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즈 Aug 27. 2021

19세기 소설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의 중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 106쪽 (문학동네, 2018)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 머리가 어떻게 됐나? 여기 이 서류의 검증을 도와주게. 자, 여기 있네."

그러나 그는 다시 말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1853 허먼 멜빌의 중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는  말이 반복적으로 울려 퍼진다. 영문으로는 "I prefer not to".

작가인 허먼 멜빌은 미국 현대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모비 딕>(1851)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생전에 평론가들에게 냉대받고 책은 잘 팔리지 않아 생활고에 시달렸던 불운한 사람이다. 연이은 실패와 경제적 곤궁 속에서 당장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궁지에 몰려 쓴 소설이 이 작품이다.


 *'필경사' 복사기가 없던 시절에 필사를 하고 글자 수대로 돈을 받던 직업이었다. - 복사기는 1938 욕에서 체스터 칼슨에 의해 발명되었다 - 원어로는 'scrivener'이다.  시대 사전에는 ' 쓰는 사람', '문서를 작성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고 하니 소설  인물인 바틀비는 어쩌면 허먼 멜빌의  다른 자아였겠다.

 


이 소설은 바틀비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그의 고용주인 변호사의 시각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뿐이다.

19세기 월 스트리트는 지금처럼 사무실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높은 건물 사이의 어느 건물 2층에 있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안에는 필사원 둘, 사환 소년 한 명이 고용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여러 난해한 서류들을 필사하고 검증하는 일을 한다. 새로 고용된 바틀비는 처음에는 조용하고 성실하게 놀라운 양을 필사하며 신임을 얻는다. 필사원의 통상 업무 중에는 자신이 베껴 쓴 문서를 검증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인 화자를 포함해 사무실의 모두가 당연한 일로 여겼던 이 일을 하자고 했을 때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온다.

 바틀비는 온화한 목소리로 사무실을 통째로 흔든다. "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p.34 사람이 전례가 없고 몹시 부당한 방식의 위협을 받으면 그 자신이 지닌 가장 분명한 믿음마저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 이것은 별로 드문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제 아무리 훌륭해도 모든 정의와 이성이 반대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근무를 하는 곳에서 동료를 도와주거나 여러 잔일들을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이에 바틀비의 대답은 내 마음에도 묘한 불편함을 일으켰다. 심지어 나는 고용주의 입장이 아닌데도. 누군가 크게 소리칠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사람이 꽉 막혔어?! 한편 마음 한 구석에서 의문이 피어오른다. 안 할 수도 있는 거였어? 그것도 선택지에 있던 거야?

 마치 시험장에서 오지선다형 중 무얼 골라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답안지를 통째로 백지로 비우고는 홀연히 나가버리는 광경을 보게 된 심정이다.


 심부름에서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본업인 필사도 그만두고 사무실을 떠나라는 요구에도 응하지 않는다. 그는 계속 그러지 않는, 떠나지 않는 것을 택한다. 사무실에 기거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먹지도 자지도 않는 그는 괴짜를 넘어 유령이 되어간다.

 세속적인 고용주인 변호사는 나름의 여러 방법들을 쓰지만. 전혀 먹히지 않자 사무실까지 이전하며 그를 떼어내려 한다.

p.75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그에게서 그토록 간절히 벗어나기를 원했는데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야 했다.


 결국 바틀비는 건물주를 비롯해 모든 이들에게 거부당하며 툼스** 구치소(**무덤이라는 뜻)로 쫓겨난다. 그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모두를 불쾌하고 분개하게 한다. 정직하고 조용하며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았지만 '합리적'이지는 못한 바틀비. 결국 죽음으로 치닫는 그가 너무 안타까워서 붙잡고 다그치고 싶어 진다.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그러면 그가 냉담하게 대답할 것이다. "그 이유를 스스로 보지 못하세요?"


 에필로그에서 그의 과거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언급된다. 바틀비는 워싱턴의 수취인 불명 우편물을 (Dead Letter) 처리하는 하급 직원이었다. 흔한 하층계급으로 꽤나 불운해 보이는 우리의 주인공, 바틀비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겼을 편지들을 소각하면서 자신의 내면까지 그슬린 건 아닐는지.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창백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이곳저곳에서 점원, 바텐더, 일꾼 등으로 일하며 전전했을 바틀비를 상상해본다. 마지막으로 구한 필경사의 일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의 영혼을 더욱 메마르게 했다. 더없이 기계적으로 일해야 했으니. 자신의 인간성을 소진하라고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회를 향해 그는 외친다. "I prefer not to".


p.50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동정심은 때로 고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동정심이 효과적인 구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상식은 영혼에게 동정심을 떨치라고 명한다...... 고통받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이었으며 나는 그의 영혼에 닿을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