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맏이> 토이 세이들러 글, 논장 펴냄, 272쪽
토어 세이들러의 소설 <맏이>는 까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늑대 무리의 이야기이다.
까치 매기*는 좀 남다른 새이다. 어느 목장에 사는 수다쟁이, 수집광인 가족과는 달리 세상이 궁금했다. 같은 목장에 살던 지혜로운 까마귀 잭슨과 친해지며 세상에 눈을 떴다. 지리와 방향과 사람의 말을 배웠다. 첫 번째로 알을 까고 나왔고 형제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았던 매기. 다른 까치들 처럼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며 살아가려고 했으나, 언젠가 앞이 캄캄해진다고 느낀다. 잭슨은 그런 매기의 마음을 알아채고 충고한다.
“문제는, 남과 다르면서 동시에 같아지기는 힘들다는 거야. 보통은 둘 중에 한쪽을 택해야 하지.”
“...내가 지난 세월 동안 배운 게 있다면 바로 이거란다. 너 자신한테 먼저 충실하지 못하면 다른 이한테도 충실할 수 없다는 거지.”
*까치는 영어로 'Magpie'이다. 매기라는 이름은 까치를 '까순이'라고 지은 격이다.
매기는 세상밖으로 훌쩍 날아간다. 눈부신 산파랑새를 따라 펄럭인 날갯짓이 시작이었다. 목장을 벗어나 낯선 곳을 돌다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낙담하기도 했다. 그리고 늑대 블루보이를 만난다.
늑대들의 우두머리인 '블루보이'는 덩치와 사냥 솜씨에서 다른 늑대들을 압도한다. 본래 캐나다에 살던 야생 동물이었다. 어느 날 동생 설리와 사냥을 나갔다가 마취총을 맞고는 미국에 강제로 이주하였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늑대복원프로그램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환경보호론자들이 늑대들을 잡아 와 무선추적기를 달고 낯선 곳에 풀어주며 생태계를 ‘복원’하려 했던 터였다. 자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생명체의 거주지를 임의로 옮기다니. 동물의 시각을 따라가 보니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지 새삼 놀란다.
블루보이는 동생과 함께 국립공원 내 우리에 갇혔다가 필사의 탈출을 하며 홀로 캐나다로 돌아가지만, 짝과 새끼들은 이미 다른 늑대 무리에게 찢긴 후였다. 궁지에 몰리고 고향을 오가는 여정에서 까치 매기를 만나게 된다. 둘은 서로에게 우연히 생명을 빚지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새가 늑대가 함께 다니는 친구라니 어쩐지 낯설지만. 또 안될 것은 또 무엇이랴. 모습이 너무도 달라서 오히려 잘 어울리는 벗과 같았다. 새에게는 날개가 있어 멀리 보며 사냥감이나 위험을 먼저 감지할 수 있다. 반면 늑대는 무자비한 사냥 기술을 가졌기에 큰 먹이를 얻을 수 있고 자연스레 다른 동물들에게 먹이를 남겨줄 수 있다. 우연히 사슴고기의 맛을 알게 된 까치 매기가 믿음직한 밥줄인 블루보이를 따라다닐 결심을 하며 둘은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얼마후 블루보이는 다른 떠돌이 늑대들을 만난다. 그렇게 늑대 네 마리와 까치 한 마리로 구성된 작은 무리를 이룬다. 아무리 사나운 늑대라고 해도 몸집이 큰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함께 사냥해야 생존에 유리하다. 무리가 커질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대부분의 늑대 무리는 ‘우두머리 암수’만 짝짓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몸집이 큰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한 본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블루보이의 작은 무리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서 두 쌍 모두 새끼를 가지기로 한다. 그래도 무리의 위계질서는 본능인지 새끼들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자 가장 몸집이 큰 수컷 블루보이의 코 밑에 코를 가져다 댄다. 존경과 복종을 표시하는 것이다. 늑대들은 얼마 버티지 못할 가장 조그만 막내는 제외하고 다른 새끼들의 이름을 지어준다. 수일간 수컷들은 부지런하게 사냥하며 먹이를 구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화염이 더 부지런히 다가왔다. 아빠 늑대 둘과 매기가 사냥을 나간 사이 큰 산불이 일어나서 어린 새끼들을 모두 잃게 된다. 다만 수컷 프릭의 입안에 물고 나올 수 있던 막내만이 살아남는다. 늑대들은 몸 크기로 계급 즉 무리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결정된다. 가장 작은 존재라서 살아남은 막내 호프는 기존의 가치관을 얼마간 흔들었다 할 수 있다.
