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낮잠’이 이렇게 중요한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 내가 비로소 커피 한 모금 들이킬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런데 그 평화를 산산조각 내는 소리가 있다.
"띵동"
아기의 깊은 잠을 깨우는 데는 충분한, 단 한 번의 벨 소리. 우리 아기는 쉽게 잠이 드는 대신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는 편이다.
택배 기사님, 아파트 소독, 신용카드 갱신 아주머니등 우리 집 벨을 누르는 사람은 다양하다.
다른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택배기사님만은 누르지 않았으면 해서 늘 배송 요청란에 정성껏 적었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노크, 벨 금지 부탁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택배기사님은 유독 벨을 누르신다.
늘 아기의 낮잠 시간대에 오는 그분은,
내가 배송 메시지에 “노크 금지, 벨 금지” 옵션을 체크해도 언제나 벨을 누르고 나서도 문을 툭툭 두드리고 간다. 그 소리에 몇 번이고 낮잠 자던 아기가 깼고, 나는 분노와 피로 속에서 하루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메모를 보지 못하신 걸까? 아니면 봤지만 무시한 걸까? 깜빡하신 걸까? 두드리라는 회사 내 방침이 있나? 혹은, “그래도 배달이 온 걸 인지시켜야지” 하는 일종의 책임감일까?
사실 처음엔 여기저기서 사은품으로 주는 '아기가 자고 있어요' 스티커가 왜인지 유난스러워서 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벨로 아이가 잠에서 깨며 흐느끼고, 다시 잠들지 못해 칭얼대고,
그 여파로 하루의 루틴이 전부 무너지는 날들이 반복되자 나는 깨달았다.
이건 유난이 아니다. 꼭 필요한 거였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스티커가 당장 필요했다.
AI에게 요청했다.
“아기가 자고 있어요. 노크, 벨 X. 이 문구를 넣어 만들어줘.”
내 분노의 요청에도 AI는 기특하게 몇 분 만에 이미지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드디어 너를 쓸모 있게 써 보는구나. 고맙다 지피티야.
달을 베고 잠든 곰돌이. 그리고 단호한 메시지.
“아기가 자고 있어요. 노크, 벨 X.”
"절대 절대!" 하는 말를 추가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바로 인쇄해서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했다.
초인종 한가운데, 절대 안 보일 수 없게.
아직 긴장은 된다.
늘 문을 두드리고 가던 그 기사님.
이번엔 어떨까? 현관에 붙은 곰돌이의 얼굴을 보고 이번엔 조용히 지나가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