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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Jun 23. 2021

아이가 있는 여름 풍경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우리 집 여름은 둘째 아이 생일과 함께 찾아온다. 유월 중순, 한참 더워지기 시작하는 그때를 모두가 한 달 전부터 기다린다.

"엄마 이번 내 생일에 놀러 가자. 고기 구워 먹고 밖에서 자는 거 하자."

여섯 살 때부터 했던 얘기를 매번 새로 하는 이야기처럼 꺼낸다. 그럼 나는 긍정의 의미를 담아 웃음 지으며 답한다.

"그래, 엄마 아빠가 어디로 갈지 찾아보고 말해줄게."

 캠핑족이 아니라서 변변찮은 텐트나 갖춰진 장비는 없지만 별로 걱정할 건 없다. 인터넷에서 바비큐 가능한 글램핑을 검색하면 수십 곳이 좌르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며칠간 틈틈이 클릭을 거듭하여 상의하고 장소를 고른다. 글램핑장만 예약하면 거의 다 된 것이다. 장보기와 짐 싸는 것은 하루 이틀로도 충분하다.


 출발하는 날은 매번 아침부터 해가 쨍쨍 내리쬔다. 어디선가 '이제 여름이야, 각오해.'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교외로 나가면 달라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초록 초록한 풀이 무성하고 나무들도 풍성한 잎새를 서로 뽐내고 있다. 아 여름이구나. 그리고 우리는 하루 동안 야외에서 흙을 밟고 풀내음을 맡으며 자연에 한걸음 다가가 본다. 새소리와 곤충들의 사락거리는 움직임에도 귀를 기울인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여름과 정식으로 인사를 건넨다. 벌레라면 기겁하는 남편도 게임기를 찾던 첫째 아이도 하룻밤 동안 자연을 느끼며 다 같이 웃는다. 그렇게 여름맞이 1박 2일 가족여행을 보낸다.


 자연을 만나고 오면 집안 풍경도 무언가 바뀐다. 아이들은 이제 해 뜨고 지는 시간을 안다는 듯이 여름 동안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잠이 든다. 해가 쨍쨍한 낮동안 바쁜 움직임으로 놀며 또 자란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매일매일 무성 해지는 나무들처럼. 풀더미 사이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작은 곤충들처럼. 자신들도 자연의 일부라는 듯이 그런다.


 날더운 주말이 되면 더 부지런해진다. 가족 모두 집에서 가까운 산과 계곡으로 향한다. 햇빛이 아무리 뜨거워도 상관없다며 뻐기는 계곡물에 슬그머니 발을 담가 본다. 수돗물과는 다른 미끌한 물의 감촉이 생경하다. 아이들은 그 온도차에 놀라서 짧은 비명을 지르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여름의 계곡을 위아래로 누비며 한참을 놀이에 빠진다. 바닥의 돌을 하나씩 들어보며 눈이 커지기도 한다. '엄마 와서 이것 좀 봐봐' '여기 뭐가 있는데 이건 뭐지?' 계속 지저귄다. 계곡물에 살고 있는 생명체가 그리 많았던가? 나도 어릴 적에 저렇게 열심히 온 마음으로 놀았던가? 잠시 내 어린 시절도 더듬어본다. 흐릿해진 기억에도 크게 개이치는 않는다. 눈앞에 아이들이 참방 대고 웃고 신나 하는 것으로 충분히 즐거운 한 때가 된다.


  여름이 한창 무르익는 8월이 되면 아침저녁으로 매미와 개구리가 울음 경쟁을 시작한다. 이때 즈음에는 어디를 바라보든지 초록이 꽉 차있다. 습한 열기도 가득하다. 쉼 없이 달리다가 멈춰 서서 숨을 고르며 내지르는 큰 입김처럼 여름이 헥헥거린다. 아이들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강아지처럼 숨차 한다. 그러나 냉수 한 모금에도 금세 기운을 차리고 또다시 놀이터로 혹은 수풀로 달려가곤 한다. 매미소리 들리는 나무 가까이 다가가 까치발을 한다. 한참을 매미와 숨바꼭질을 하다가 싫증 내며 돌아서서는 잠자리를 발견하고 이내 미소 짓는다. 잠자리와 눈인사를 해보고 싶어서 발 뒤꿈치를 들고 슬금슬금 다가간다. 그러나 잠자리라 가만히 앉아 있을 리 없다. 쫓고 쫓기는 한 여름의 추격전이 계속된다. 그렇게 저녁 늦도록 골목에서 놀이터에서 소란을 떨며 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여름밤을 채우며 메아리친다.


 여름은 아이들이 자라는 계절이다. 자연이 가장 부산스럽게 지내는 시기, 아이들도 따라서 바쁘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자연을 보여주느라 바쁘다. 다 같이 많이 움직이고 웃고 재잘대며 그렇게 지낸다. 지치는지도 모르게 부지런을 떨면서 매일을 열기로 채워간다. 여름이 아이들을 활기차게 하는 걸까? 아니면 아이들이 여름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여름이 곧 아이들 인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한 철을 지나며 햇살에 그슬린 동네 아이들의 얼굴이 정겹다. 우리 집 아이들도 한껏 까무잡잡해진 피부를 뽐낸다. 그러다 보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여름이 뒷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8월에서 9월로 넘어가면서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비집고 불어온다. 작별 인사를 하지만 아쉽다며 쉽게 가지는 못한다. 나도 아이들도 서운해하며 남은 여름을 아쉬워한다.

 그리고 여름 끝자락에서 우리 집 기념일이 한번 더 다가온다. 첫째 아이의 생일 9월 초이다. 다 함께 여름을 배웅하러 갈 가족 나들이를 계획해본다. 곁을 가득 채웠던 여름에 감사하며 여름을 기억하며 그렇게 내년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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