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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Jul 30. 2021

수영이 하고싶어서 쓰는 이야기

나는 이렇게 수영을 배웠어요

  '꿈이 뭐예요?'라고 묻는 말에 '인어공주가 될 거예요.'라고 대답했었다. 여섯 살이었던가. 유치원 생일잔치에서의 일이다. 여렴풋이 어른들의 어리둥절한 눈동자와 당황해하던 반응들이 떠오른다. 왜 인어공주였을까.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하다 못해 엄지공주도 있는데... 왜 그렇게 인어공주 동화에 빠져 있었을까. 그때는 이유를 잘 몰랐지만 확실한 건 공주라거나 왕자를 만난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이야기 자체보다는 인어공주가 가진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던 것 같다. 커다란 바닷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마음껏 탐색하는 자유로운 모습을 상상하며 좋아했다. 어쨌든 그 당시 주변의 반응을 마주하고는 '꿈이 뭐냐'라는 질문은 이런 대답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어른이 될 때까지 더 이상 인어공주 얘기를 누군가와 나누진 못했다.


 어릴 때부터 여러 엉뚱한 생각을 하곤 했다. 그중 하나가 '왜 걸어 다녀야 할까'였다. 날거나 점프해서 다닐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두 발로 걷는다. 인간이라는 신체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뚜벅뚜벅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날개를 가진 새처럼 날지도 못하고 지느러미가 있는 물고기처럼 헤엄치지도 못한다. 아쉽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걷는 것말고 다른 선택지도 있다... 비행기나 행글라이더를 타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탈 것이 없다면? 그러면 무얼 할 수 있을까? 두 팔과 두 다리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방법. 바로 헤엄을 치는 것이 있다. 그건 그냥 건강한 몸만 있으면 가능하다. 비록 지느러미는 없지만 인어공주가 되는 방법은 바로 수영을 배우는 것이었다.


 정작 수영을 배운 건 35살이 다 되어서였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고 나서도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인생의 변화무쌍한 시기를 여러 차례 지나고 나니 잊어버렸던 것들이 생각났다. 배워보고 싶었지만 딱히 기회가 닿지 않았던 것들이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가 문득 '이제 나 좀 봐줄래?'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수영강습을 등록하러 갔다. 그 당시 살던 집 근처에 수영장 시설을 가진 여자고등학교가 있었다. 위탁 운영하는 곳이라 일반 강습도 열려있었다. 오전 시간에는 동네 아주머니들로 붐볐다. 물론 나도 아줌마였지만, 연령대가 스무 해 이상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고,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에 꼽았다. 어색해서 그랬는지 운동신경이 없는 건지 수영을 배우러 가서는 물만 잔뜩 먹고 돌아오는 날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수영강사 샘이 그만두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으나 충원할 인력을 구할 때까지 원장님? 대표님?(그냥 대표님으로 칭하겠다.) 이 초급반을 맡기로 했다. 첫인상이 매서운,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분이었다. 웬일인지 초급반 인원도 반 넘게 줄어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람은 나포함 서너 명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내 삶에 찾아온 기회 중 하나였던 거 같다. 대표님이라는 분은 운동선수 출신으로 역시 운동하는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실력자였다. 겨우 보조기구를 끌어안고 발장구나 치던 나는 전설의 수영선수를 만난 기분으로 우러러보았다. 훈련은 무지막지하게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진짜 배운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서워서 눈물이 쏙 빠지는 날도 있었으나, 하루하루 내가 들이키는 수영장 물이 줄어들었다. 얼추 영법을 하나씩 익혀가며 초급반 구성원들의 어깨가 한껏 펴졌다. 한 달여 남짓의 기간에 접영까지 배우게 되었으니 초급반이 아니라 초스피드반이었다 하겠다.

 그때 그 대표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루하게 수영장 물만 먹다가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덕분에 나는 내 어린 시절 꿈을 하나 이룬 셈이다. 생각해보니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다.

 

 물속에서 느끼는 자유. 그건 수영의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은 하늘을 나는 것 다음으로 멋진 일이 아닐까?


 체육시설 수영장 물에서 풍기는 찐한 염소 냄새가 그립다. 육아에 지친 심신을 차가운 물속에 담그던 날들을 떠올린다. 자유수영시간에 가서 열 번 스무 번 레인을 돌며 체력을 뽐내던 시절도 있었다. 한 여름 무더위에 지친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풍덩 빠지고 싶다. 아, 수영하고 싶다.



#코로나미워 #수영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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