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어오니 날씨따라 몸이 약해진 듯하다. 원래 비염 알레르기가 있는 탓도 있겠지만, 콧물이 더 자주 난다. 건조한 날씨 때문인지 콧구멍 한쪽이 막히기 까지 해서 답답하다. 오늘은 일찍 깨서 일어났더니 아침 공기가 더 차게 느껴진다. 물론 두터운 콘크리트로 감싸지고 보일러도 틀어진 실내가 얼마나 춥겠냐 싶긴 하지만. 잠이 아직 깨지 않아 몸이 움츠러들어 그렇게 느껴지나 보다.
스마트폰으로 기온부터 확인해보았다. 영상 2도라고 하니 바깥 공기는 많이 찰 것이다. 나는 조금 피로하거나 찬 바람을 쐬면 아랫배가 쉬이 아파진다. 살살 쑤시며 불편한 정도인데 원래도 장이 예민한 편이라 그렇다. 호흡기에 위장에, 글로 쓰고 보니 환자 같지만 사실 크게 말썽난 곳은 없다. 바쁘게 일상생활을 하다 피로감을 느낄 때면 그저 내 몸에서 제일 약한 축에 속하는 기관이 ‘좀 쉬어야지?’ 하며 신호를 보내는 거다.
나이가 들어가며 몸이 약해지고 불편하다 느껴지는 건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아직 그런 말을 말하긴 민망한 나이, 마흔하나. 문득 지금의 내 나이즈음의 나의 엄마를 떠올려본다. 삼십 년 전 엄마는 더없이 젊었고 건강했고 힘이 셌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이제 내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니 그 무렵의 엄마와 나는 오 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내가 선명히 기억하는 엄마의 가장 눈부신 시절이 요즘 나의 시기인 셈이다. 그런데 현재는 내가 아는 나의 가장 나이 든 모습이기도 하다. 둥글게 시간 여행을 하듯 무언가 기묘하게 느껴진다.
그 시절 엄마는 활기찼다. 혼자서 가구를 척척 옮기고, 시장에 가서 장을 보며 수박도 거뜬히 들고 오던 모습이 기억난다. 반면 지금의 나는 음료수병도 무겁네 손목이 아프네 하며 시장바구니를 꼭 배달시키곤 한다. 시대가 변해 편리해지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무리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본래 몸을 사리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마음가짐을 달리한 건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즈음이었다. 그때쯤 친정엄마가 크게 아프셨다. 그런데 병명을 진단받고 대학병원을 알아보고 차례를 기다려 입원을 한 후 종양 제거 수술을 받는 엄마 곁에 나는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수술 후에야 뒤늦게 알았다. 내가 임신 초기였던 시기라서, 많이 걱정할까 봐, 어떻게 전할지 몰라서 이래저래 말하지 않고 아예 숨기시려 했단다. 예상하지 못한 우환을 만나 여러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다. 먼저 평정심을 찾고 대처 방안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바쁘시기도 했을 거다. 그래도 같이 걱정하는 게 가족이고 자식 아닌가. 자식에게 말을 못하면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상황을 알게 된 후 나는 아픈 친정엄마에 대한 걱정보다 섭섭함이 앞섰다.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놀람과 당황, 속상함의 소용돌이가 가라앉고 보니 의문이 생겼다. 어찌 그리 지치는 걸 모르던 분한테 병에 찾아온 걸까… 물론 사람을 가려가며 오는 건 아니겠지만.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니라 했던가. 본인 몸은 튼튼해서 걱정이 없다 하셨는데. 어쩌면 그게 문제였을까? 자신하고 안심해서 아끼지 않고 열심히 쓰임을 다 하게 한 태도 말이다. 소중할수록 아껴야 하고 건강할 때 챙겨야...아니, 내가 챙겨드려야 했는데…
다행히 친정엄마는 수술 이후 한동안 항암치료와 외래진료를 다니시며 차츰 건강을 회복하셨다. 예후가 좋은 편이었다. 십 년 가까이 지났고 이제 언제 아팠냐는 듯 기운을 내며 나이는 드셨지만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요즘은 나도 아팠던 엄마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지낼 때가 더 많다. 그래도 그때 엄마에게 한 가지 다짐을 받았다. 이제부터 몸을 아끼고 살자고, 또한 나 자신도 속으로 함께 다짐했다. 건강을 자신하지 않겠다고. 몸은 쓰지 않고 돌보는 거라고. 주변의 누구를 특히 가족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찬 바람에 놀란 몸뚱이를 보듬으며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오늘도 별일 없이 잘 지내시는지 집은 따뜻한지 식사는 언제 하셨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퉁명스런 전화 한 통이 전부인 것 같아 부끄럽다.
더불어 내 몸 상태도 돌아보며 자신을 스스로 챙겨본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끓여 마시며 생각한다. 오늘따라 피곤하다며 엄살을 부려볼까? 그저 이 한 몸 아껴가며 별일 없이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