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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Sep 16. 2021

내 아이를 몰라서,

한의원 방문기라 해두자.


둘째 주니를 데리고 한의원에 갔다. 줄곧 체구가 작고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아 고민이었다. 그러다 크겠지. 학교 가면 잘 먹겠지. 그러나 해가 바뀌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또 바뀌며 학년을 거듭 올라가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으니 다른 집들은 애들이 살찐다며 걱정하던데. 우리 집 둘째의 체중계 눈금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아이들 평균 키와 체중표를 찾아서 비교해보니 아홉 살 평균에 좀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주니는 열 살이다. 더 이상은 애써 차분한 척하기 어려웠다. 진작에 보약 한 첩 해 먹였어야 하는 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 한의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집 근처로 ‘한의원’을 검색해보니 동네에 무려 8곳의 병원이 나열되었다. 어휴 많네. 한의원은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가 좋은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인터넷 후기를 뒤적이다 보니 약을 잘 지어주는, 침을 잘 놓는, 추나요법으로 유명한 등등의 여러 수식어가 보였다. 그냥 좋다는 식의 두리뭉실한 호감의 후기도 있었다. 읽을수록 혼란스러워져서 그냥 가까운 곳으로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제일 가깝다고 검색된 곳이 평이 나쁘지 않았고 오래되었다는 말에 마음이 기울었다. 한 곳에서 삼십 년 가까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만으로 왠지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니의 손을 잡아끌고 오래된 상가 2층에 있는 한의원의 문을 열었다. 끼익. 진하게 퍼지는 한약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색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접수대 뒤로 빼곡한 약재 서랍들이 보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냄새가 오크색의 바닥과 가구들에 퍽 어울렸다. 이삼십 년 전쯤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었다. 예약 없이 갔지만 진료 중이던 환자 외에 대기실에는 사람은 없어 다음 차례로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의사 선생님은 작은 체구였고 연세도 꽤 있으신 듯했으며 무엇보다 무척 건강해 보였다. 특히 얼굴빛과 눈빛이 밝은 인상이었는데, 칙칙하고 푸석한 내 민낯과 사뭇 비교되었다.


-자 봅시다. 어떤 것 때문에 왔어요?

-네, 아이가 잘 안크는 거 같아서요, 잘 먹지도 않고… 입이 짧아요. 그러다 보니 체력도 부족하고요.


-이제부터 내가 몇 가지 물어볼 건데 잘 생각하고 대답을 해야 됩니다.

-네. (얼마든지요.)


-크면서 많이 아팠던 적 있었어요? 감기 자주 걸리고 그랬나요?

-아니요. 크게 아팠던 적 없고 대체로 건강했어요. 학교 가면서는 감기도 거의 안 걸리고요.


-추위와 더위 중에 어떤 걸 더 타요?

-음, 추위요.

여기서 주니가 불쑥 끼어들어왔다. 때는 9월이지만 여름의 쨍함이 가시지 않은 날씨였다.

-엄마, 요즘 낮에 얼마나 더운데. 나 지금도 땀나!

어? 당황하는 나를 두고 한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보며 친절하게 대꾸하셨다.

-그러네. 지금도 땀났네. 여름에 더위 많이 탔니?

-네 이거 다 땀이에요!

-어…. 그래도 기온 떨어지면 금방 추워하잖아. 어릴 땐 더 그랬고….

나는 왠지 자신 없게 우물거렸다.


-잠투정 있어요? 자면서  젖을 만큼  나나요?

-음, 어... 잠은 잘 자는 편이고요, 땀은 잘 안 나요.

-엄마! 나 자는데 삼십 분 넘게 걸려. 오래 걸리는데. 그리고 땀도 나.

-아... 그, 그래. (저 누나에 비하면 땀도 적고 금방 잠드는데?…..)  모 땀날 때도 있는데 자주는 아니에요..

아이가 자꾸 다른 의견을 말하니 머릿속이 알쏭달쏭해졌다.


-성격은 어떤가요? 활발하나요?

-예, 활달한 편이에요. 운동도 좋아하고요. (이건 확실할걸?)


다시 불쑥 들어오는 주니.

-저 축구 많이 해요. 잘해요. 이번 주에 축구 가서 경기했는데 제가 패스해가지고...

-그래 알았어.. 가만히 좀 있어봐…..

나는 아이에게 눈짓을 쏘며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네, 운동하면 빠른 편입니까 느린 편입니까?

-날쌔다고 해요. 선생님이.


-성격도 급한 편인가요? 아니면 좀 느긋한가요?

