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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진지한 아기. 억울한 고양이 셋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베란다!!

by 쭈우


우리 집 거실 한켠, 베란다로 나가는 폴딩도어에는 작은 문이 하나 있다.
고양이들을 위해 만들어 둔 미니 출입구

고양이들이 밀고 나갈 수 있는 구조다.
그 문을 지나면 고양이 화장실과 캣타워가 있다.
은밀하고, 고요하고, 위생이 보장되어야 할, 세 마리 고양이의 사적인 공간이다.

…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그 문은 이제 아기의 것이다.

이 집의 막내이자, 모든 사물의 사용권을 가진 자.
아기에게 그 고양이 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다.
작은 손이 딱 들어가는 크기.
장난감을 넣기에 아주 완벽한 작은 공간.
손을 힘껏 뻗어 장난감을 들이기도 하고, 넣기도 한다.

요즘 아기는 그 공간에 푹 빠져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앞에 앉아 장난감을 하나씩 밀어 넣는다.
공, 딸랑이, 인형, 기저귀 한 장, 노래 나오는 펜들.
심지어 실리콘 숟가락도 여러 개 들어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문은 고양이들이 베란다로 나가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고양이들은 당황한다.
“실례지만… 들어가야 되거든요?”

하지만 아기는 꿈쩍도 않는다.
현재 아기는 열심히 장난감 재고 관리 중이다.

결국 고양이는 아기의 등을 보고 슬그머니 돌아선다.
나를 한 번 쳐다보기도 한다.
그 눈빛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진짜… 이건 아니지 않냐고요.”

아기가 자리를 뜨고, 고양이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
나는 슬리퍼를 끌고 베란다 문을 연다.
그 너머엔 털 잔뜩 묻은 장난감 더미가 있다.
딸랑이, 인형, 숟가락, 그리고 고양이 털이 덕지덕지 붙은 치발기까지.
하나씩, 한숨과 함께 조용히 주워 담는다.

며칠만 베란다 정리를 안 해도 그곳은 곧 난리다.
먼지, 털, 장난감, 기저귀, 알 수 없는 먼지와 모래 부스러기들까지..

나는 오늘도 그 작은 창 앞에 앉은 아기를 한참을 바라본다. 아기의 진지한 엉덩이,
출입을 포기한 한 마리 고양이의 구부정한 등, 억울한 눈빛을 쏘는 두 번째 고양이. 이미 베란다로 나간 여유로운 셋째고양이.

...이것도 언젠가는 그리워지겠지.
고양이 털 묻은 장난감을 치우던 내 인생도, 언젠가 예쁘게 기억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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