무리가 안정과 빈곤을 줄타기 하던 시기에 레이즈라는 떠돌이 늑대가 합류한다. 우두머리인 아버지에게 대들다가 쫓겨난 녀석이다. 사냥을 도울 늑대가 한 마리라도 아쉬운 블루보이 무리는 레이즈를 받아들인다. 어딘가 믿음이 가지 않는 레이즈는 사냥감이 가득한 천국의 이야기를 흘리며 무리를 꾀어낸다. 다같이 이동한 곳은 옐로스톤 북동쪽에 위치한 '라마 계곡'이었다. 적어도 사냥감에 관한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었다. 와피티 사슴을 비롯해 사방에 먹이가 넘쳐났다. 멀지 않은 곳에 간헐천이 있으며, 뜨거운 온천물과 가스가 자연의 거친 숨소리처럼 뿜어나오는 지역이었다.
풍요로운 곳에 자리를 잡자 늑대 무리는 배불리 먹고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산불로 상처를 입었던 프릭과 까치 매기가 겉돌긴 하지만 대체로 만족스런 날들이 이어진다. 봄이 오고 날이 따뜻해지자 블루보이의 짝인 암컷 앨버타의 배가 불러왔다. 이미 두 차례 새끼들을 잃었던 블루보이에게는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다. 드디어 자기를 빼닮은 크고 당당한 첫째를 얻게 되리라 기대한다. 별탈없이 새끼들이 태어나고, 맏이의 이름은 지명을 따서 '라마'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아이는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구석이 있었다. 형제들과 경쟁하고 먹이를 다투는 평범한 새끼가 아니었다. 막냇동생을 업어주거나 먹이를 남겨주었고, 아빠의 턱을 핥으며 복종의 인사하기 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딱정벌레를 쫓아다녔다. 게다가 라마는 질문이 많았다. 사방에 궁금한 것이 널려 있었다. 이런 첫째의 모습을 탐탁지 않게 지켜보던 블루보이는 진지하게 말한다.
“너는 너무 질문이 많아, 라마. 지금 네가 알아야 할 건 딱 한 가지다. 이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는 거야.”
“너는 첫째다. 네 권력을 보여 줘야 해.”
라마는 주로 프릭과 매기와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을 배워갔다. 막냇동생이 올빼미에게 잡혀가는 일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사냥 기술을 나가는 길에는 호기심이 일어서 뒤쳐지기 일쑤였다. 라마는 자라며 겉모습은 아버지를 점점 닮아갔지만, 눈은 사냥감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왜 다들 아버지 코나 턱 밑에 입을 맞추는지, 가장 크고 힘이 세면 정말 최고인지 의문을 품는다. 삶이란 다 살아남는 과정이라는 프릭의 말에 라마는 말한다.
“살아남는다는 게 삶의 전부도 아닌 거 같고요.”
이런 라마를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매기가 따라다니게 된다.
늑대들은 밤에 울음소리를 내며 서로의 존재를 드러낸다. 달이 커다랗고 둥글게 뜬 어느 밤에 라마는 색다른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늑대와는 다르게 높고 아름다운 소리. 코요테의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는 라마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온천지대에서 우연히 코요테 한 쌍과 마주친 라마는 인사를 하려고 한다. 코요테의 외모가 언뜻 보기에 작은 늑대와 같아서 스스럼없이 다가간다. 그저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껑충 가까이 갔는데 그 모습에 모여있던 작은 동물들은 놀라 혼비백산하며 달아난다. 라마는 덩치가 큰 늑대였고, 늑대는 무시무시한 사냥꾼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안타깝게도 도망치던 코요테 한 마리가 온천물에 빠져 죽게 된다. 사슴 사냥을 제외하고는 다른 동물을 해친 적이 없던 라마는 이일로 크게 상심한다. 의도치 않게 다른 존재에게 큰 피해를 준 것이다. 어쩌면 인간들이 숱하게 저지르고 있는 일 아닐까? 자연에도 다른 생명체에게도.
