속으로 바라는 걸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냥을 그었던 거야.


 아, 딱 한 번만 더, 할머니와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할 수 있다면. 아주 어렸을 적이라 희미하지만 분명 기억나. 상자 가득히 반짝이는 트리 장식이 담겨있고 할머니는 내게 하나씩 건네 달라고 하셨지. 나는 그 장신구들을 양손으로 잡아야 했어. 색색깔로 빛을 내고 있는 그 구슬 같은 것을 잡고 서서 거울삼아 얼굴을 비쳐보기도 했지. 얼굴이 길어지기도 하고 찡그려 보이기도 하고.. 장난은 꽤나 재미있었어. 그리고 그것을 할머니에게 건네드렸을 때 닿았던 따뜻한 손의 감촉. 거칠지만 곱고, 푸석하지만 촉촉한 할머니의 손이었어. 내 양 볼을 비벼주시곤 했던 손바닥 감촉도 생생해.


 만약 정말 만약에 저기 하늘에 계신 분이 나한테 인생의 딱 하루를 골라서 다시 살게 해 주신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그날을 고를 거야. 그날은 할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크리스마스날이었거든.


 아마도 사람들은 남겨진 내 모습을 보고 혀를 차거나 눈물을 글썽이거나 더러는 못 본 척 피하며 지나가겠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거야. 내가 얼마나 굉장하고 멋진 것을 봤는지.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볼 수 있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니까.

내게 그 기억들을 불러주고 돌아가 볼 수 있게 도와주어서 정말 고마워.

눈물이 핑 돌게 춥고 배고팠던 날들도 있었지만 너희들 덕분에 따뜻했던 행복했던 날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어. 아무 걱정 없이 사랑받기만도 바쁘던 그런 어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걸 말이야.


 할머니는 항상 성냥이 특별하다고 하셨지. 성냥으로 불을 켜면 좋은 기운을 끌어올 수 있다고. 그리고 마음의 기도를 올려 보낼 수 있는 건 꼭 성냥으로만 된다고 했어. 그래서 가끔 초에 성냥불을 대며 가만히 기도를 읊으시곤 했지. 내게 할머니의 기도는 작은 노랫소리로  들렸어. 혼자 남게 된 후에도 한동안 그 노랫소리를 따라 허밍을 하면서 할머니를 기억했지. 이제 곧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겠구나.


 나는 너희들의 특별한 마법의 힘을 믿어. 그리고 세상에는 너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있을 거 같아. 얼마 전의 나처럼 외로운 누군가에게 이 특별한 비밀을 알려주고 싶은데… 괜찮다면 너희가 전해줄래? 혹시 어딘가에 작은 불빛으로 혼자 힘겹게 흔들리고 있는 누군가 있다면 말이지. 감당할 수 없게 막막하고 목이 메는 순간들을 맞닥뜨려도 그대로 주저앉진 말라고. 소중하고 행복한 어떤 날을 하루씩 저축해두었다가 꼭 떠올려보라고. 어쩌면 운이 좋아서 너희 성냥들이 도와줄 거고, 그렇다면 분명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날 거라고. 그날로 돌아가 보는 마법을 꼭 경험해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이야.


  내가 땅 위에서 발붙이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니 아쉬움은 없어. 이제 할머니와 함께 할 거라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네. 그러니 너희들도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마. 아,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것 같아. 저 위에서 손짓하는 별빛을 따라갈 시간인가 봐. 고마워. 모두들. 기억해. 모든 것. 이제 안녕.



#안데르센동화재창작 #성냥팔이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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