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들은 갇혀 있기를 거부한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태 켈러, 336쪽 (돌베개, 2021)
이야기와 현실의 경계는 어디쯤 일까? 때때로 이야기는 예언처럼 현실이 되기도 한다. 혹은 현실의 일들이 이야기로 변형되어 세상 곳곳을 여행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강물처럼 흘러가서 사방에 스며들고 다시 샘솟는 과정을 반복한다. 지금 나도 무언가를 쓰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지 않는가.
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또 얼마나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을 수 있을까?
작가는 미국에 사는 이민 3세대로, 어느 날 자신을 1/4 한국인이라 말하곤 이상함을 느낀다. 일부만 한국인이라거나 반만 미국인이라는 식의 말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자신에게 담긴 원형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이 소설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첫 문장. 나는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
주인공인 십 대 소녀 릴리는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다. 스스로를 투명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시아 여자애'이다. 반면 언니 샘은 염색과 반항으로 무장한 소위 센 척하는 십 대이다. 상반된 자매의 모습만큼이나 둘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한 사람의 내면을 다 담아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릴리의 할머니나 엄마의 경우도 단순하지 않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평범한 겉모습 아래 숨겨진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소설은 릴리와 샘, 엄마 이렇게 셋이 할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할머니는 한국에서 자랐지만 그의 엄마를 찾아 미국으로 온 이민 1세대이다. 영어에 서툴어 짧은 단어들을 늘어놓지만 그 속에 지혜가 번뜩인다. 릴리는 어린 시절에 여느 손녀처럼 할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중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자매 버전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이야기에 심하게 매료된 탓일까? 아니면 죽음과 가까워지는 할머니에 대한 걱정 때문일까? 할머니의 집으로 오는 길에 릴리는 '호랑이 환영'을 보게 된다. 그리고 호랑이와의 만남을 통해 할머니가 미처 해주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알 게 된다. 호랑이는 '떡'이 아닌 '이야기'를 원한다. 할머니가 이야기들을 숨겼고 그래서 할머니가 위험해졌다고 했다. 릴리는 이야기가 담긴 '유리단지'를 찾아 할머니를 돕고자 애쓰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새로운 내면의 '호랑이'를 발견해간다.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이를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한다.) 처음에 릴리는 호랑이를 두려워하고 의심한다. 그러나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호랑이를 잡을 '덫'을 놓기도 하고, 호랑이와 마주하고 대화하면서 자신이 흘러온 곳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호랑이가 주도했지만, 마지막을 릴리가 만들어가는 점이 매력적이다. 릴리는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 아이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보는 아이다.
작가 자신이 정체성이 시작된 곳, 한국에는 여러 옛이야기들이 있다. 그 시작을 단군 신화라고 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저자인 태 켈러는 곰이 아닌 호랑이에게 주목하며 의문을 가진다. 참지 않고 뛰쳐나온 그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옛이야기는 새롭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어둡고 아픈 우리의 역사도 이야기이다. 더는 감춰져서는 안 된다. 주인공 릴리처럼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p.81 "그런 민간 설화는 꼭 그 자체에 영혼이 달린 것 같기도 해. 누군가가 자기를 발견해서 세상에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세계 곳곳을 떠다니는 거야."
p.235 "... 이야기에선 질서와 정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감정이 중요하지. 그러고 감정이 늘 이해가 되는 건 아니거든....... 이야기란... 물 같아. 비 같고. 이야기는 우리가 꽉 잡아 보려 해도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거든."
p.275 "... 숨긴다고 해서 과거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에요. 갇혀 있는 것뿐이지."
p.307 "때로 가장 강한 일은 도망을 그만 가는 거야."
p.322 나 같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배우게 된다는 이야기. 내가 해 온 일이 바로 그것이다. 내 테두리를 밖으로 밀어내 내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 알아내는 일.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 소설은 십 대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직면하는 조부모의 죽음, 작별과 애도를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또 다른 청소년 소설인 <리버보이>(팀 보울러 글, 1997)가 연상된다. 모두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둘을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