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새삼 돌아보니 누구 못지않게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회의감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마흔을 넘어가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단테의 [신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단테가 35살에 신곡을 집필했다고 하니 그 당시 기준으로는 중년을 넘어선 시점이었다. 나는 이제 마흔하나, 어디 가서 나이보다 출생연도를 말하는 것이 편해졌다. 나도 인생의 반 고비를 돌아온 걸까? 기대수명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왕성하게 외부활동이 가능한 기간을 기준으로 세우면 반쯤 지났다고 할 수 있을 것같다. 컵에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거나 반이나 남았다거나 하는 건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인생이란 여정을 한 번쯤 돌아보며, 앞도 보고 뒤도 보면서 방향을 찾아가고 싶은 시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스무 해까지는 부모 그늘에서 어리기만 했다. 이때의 서투름과 얄팍함은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라는 변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나는 좀처럼 두터워지지 않고 얇은 종이처럼 흔들렸던 것 같다.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는 등 여러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다. 그때의 선택, 결정이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일까? 취업이 잘되고 인기 있는 학과를 선택하고 연봉을 따져가며 취직을 했는데, 그게 정말 내가 고른 거라고 할 수 있나?
선택의 기준은 줄곧 외부에 있던 것 같다. 바깥의 기준을 나의 기준인양 착각하며 줄기차게 휘둘렸다.
좁게는 부모님이 어디 가서 선뜻 자식 얘기를 하시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정도가 기준이었다. 그게 얼마쯤인지 정확히 몰라서 그걸 알고자 끊임없이 부모의 반응과 주위 어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던 것 같다.
넓게 보면 사회 통념으로 잘 사는 거라고 인정받는 수준을 성취하고자 했다. 나도 어디 가서 선뜻 내 스펙을 얘기할 수 있는 정도가 되려고 했다. 어디까지나 상대의 기준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는 걸 모르고서. 나의 이야기라고 꺼내는 것이 고작 학력, 직장 정도가 다였으니 돌이켜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몇 년 전 나는 퇴사와 함께 사회와의 끈이 떨어지면서 '전업주부'가 되었다. 이상하고 묘한 전환점이었다. 나는 나로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아내, 누구 엄마라는 식으로, 먼저 누군가가 있고 그다음에 내가 있는 거였다. 나는 부록처럼 딸려있는 존재였다.
더는 아무도 묻지 않는 그간의 이력들을 붙들고 살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다. 주로 머리보다 몸을 쓰는 집안일과 육아를 해가면서 생각이란 걸 했다. 이제 나는 누구지?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때때로 내가 만든 안락한 가정에 스스로 갇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떤 날은 쉼 없이 돌아가는 사회의 쳇바퀴에서 벗어난 걸 안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게는 갈 곳을 잃은 양처럼 어리둥절해 하고 둘레둘레 하며 우두커니 있었다.
단테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지만 나는 안온한 내 집에서 길을 잃었다.
어른이 되고서 이십 년 동안 나는 무엇을 꿈꿨는가?
얼핏 스쳐 가는 지난날 꿈들, 희미하게 남아있는 자국들이 있는데, 그게 뭐였을까?
아프리카 케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던 적이 있다. 어릴 적 TV 만화에 나온 드넓은 초원을 보면서 그 안에서 달려보는 상상을 했다. 뜬금없게 여우원숭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내 짐작에 여우원숭이는 케냐의 초원에 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고 싶었다. 실제로는 대부분 마다가스카르에 산다고 한다. 아프리카 대륙 남동쪽에 있는 섬나라. 그곳에 발디뎌볼 수 있을까?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여우원숭이를 만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번지점프를 해보고 싶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를 반복해서 감상하며 뉴질랜드 어딘가의, 찾아보니 뉴질랜드 남섬에 카와라우 다리의, 번지점프대 위에 서 있는 내 모습을 꿈꿨었다.
심장을 뛰게 했던 이런 꿈들을 내 안의 검열자는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했다. 그렇게 묻혀서 까맣게 잊고 살았다.
못 본 척 바쁜 척 뛰어오다 보니 잊힌 것들이 많다. 이것 말고도 또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따뜻한 집구석에서 방황하며 기억을 더듬어 본다. 마음속을 뒤적여본다. 한때는 풍선처럼 떠올리며 설렜던 꿈. 어느새 바람이 다 빠져버린 내 꿈들을 찾아다닌다. 글을 쓰는 날에는 좀 더 선명해진다. 글쓰기는 기억의 창을 뽀득뽀득 닦아주나 보다. 이렇게 매일 시야가 좋아지다가 어느 날 놀이동산에 서 있는 풍선장수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두 손 가득 꿈들을 가득 쥔다면 더는 고개를 돌리며 길을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갖가지 빛깔의 풍선들이 나를 띄워 하늘로 올려 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