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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Oct 11. 2021

아이들과 즐기는 홈뷔페

휴일 저녁 시간이 가까워진다. 시시하고 어려운 질문을 한다.

저녁으로 뭐 해먹지?


냉장고 안에는 몇 번 들락날락한 밑반찬 서너 가지가 있고, 밥은 있는 쌀로 앉히면 그만인데…’주요리’라고 할만한 게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김을 모락모락 풍기는 국물이 있고 먹음직한 고기반찬도 더해져야 한국인의 한 끼 밥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내가 한식이라고 부를 만한 요리에 능숙한 것은 아니다. 결혼한 지 14년 차고 육아의 길에 들어선 지 십 년이 넘었는데 부끄럽게도 여전히 음식은 만들기보다 먹는 것에 자신있다. 가정일을 잘해보려 하기 보다 그때그때 급한 불을 끄는 식으로 살림을 꾸려와서 요리실력도 제자리이다. 그런 나의 몹쓸 솜씨에도 반찬 투정 하지 않고 묵묵히 먹어주는 식구들에 고마울 따름이다.(갑자기 감사편지...?)

아무튼 각종 반조리 식품과 밀키트가 없었다면, 여러 배달앱이 없었다면 어찌 먹고 살았을지 어휴 굳이 상상해보지 않겠다.


그나마 먹을만하게 만들 줄 아는 요리 몇 가지로 메뉴가 돌고 도는 식인데,

휴일에 아침과 점심으로 두 끼를 해먹고 나면 더는 새로운 음식이 떠오르지 않는다. 노을이 짙어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느닷없이 진지한 고민에 빠진다. 왜 밥때는 하루에 세 번 찾아오는지, 삼시 세끼 문화에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여기에 혹시 어떤 불합리가 있는건 아닌지.... 가열차게 따져보고 싶다.

아 이럴 때가 아니다. 넋 놓고 있다가 애들 배를 곯게 할 순 없다. 상념은 제쳐놓고 행동해야 한다. 밥을 차려야 한다. 어쩌나, 궁여지책으로 찾는 배달음식도 오늘은 왠지 내키지 않는다.

아 진짜 뭐하지, 뭐 먹지….?


고심하던 찰나, 두 아이가 웬일로 입을 모아 외친다.

-엄마, 저녁때 뷔페로 차려 먹자!

[엥? 뭐 해먹을지 한 가지도 생각이 안 나는데, 뷔페가 웬 말이니?!]

-집에서도 음식점처럼, 떠먹을 수 있게 해놓쿠, 먹고 싶은 만큼 가져가는 거 하고 싶은데.

-아 각자 하나씩 만들면 되겠다! 네 명이 하면 네 가지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아, 나 계란국 만들 수 있어. 누난 뭐 만들 거야?

-그럼 난 콘치즈!

-그래 그럼 6시 반 되면 만드는 거다!


속사포처럼 쏟아진 말들과 어느새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들 뒷모습에 어리둥절하다.

......나한테 동의를 구한 거 맞나?

저들끼리 정해놓고 내 의견은 묻지도 않는군. 이를 어쩐담. 그래, 너희가 하자고 하면 해야지. 냉장고에 있는 거로 모라도 만들 수 있겠지…?


십 분쯤 지났을까, 아이들이 방에서 나와 부엌에서 복작거린다.

둘이서 냉장고를 열더니 이것저것 꺼낸다. 달걀, 파, 양파, 다진 마늘… 둘째가 ‘어디있지?’를 연발하고 첫째가 ‘이거야!’ 하며 찾아주고. 둘이서 냄비랑 그릇도 꺼내고 도마도 펼쳤다. 작은 칼도 두 개 꺼내더니 둘째가 파를 썰고 첫째 아이는 양파를 잘게 자른다. 나는 한번 두고 보겠어...하는 심정으로 뒷짐을 지고 있다가 칼질하는 모습에 얼른 참견하게 된다. 손 조심해, 손가락 끝을 구부려야 해.


첫째 아이는 옥수수콘 남은것과 마요네즈를 섞더니 양파 다진것을 추가하고 그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가득 뿌렸다. 레시피를 검색해보았단다. 오븐을 열더니 10분의 시간을 맞춘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둘째 아이는 물을 계량컵에 붓는 듯하더니 냄비에 콸콸 채워서 끓인다. 보글보글 물거품이 올라올 무렵 불세기를 줄이고 파를 넣는다. 다음엔 날계란을 4개 깨뜨려 섞고, 냄비에 붓고는 휘휘 저어준다.

-다시마랑 다진마늘도 넣는거야?

꺼내놓은 재료를 보고 한 마디하니 아차차 하며 다시마도 몇 조각 넣고 다진 마늘도 티스푼으로 한번 떠서 넣는다. 소금도 좀 뿌린단다.


어쭈 둘 다 제법이네. 서투른 듯 어색한 듯 척척 잘한다. 요 녀석들…내버려두면 나보다 낫겠는데…?


이젠 내 차례이다. 냉동실 칸을 뒤적거려 닭안심 얼린 것을 발견했다. 급하게 해동을 하려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팬에 식용유를 둘러 달군다. 닭고기를 팬에 올리고 소금이랑 후추를 톡톡 뿌려주고, 익는 것을 보며 마늘을 몇 개 썰었다. 아 중요한 걸 깜박했다. 버터를 얼른 꺼냈다. 어느 정도 익어갈 무렵 닭고기를 뒤짚고 마늘과 버터를 아낌없이 추가해준다. 나의 메뉴는 닭안심 버터구이. 급하게 만든 것 치곤 냄새가 괜찮은 것 같다. 아무렴 부엌에서 보낸 세월이 있는데, 내심 뿌듯하다.  


컴퓨터에 빠져 있던 아빠도 소환되었다. 잠시 망설이다 며칠 전 밤산책 나가 사온 편의점표 야식을 꺼냈다. 오돌뼈볶음이다. 이거 애들이 먹을 수 있는건가? 매운데? 아무튼 뭐라도 해. 전자레인지에 데워도 되지만 팬에 볶는다. 아빠도 요리해서 만든 거로 보여야 하니까.


이렇게 얼렁뚱땅 오늘의 저녁이 완성되었다. 언제 고민했나 싶게 무려 뷔페식이다. 음식들을 나란히 줄세우고 떠먹을수 있게 늘어놓으니 그럴싸하다. 가짓수도 많지 않은데 기분탓인지 평소 먹던 식사보다 푸짐해보인다. 게다가 소꼽놀이 하듯 같이 어울리며 재미나다. 아이들 얼굴을 보니 들뜸과 만족의 감정이 보인다. 스스로 해낸 요리에 어깨가 올라가고, 원하는 만큼 덜어 먹는 방법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우리집이 뷔페식당이 되던 날, 두 아이가 함박 함박 웃는다.




빠르게 소진되는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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