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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Jun 30. 2021

소나기가 온다

비오는날, 엄마의 일을 생각하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조금도 적당히도 아니고 마구 퍼붓는다. 하늘 베란다에서 양동이를 엎었나?


 비가 쏟아진다. 갑자기. 날씨예보를 들었던지 안 들었던지 상관없이 비는 언제나 급작스럽다. 동네 마트를 가려고 집을 나서던 나는 잠시 멈칫한다. 얼른 뛰어갈까? 아니면 잠시 기다려볼까? 비를 맞고 싶진 않았지만 걸음은 앞으로 향했다. 다행히 내 손에는 우산이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이었다. 우산을 받혀 든 나는 마트가 아닌 학교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빗방울이 굵어지며 우산을 마구 때린다. 마음이 바빠진다. 아직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혹시 이미 걸어오다가 비를 맞은 건 아닐까? 아이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를 않는다.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전화기를 쥐고서 그사이 고인 물 웅덩이를 피하기에 여념 없다. 빗소리와 전화 벨소리가 엉키며 귓바퀴를 맴도니 정신이 쏙 빠진다. 헐레벌떡 학교 앞에 도착했다. 하교하는 학생들과 엄마들이 모여 있는 무리 속에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잠시 기다려봤지만 동급생들이 안 보이는 걸 보니 이미 끝나서 나온 듯하다. 학교 건물 앞에서 기다려보던  몇 분 사이에 빗방울이 다시 잦아든다. 날씨 참 변덕스럽기도 하지. 결국 아이는 만나지 못하고 털레털레 돌아서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는 벌써 집에 와있다. 길이 어긋났나 보다. 소나기가 찾아왔을 때 아이는 친구들과 하교하던 길이었다고 한다. 한 친구가 우산이 있어서 다섯 명이 하나의 우산을 함께 쓰며 (다섯 명이 한 개를??) 근처 공원 정자에 잠시 피해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마침 친구 엄마를 만나서 우산을 빌릴 수 있었다고. 그런데 물어보는 내 표정이 좀 지쳐 보였나 보다. 아이는 이내 내 얼굴을 살피곤 본인이 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걱정했냐며 묻는다. 그러곤 비를 맞지 않고 왔다고 티셔츠에는 빗물이 좀 튀었으나 갈아입었고 머리는 안 젖었다며 설명을 거듭했다. 그래 집에 잘 왔으면 됐어. 아이가 염려돼서 바삐 움직인 건데 어째 내가 아이에게 걱정을 끼친 듯하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뛰어야 할까? 기다려야 할까?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도움은 못되었지만 엄마인 나는 뛸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다른 선택은 있을 수가 없다. 뜻밖에 무언가 몰아치는 상황이 되면 사실 나는 웅크리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몸을 사리면서 기다리고 싶다. 예전에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보호해야 하는 존재부터 떠올리게 된다. 망설임 없이 빗길로 뜀박질한다. 바로 엄마가 되면서 더해진 특성이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 공이 날아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음식점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마다 꼴찌인 내가 거침없이 행동하게 만드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이다. 그런데 이런 점이 아이에게 꼭 도움을 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올해 첫째 아이가 열두 살이 되었다. 부쩍 자란 만큼 상황이 달라진 걸까? 아등바등하는 나와는 무관하게 아이는 혼자서도 나름의 방법을 찾아갈 때가 많다. 가끔씩은 지친 나를 걱정하고 다독이는 것까지 해낸다. 아직 나보다 눈높이가 낮은데도 나보다 멀리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거꾸로 아이에게 기대도 싶을 때도 있다. 푸념과 걱정을 늘어놓고 싶은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면 스스로 놀라며 마음에 경보음을 울린다. 어쨌든 아이는 아이이고 보호자는 나인 것이다. 대견하게 느껴지면 그 자체로 감사할 일이지 내가 덕을 보자고 나설 일은 아닌 거다. 그 나이에 걸맞은 소소한 고민과 갈등을 해가며 성장하도록 지켜주고 싶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걸 되도록 아이가 몰랐으면 좋겠다. 연못의 오리를 보듯 유유자적 평화롭다고만 생각하고 그의 물갈퀴가 바삐 움직이고 있음은 모른 체 걱정 없이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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