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즈 Sep 08. 2021

그 시절 걱정인형

아침 바람이 쌀쌀하다. 어제는 밤 기온이 내려가서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백로였다.

이렇게 날씨가 성큼성큼 변화될 때는 할 일이 하나 생긴다. 반팔 일색이던 옷장을 정리하고 가을철 입을 옷을 꺼내 놓는 것이다. 어른들 옷장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옷 정리는 좀 더 복잡하다. 한여름 옷을 모두 꺼내서 늘어놓고 다음에 입을 수 있는 옷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구별한다. 여름옷들은 세탁을 자주 했기 때문에 금세 많이 헤져서 부득이 처분해야 것도 있다. 내년을 위해 보관할 옷, 누군가에게 물려줄 옷, 과감히 버릴 옷 이렇게 세 가지로 착착 나누어 본다. 그러다 자주 입은 옷을 들고 잠시 멍하니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한 계절 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가늠해보기도 한다.

 

입는다, 입지 않는다... 물려준다,버린다... 어영부영 아이들 옷을 꺼내 분류를 계속하다 보니 ‘아카시아 잎’이 떠오른다. 한다, 안 한다.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이런 놀이 다들 한 번씩 해보지 않았을까? 1990년 즈음 내가 살던 동네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아주 흔했다. 뒷산 근처에서 아카시아 잎을 꺾어서 동네 아이들과 하던 놀이는 사실 놀이라기 보단 상담소를 찾아가는 것과 가까웠다. 동네 오빠가 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또는 우리가 진짜 단짝 친구인지 아닌지 등의 이야기를 꺼내놓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애꿎은 아카시아 나무를 붙잡고 우정과 사랑을 논하며 원하는 답을 하라고 다그치면서 여러 차례 잎을 꺾어대곤 했다. 생각해보니 아카시아 나무도 꽤나 피곤했겠다. 그 시절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며 귀를 열어준 나무에게 뒤늦게 고마움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사소하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고민거리들이 참 많기도 했다. 사소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동시에 고민할 수도 있었다. 그것들을 생각하던 순간은 사뭇 진지했지만 지극히 사소했기에 아카시아 잎처럼 금세 휙 불어버릴 수 있었다. 손에 붙잡거나 쥐고 있지 않고 그냥 가볍게 날려 보냈다. 그리곤 뒤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제 나이, 책임, 몸무게까지 여러 가지로 무거워졌다. 그 무게를 느끼며 자꾸 가라앉고 있는 기분도 느낀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가볍게 살고 싶다. 어르신들이 마음은 청춘이라고 하시던 말씀이 새삼 공감이 간다. 청춘을 넘어서 어린 마음을 지키고 보듬고 싶다. 그냥 철없이 계속 살고 싶다. 다들 순수했던 그래서 더없이 가벼웠던 그 시절의 마음을 지켜낸다면 세상이 조금은 투명해지지 않을까.

항상 삶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오는 고민들은 있겠지만, 아카시아 잎을 떼어 내듯 그렇게 훅 불어버리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아이들 옷장을 정리하며 또 옆길로 샜다.

요즘은 아카시아 나무를 찾기가 어렵다. 녹지가 귀해서인지 살펴볼 여유가 없던 건지. 오후에는 산책을 나서며 동네를 찬찬히 둘러봐야겠다.


아카시아 나뭇잎 *출처 : gettyimages.com







매거진의 이전글 누나 같이 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