-급한 편인 거 같아요.


-소화는 잘 됩니까? 화장실 갈 때 설사 자주 하나요?

-조금만 많이 먹으면 부대끼는지 배 아프다고 해서 많이 못 먹어요. 설사는 안 하고요.

또 훅 들어오는 주니.

-저 화장실 가면 똥 크게 눠요. 바나나 모양이요. 제가 책에서 찾아봤는데 건강한 거래요!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 주니야….. 엄마가 말하게 기다려봐…)


한의사 선생님은 아예 아이에게 직접 질문을 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있니? 수박 좋아하니?

-네 좋아해요 멜론, 참외, 수박 다 좋아요!


이번엔 내게 다시 질문했다.

-피부 색깔은 원래 까무잡잡합니까? 아니면 이번 여름에 탄 건가요?

-아, 하얀 편인데 이번에 놀러 갔다 오면서 많이 타서요.

여기 보세요! 팔을 걷어붙이는 주니…..

-음, 보자... 아닌데? 하얀 편은 아닌데요?

-아... 그게 어릴 땐 더 하앴는데….(지금은 아닌가? 내 눈엔 하얀데….?)

-엄마가 잘 모르시네.

이 한 마디의 일갈로 내 말이 가차 없이 잘렸다. 이어졌던 질문이 몇 가지 더 있었으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뭔가 궁색하게 변명을 하듯 답변을 이어갔다.

한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메모를 하시기도 직접 진맥을 하고 배를 들춰보고 눌러보고 하셨다. 그리곤 일반 보약을 지어먹이기로 하고 여러 유의사항을 듣고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 한의원을 나섰다.


집으로 오는 길에 주변의 소음이 잘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잘 모르시네, 잘 모르시네... 란 말이 머릿속에서 통통 튕겨가며 메아리처럼 울렸다. 가장 아이를 잘 알아야 하는 게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듣는 순간 그 말에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이행되지 않은 의무사항을 확인받은 듯했다. 그런데 자꾸 곱씹다 보니 괜히 그 말을 인정하고 싶어 진다.

그렇다. 나는 내 아이를 잘 모른다. 그냥 그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진짜 모른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모르고,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과거의 모습조차 내게 좋은데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보호자의 역할을 한다며 옆에 붙어서 돌보고 있지만 돌봄과 앎은 꼭 같이 가는 건 아닌가 보다. 물론 엄마가 잘 모를 수 도 있다는 건 통념상 어색한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혹시 그게 자연스러운 것 일 수 있다면..?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서 모르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경계가 없는 사이라서 오히려 잘 안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에 머리를 콕 박고 아주 가깝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잘 보이긴 커녕 눈만 피곤해지는 것처럼. 잘 보려면 우선 적당한 거리와 어느 정도의 구분선이 필요하겠다. 한 걸음 물러나 어느 정도 떨어져서 온전한 개인으로 바라보기. 내 아이라는, 직접 챙겨야 하는 존재로, 책임과 부담과 기대와 바람이 어지러이 섞인 지금의 시선을 잠시 거두어 보자.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변하는 아이를 다 알겠다는 것이 욕심일 수도 있겠다. 성장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며 변화의 소리를 감지할 수 있도록 눈과 귀를 열어 두도록 하자. 잘 모르는 아이 그렇지만 알아가고 싶은 아이 그게 바로 내 아이다.




[에필로그]

진료가 마무리되며 한의사 선생님이 긴 호흡으로 설명을 덧붙이셨다.


이 애는 동적이고 활발하고 좀 까불거리는 아이입니다. 살펴보니까 잘 안 먹는 거 제외하면 다른 문제는 없어요. 건강하고. 아이 아빠도 어렸을 때 비슷했다고 그러지요? 호리호리하고. 당장 식욕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보다 일단 몸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해요. 약을 봄, 가을로 먹이면 좋겠어요. 열 살이니 딱 좋아요. 내년 봄에는 녹용도 넣어서 약을 짓고. 일단 일반 보약을 잘 지어줄게요. 아 홍삼은 먹이지 마세요. 나쁜 건 아닌데 얘한텐 좀 안 맞을 수도 있을 거 같아. 몸의 균형을 깰 수도 있어요. 홍삼은 원래 좀 처지고 정적인 애들한테 잘 맞습니다. 얘는 아니고. 그리고 약 먹는 동안은 기름진 음식은 안되고 밀가루도 먹이지 마시고... 먹으면서 반응이 어떤지 제가 전화해서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어쨌든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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