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가 갖춰야할 성품이란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252쪽 (까치출판사, 2002)
칭송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 고전, <군주론>을 읽었다. 한 때는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으나, 현대에는 필독서로 거듭난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15세기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었던 마키아벨리이다.
15장부터 20장까지 강력한 지도자에게 어떤 모습이 필요한지 서술하는데, 시대를 떠나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하고 있는 내용이라 흥미롭다. 마키아벨리가 권하는 군주의 덕목을 간추려서 정리해 본다.
“어떻게 사는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다를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선하게 행동하고자 하지만 실수하고 악행을 저지르며 괴로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를 뒤집어 이야기한다. 군주란 선하게 행동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무자비한 자들에 둘러싸여 몰락할 거라는 것이다. 권력을 유지하려면 필요할 때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라고 한다.
이 책의 배경을 알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15년간 일하던 관료이다. 군주제가 들어서던 시기에 반 메디치 인물로 낙인찍히며 1년간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이후 ‘로렌초 2세 데 메디치’ 에게 <군주론>을 써서 헌정한다. 이 책은 ‘오해를 푸시고 저를 유용한 책략가로 등용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자기 추천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로렌초 2세는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딸인 ‘카드린 드 메디치’가 이 책의 열렬한 독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프랑스 왕비가 된 그녀는 세 명의 아들들을 모두 왕으로 세우게 되었으니, <군주론>에 의해서 군주가 만들어진 걸까?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권하는 면모들을 살펴보자.
첫째, 인색하다는 평에 대해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너그럽다는 평판과 자기 과시를 위해 자원을 소비하게 된다면 결국 탐욕적이 된다고 경고한다. 군주는 적을 방어하고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재정을 충분히 유지해야 한다. 특별세를 걷지 않고도 전쟁에서 신민들을 지킬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관후하게 된다. 인색함은 군주가 통치를 가능하게 해주는 덕목이라는 것이다.
둘째, 잔인하다는 평판을 걱정해서는 안된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두려움을 받는 것이 더 안전하다.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효과적이다. 한니발의 경우는 그의 비인간적인 잔인함에 의해 군내부에서 어떤 분란도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두려움을 받아도 미움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신민들의 재산을 빼앗지 않아야 한다.
셋째, 신의를 지키고자 해서는 안된다. 약속이 불리하게 작용할 때 그 약속은 지킬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된다. 위대한 성취를 이룬 군주들은 상대를 기만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승리를 거두었다.
다시 말하면, 군주는 선하다 여겨지는 성품들을 실제 갖출 필요는 없다. 다만 구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컨대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좋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 신의 없이, 무자비하게, 비인도적으로 행동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운명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로 인간의 악한 본성을 꼽는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기만에 능하며, 이득에 눈이 어둡다.
당신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동안은 온갖 충성을 다한다. 그러나 당신이 정작 궁지에 몰리게 되면, 그들은 등을 돌린다.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
위의 말들은 마치 무자비한 칼날처럼 느껴진다. 마키아벨리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이야기했던 이유는, 신민들 즉 사람이란 존재의 밑바닥을 파헤져 경고하려는 목적이었을까? 군주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대는 군주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람의 선의를 믿고 이상을 추구하기 어려운 시대라 짐작한다.
그렇다고 권력을 유지하고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꼭 냉혈한이 되어야 했던 걸까? 군주도 사람인데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남아 권력을 쟁취했을 때 성취와 만족만을 느낄까? 혹시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히진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전쟁 그 이후의 통치에 대해서는 부족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나는 감히 <군주론>을 반쪽짜리 교본이라 말하고 싶다.
카트린 드 메디치의 세 명의 아들인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는 좋지 않은 결말을 보여준다. 짧은 재위 기간과 종교전쟁으로 사회가 불안해지며, 이들을 끝으로 프랑스의‘발르와’ 왕조는 끊기고 ‘부르봉’ 왕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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