라마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있었다. 아직 어렸고 경험도 부족했기에 자신의 모습이 다른 동물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으로 보이는지 몰랐다. 겉모습이 자라는 만큼 그에 걸맞게 행동이 무르익어야 하고, 자기 자신과 세상을 알아야 한다. 청소년 시기는 아직 그렇지 못해서 종종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 걸 테지만. 겉모습과 내면의 균형을 맞추는 일. 나의 한계와 세상의 크기를 가늠하는 일. 모두가 겪어야 하는 성장통과 같다.
풀죽어 있던 라마는 매기에게 도움을 청한다. 짝을 잃어 혼자가 된 코요테를 찾아달라고 한다. 라마는 코요테가 사는 바위 언덕 야트막한 동굴 입구에 먹이를 구해다 주며 미안함을 표한다. 여느 늑대라면 쳐다보지 않을 뒤쥐, 생쥐, 토끼와 같은 작은 먹잇감들을 잡아서 동굴 입구에 놓아둔다.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경계하던 고요테도 차츰 고개를 내민다. 들쥐를 가져갔던 날 라마는 코요테 이름이 아르테미스라는 걸 알게 되고 대화를 나눈다. 사과를 하려던 마음이 점차 사랑으로 채워진다. 짝사랑에 빠진 것이다.
까치 매기는 라마를 지켜보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다른 종에게 반하고 무리를 벗어나 홀로 맴도는 모습이 젊은 날의 자신을 떠올리게 한 까닭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매기는 늑대 무리에서 점차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블루보이는 무리를 지키며 사냥을 이끄느라 바쁘다. 매기도 여전히 사냥을 돕긴 하지만 풍족한 계곡에서는 예전만큼 자신이 필요치 않기에 같은 종족에게 돌아가려고 시도해본다.
라마와 매기가 떠나있던 까닭일까? 그 사이 무리는 위태로운 고비를 겪는다. 무리를 뒤흔드는 총성과 배신. 라마는 아버지가 기대하는 맏이는 아니었지만, 위기에 처한 무리를 구하는 역할을 해낸다. 까치 매기도 자신이 속해있는 곳, 진짜 있어야 할 곳을 깨닫는다. 소설이 절정을 향해 가면서 누군가는 마지막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도망치고 우두머리 블루보이 또한 많은 피를 흘린다. 그런데도 이야기의 마지막은 따뜻했다. 그 끝에는 모두가 '유일무이'하다고 말하는 뭉클함이 있다.
세 마리의 맏이를 비교하며 내 모습에 빗대어 본다. 무리를 떠나온 까치 매기, 무리를 지키고 거느리는 늑대 블루보이, 자아를 찾아 떠나기도 가족을 위해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늑대 라마. 나는 어느 모습에 가까울까?
세 주인공을 따라 광활한 야생 속을 헤치고 달리고 날아오르며 가슴이 마구 뛰었다. 한 마리의 야생동물이 된 듯 잠시 외부의 시선은 벗어던지고 자아를 찾아 낯선 땅을 밟아보고 싶다. 맏이가 아니래도 누구나 해방된 시간을 선물받을 수 있는 책이다.
작가 토어 세이들러는 1952년 미국 뉴햄프셔주에서 태어나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 어린이책 부서에서 일을 하다가 직접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사람들의 애정 밖에 있는 쥐나 뱀, 족제비와 같은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많이 썼는데, 인간 세계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동물들의 세계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라고 합니다. 대표작으로는 <뉴욕 쥐 이야기>, <웨인스콧 족제비> 등이 있습니다. (*작가소개글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