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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Sep 24. 2021

명절을 보내며

길고 길었던 명절 연휴가 저물었다. 누구든 후-하고 숨을 길게 내뱉고 싶을 만큼 긴 호흡의 연휴였다. 주말과 이어져 월, 화, 수 내리 5일간 이어지는 휴일로 꼭 멀리 다녀오지 않아도 마음만은 훨씬 에돌아 온 듯 하다. 일상의 흐트러짐이 온몸과 마음에 여독처럼 퍼져서 아직 휴일이 끝났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올해는 추석 전날은 시댁에서 다음날은 친정집에서 보냈다. 남편과 나, 아이들이 함께 차를 타고서. 시댁은 한 시간 가량, 친정은 이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물론 이는 한 방향의 이동시간만을 고려한 것이다. 차를 타고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명절은 이미 시작된다. 챙겨갈 선물세트를 고르고 부모님께 드릴 용돈을 신권으로 바꾸고 아이들 입힐 옷을 고민하고 하루씩 꼬박 머무르는 시간에 애들이 보채거나 지루해하지 않도록 놀이할 거리도 고민하는 것은 어떤가. 그나마 올해는 자고 오지 않기로 해서 짐을 좀 덜었다. 다 명절 연휴를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시간을 위한 시간.


예전처럼 차례상을 준비하거나 일가 친척 어른들을 만나거나 하지 않는데도 여전히 '명절'은 그 이름만으로 꽤 부담스럽다. 일 년에 두 번인데 하며 모두의 만족을 끌어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뿜어 낸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명절풍경이 확연히 달라지긴 했다. 가족 간의 모임 없이 오고 가지 않는 명절이 두세  지났다.  잠수 끝에  밖으로 고개를 내민  숨이  트였다고 말하면 내가 나쁜 걸까. 딱히 일이 많다거나 대식구라거나 고향길이 멀다거나  것도 아닌데.

명절이라는 큰 제목을 떼고 그저 부모님을 뵙는 것, 평소 보기 힘든 친척들을 만날 기회로 즐겁게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그게 그렇게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 결혼이란 걸 하고 나서부터였다. 명절에 대한 의무감. 기혼자에게 기대되는 명절의 일과들. 누가 나에게 이런 감정과 태도를 가르친 것일까? 의례 바람직하다 여기는 명절의 모습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보내왔다. 십 년 남짓 되고 보니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본다.


결혼 초반에는 당연한 듯 어른들의 기대에 맞춘 명절을 보내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물론 누군가의 시선엔 그렇게 보이지 않거나 부족했을지도 모르지만. 왜 그러는지 누가 꾸중하지 않는데도 이렇게 눈치를 보게 된다. 평범하고 보수적인 시각이 나를 통해 실현되며 알아서 먼저 반성한다.


어쩌면 한 해에 두 번 찾아오는 이 묵직함 또는 버거움은 나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데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이 기간만큼은 사고의 기준이 내 안에 있지 못한다. 이런 거 사다 드리면 마음에 들어 하실까. 몇 시까지는 올 거라고 생각하실 거야. 명절인데 일 년에 두 번인데. 이 정도는 챙겨드려야지. 이쯤은 일해야지. 설거지는 알아서 바로 해야 다음 상을 차리지. 저녁 일찍 먹고 가겠다고 하면 서운해하실 거야. 등등.


왜 드릴 수 있는 만큼을 정하지 못하고, 왜 오고 가는 시각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나. 알아서 그릇 치우고 닦는 건 생존본능인지 저절로 나온다.


이 기간은 유독 어떻게 보일까에 대해 그래야만 하는 태도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래서인가. 명절이 지나면 이삼일은 멍하니 코 빠져 지낸다.


여전히  안에는, 자주 있는 날도 아닌데  많지 않은데 예민하게 굴지 말라는 목소리가 있다.  정도는  도리이니 해야 된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요구도 들린다. 어디서  거니? 문을 열어준 기억이 없는데 슬그머니 들어와 주인처럼 앉아 있는 타인의 생각들이다.

힘든 건 몸이 아니다. 내 생각인척하는 사회의 잣대로 자신을 가늠하며 옭아맨다. 지레 자아를 숨기고 목소리를 낮추는 내 마음이 나를 힘들게 한다. 외부의 기준으로 자신을 재단하는 내 생각들이 나를 멈추게 한다.


이제는 조금 달라져도 되지 않을까?  명의 사람이 있다면  가지의 삶의 모습이 있을 테다.  개의 집이 있을  그만큼 여러 가지의 명절풍경이 있다면 좋겠다. 줄지 않는 명절음식 말고 색다른  해먹어요. 두어 시간쯤 부엌에서 벗어나 근처 공원에 산책은 어때요. 저희는 이번 연휴에 다른 일정이 생겨서 미리 갈게요 등등. 다양한 자아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그런 기간이 되면 좋겠다. 그래야만 모두에게 진짜 연휴가   있을  같다. 그렇게 가족애도 한결 돈독해질 거란 기대도 해본다.


이런저런 생각이 무색하게 다음 명절도 역시 비슷한 일정을 보내게 될는지 모른다. 다만 적어도 내 안의 불청객과는 이제 그만 작별하고 싶다. 지레 눈치를 보거나 침묵하지 않고 진짜 목소리의 볼륨을 조금 올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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