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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 JS MIN May 30. 2016

스물 두살의 순애보

대학에서 만난 그녀와의 인연

얼마 전 한국 출장을 갔다가 고향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들릴 겸 어머니 집에서 하룻밤 보내게 되었다.


새벽 1시반..약간의 취기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아 예전에 내가 쓰던 책장 속 책을 뒤적거리다 낡은 노트 한 권을 발견하여 열어보던 중 군대 제대 후 복학 전 잠시 다녀온 일본 어학 연수 때 썼던 버킷 리스트를 보게 되었다.

버킷 리스트에 썼던 어린 시절 꿈 중 유독 하나도 이루지 못한 대학시절 그녀를 향한 추억이 적혀 있었다.


남들보다 2년 늦게 시작한 대학 초년생.

환한 햇살과 함께 봄 향기를 맡으며 풋풋한 대학 초년생을 시작해야 했던 그 시절에, 난 그러지 못했다.

스물두 살 내 눈에 비추어진 세상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 하늘에 잔뜩 낀 시커먼 먹구름으로 인해  온 세상이 잿빛으로 변해버린 날씨처럼 내 마음은 늘 우울하고 어두웠다'

그런 나에게 유독 눈에 띄던 같은 반 그녀.

그녀는 이쁜 얼굴 때문이었는지 늘 그녀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았고, 항상 웃는 얼굴에 너무 행복해 보였던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지냈던 웃음을 비웃는 듯 들렸다.

그녀의 웃음소리,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질했던 대학시절에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킬까 두려워, 늘 그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연히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햄버거 가게에서 점심을 먹게 된 그녀와 나. 하지만 위장병으로 매일 약을 먹으며 고생하던 난 햄버거, 피자, 돈가스 같은 음식을 먹으면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려 한 번 먹었다가 두 번 다시 먹지 않았던 음식 중에 하나였는데,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 얘기하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기쁨에 큰 용기를 내어 친구들을 따라 조심스럽게 한입 먹었다.

조금은 느끼했지만 그녀와 함께 있어서 그랬는지 괜찮은 것 같아 두입째 먹었다.

역시 아니었다. 친구들 몰래 밖으로 나와 구역질을 하고 다시 들어가 앉았지만, 온통 메스꺼운 냄새에 몇 차례 구역질을 다시 하고 들어와, 햄버거 가게에 있는 콜라는 혼자서 다 마신 듯했다.

머리 속은 하얗게 변했고, 친구들과 앉아 있는 시간은 지옥의 나락 끝에 매달려 있는 심정이었다.


고백 한번 못했던 난 그 후로 그녀와의 특별한 추억은 없다.


군대 제대 후 복학 전 일본에서 잠시 있는 동안 그녀를 생각하며, 버킷 리스트에 그녀와 하고 싶었던 일 몇 가지 기록했었다.

1. 그녀와 잔디밭에서 수다 떨기
2. 그녀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식사하기
3. 그녀와 바닷가로 여행 떠나기
4. 그녀와 영화 보기
5. 그녀와 에버랜드 놀러 가기


까맣게 잊고 지냈던 버킷 리스트의 추억.

그녀의 활짝 웃는 모습만 기억할 뿐,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궁금한 게 너무 많았던 그 시절.

가끔 내 아이들과 햄버거를 먹으러 갈 때면 그 시절 촌스럽고 지질했던 기억하기 싫은 내가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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