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의 리딩맘 활동을 생각하며
지난 몇 해간 일주일에 한 번 일찍 일어나는 날이 있었다.
"금요일은 엄마도 학교 가는 날이야. 늦으면 안 돼." 전날 단단히 얘기하고 잠들었던 터라 일찌감치 깬 아이들과 함께 등교 준비를 한다. 한 손에는 우리집 애를 붙잡고 나머지 손으로 그림책을 쥔 채로 종종걸음 치며 학교로 향한다. 1교시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그림책을 읽어주러 가는 것이다. 등교하는 뒷모습을 보며 배웅할 때와는 아침 공기가 확연히 다르다. 활기차고 싱그러운 아이들의 발걸음에 맞추어 가다 보니 어느새 학교 앞에 도착했다. 우리집애는 반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리딩 맡은 반으로 향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15분 남짓.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책을 읽어주며 뿌듯함을 채우기 충분한 시간이다.
9시 수업종이 울리기 전에 책을 다 읽어주어야 한다. 교과서 꺼내는 아이, 방금 등교하여 자리에 앉는 아이들에게 눈 맞춤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금요일이네요~! 리딩맘이 왔습니다!" 활기찬 목소리로 어색한 아침 분위기를 녹인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에 조금 놀랄 수도 있겠다. 목소리가 작고 소심하게 뒤로 빼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나는 지금 교실 앞에 서있고 학급 아이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다. 당황하거나 긴장되어도 티 내지 않는 스스로를 보며 나도 어른인 건가 싶다. 15분 동안은 내 성격을 잠시 잊어버리기로 한다.
이제 "오늘 읽어줄 책 제목은...."으로 시작하는 그림책의 시간이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른 책인데 재미있어할까? 페이지를 넘겨가며 아이들의 반응을 살핀다. 눈을 보며 집중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입모양을 보면 재미있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미 읽었다거나 아는 내용이라거나 하는 반응이 나오면 살짝 긴장된다. 그래도 그런 말을 하는 아이들 조차 책에서 눈을 떼진 않는다. 다들 열심히 귀를 기울여 주니 오히려 내가 황송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시간은 금세 지나가서 마지막 장에 다다른다. 아쉬운 표정을 짓는 아이들에게 덕담을 몇 마디 해주고 다음 주에 만나자며 교실을 나온다.
올해로 리딩맘 4년 차가 되었다. 작년은 코로나로 못했으니 활동한지 3년 즈음된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 다니는 학교에 뭐라도 봉사해야 될 거 같아서. 작은 동네, 작은 학교 안에서 내가 출근 안 하는 엄마인 거 다 아는데 차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시작한 것이었다. 다른 학부모 봉사 활동들은 영 자신 없고, 학교도서관에 서가 정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도서 어머니회에 들어간 거였다. 그런데 몇 명 없는 어머니회에서 여러 활동을 하려다 보니 나까지 얼떨결에 리딩맘을 맡게 되었다. 처음엔 숫기 없고 목소리도 작은 편이라 과연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막상 시작하니 내 성향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책을 읽어주느냐가 큰 고민거리였다. 여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책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점도 많았다. 유명하고 인기 있는 책들은 자칫 식상할 수 있어서 제외한다.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이 나오는 책도 배제한다. 혹여 한부모나 조손가정,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있다면 소외감을 느낄 수 있어서다. 아이들의 학년 수준도 고려해야 한다. 너무 시시하거나 어려운 책도 안된다. 때에 맞추어 계절이나 여러 시즌(가정의 달, 지구의 날,, 등)에 어울리는 책을 골라보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알맞게 채우며 재미있게 읽어줄 수 있는 책이라야 했다.
한 차례 두 차례.. 그간 경험이 쌓이면서 긴장이 많이 풀렸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만큼은 목소리가 커지고 에너지가 넘친다. 이제는 리딩맘을 하겠다는 엄마들 앞에서 시연까지 해 보이곤 한다.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하나 발견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엔 아이들을 위하는 거라 자부했지만 사실 나를 위한 시간들은 아니었을까? 그저 그림책 한 권일뿐인데...하다가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잔잔한 보람을 느낀다. 학교 공부와 학원 스케줄로 이리저리 쫓기고, 각종 영상매체에 둘러싸인 요즘 아이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기억될까? 잠시 책에 빠져들며 미소 지었던 순간들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 짧은 시간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잘 담겨 있다가 언젠가 어디선가 문득 '그때 봤던 책이네...' 하고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꼭 내가 읽어준 그림책이 아니래도 그저 책을 보면 스스럼없이 툭하고 펼쳐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다음 학기에도 리딩맘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아직 읽어줄 책이 많이 남아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서 조기방학(?)을 하고 나니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책 읽어주던 그간의 시간들이 스쳐간다. 그 기억들이 아득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