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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Aug 16. 2021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220쪽 (청아출판사, 2020)


 현재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시련을 겪고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라 손들어 본다. 어쨌든 모두에게 쉽지 않은 시기임은 분명하니까.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모두 어려운 시기이다. 누가 더 힘든가를 비교하는 건 어렵기도 하고 의미도 없을 것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가 말하길, 인간의 고통은 기체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한다.(p.79)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보내면 방 크기에 무관하게 그 기체는 고르게 퍼지며 그 방을 채운다. 고통 또한 크든 작든 누군가의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그렇다면 즐거움도 비슷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일로도 행복을 피워내면 내면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출과 활동이 최소한으로 줄어들며 나는‘기이한 시간 감각’(p.115)을 경험하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오늘은 아이들과 무엇을 해야 하나... 몇 번의 신경전이 벌어질까… 막막한 기분에 하루가 아주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돌아서 보면 일주일,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떤 기간은 통째로 증발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결말의 불확실성, 끝을 알 수 없다는 점은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게 한다. 이렇게 정신이 부유하며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는 책을 펼쳐야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강제 수용소 네 곳을 전전하면서도 삶의 품위를 지켜낸 빅터 프랭클 박사의 체험담이며 정신 의학에 관한 책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펼친 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타인들의 불행으로 현재의 나의 어려움을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에서였다.


 이미 여러 경로로 접해보았지만, 1940년대 아우슈비츠는 여전히 참혹하고 충격적이다. 또한 정신이 번쩍 들며 내 안의 나만의 고통들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자가격리와 모임 제한, 돌봄 부담이 늘어난 정도의 불편함과 답답함을 시련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워 숨고 싶어 진다. 수용소의 삶은 치열하고 잔혹한 생존경쟁 그 자체이다. 폭력과 멸시, 죽음이 흔한 돌멩이처럼 굴러다닌다. 2021년의 나는 지극히 풍요로운 현대인인 탓에 (전쟁통의 과거에 비하면 이 글을 읽는 모두는 풍요롭다) 배고픔을 비롯한 여러 육체적인 고통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도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어려움에 주목해본다. 두려움과 모멸감을 느끼고 좌절하고 희망을 잃는 순간들이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가혹하고 무자비하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그 죽음의 수용소안에서 벌거벗겨져 말 그대로 '털 한 오라기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그 순간에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을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빼앗긴 수용소에서, 설령 죽음의 문턱이라 해도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것이 누구에게나 있음을 깨달았다.

p.71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내 사랑의 굳건함, 내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때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아내 모습을 떠올리는 일에 내 자신을 바쳤을 것이다…
p.76 수용소 사람들이 예술과 관련된 행위에 깊은 감동을 받는 것은 음울한 현실과 예술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p.77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한 사람의 고유한 내면이 일으키는 힘, 바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1940년대 아우슈비츠에 비하면 우리는 호화로운 일상을 누린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만족은 항상 상대적인 것이라 기준점이 다르면 요즘의 시기가 더없이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처해있는 환경이 어떻든 우리는 지금 여기서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수 있다. 각자의 선택지는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나는 오늘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리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무슨 의미로 채워갈까? 머무름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행동은 무엇일까?

 

 그리고 불현듯 하나의 질문에 사로잡힌다.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 지금의 시간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마도 시간이 흘러서 코로나 시대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시기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가서 지금을 돌아본다고 상상한다.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하루를 채우며 이 시기를 넘겨보자.

p.215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뒤늦게나마 빅터 프랭클 박사가 살아 돌아와서, 그의 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나락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고 고통을 이긴 몇몇의 위대한 사람이 존재했음에 감사하다. 우리도 그들의 자취를 따라 스스로의 태도를 선택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을 거라 희망한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게 되는 것이다.  - 도스토옙스키



#시련의의미 #빅터프랭클  #비극속에서의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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