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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 JS MIN Jan 31. 2017

일기

2017년 1월 끝자락에서

화요일 오전 7시 40분

춘절 휴무 6일째. 아침을 하기 위해 냉장고을 열어보니 이틀 전 사다 놓은 콩나물과 생오징어가 있어 뚝배기에 콩나물 오징어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고춧가루를 조금 넣어 칼칼하게 만들고, 간단한 어묵 조림으로 아침상을 차려 먼저 일어난 아내와 아침을 먹고 식탁에 앉아 오늘 무엇을 하며 보낼지 잠시 얘기를 나눴다.


오전 9시 

차례로 일어나는 아이들을 위해 다시 된장찌개를 따뜻하게 데피고 어묵 조림과 동치미로 아침상을 차려준 후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내는 원두커피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있다. 얼마 전 한국 출장 중에 바리스타를 공부한 아내를 위해 지인분께서 이태리산 원두커피와 손으로 돌려 원두를 가는 기계를 선물해 주셔서 아내에게 갖다 준 후 매일 아침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게 아내의 하루 일과가 되었다.


오전 10시

거실 소파에 누워 재잘거리고 있는 엄마와 막내딸,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큰아들, 핸드폰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끼길거리고 있는 작은 아들, 차가운 창문 사이를 삐지고 들어오는 따듯한 햇살에 누워 책을 보고 있는 나.


각자의 공간에서 자기 하고픈 일들을 하고 있는 가족. 난 하루 중 오전 10시가 가장 좋다. 왠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좋다.


보통 일요일 아침 교회를 가기 위해 준비하는 가족들 위해 아침밥을 만들어 주고 식사 후 설거지 하기 전 항상 와인 한잔을 마신다. 언제부터인지 와인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술 마시면 알레르기 때문에 온몸이 너무 간지럽고 구토가 심해서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을 너무 못해 불편한 적이 많다 보니, 30대에 집에 있을 때 와인을 한잔씩 마시면서 술을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술은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심하게 빨개지고 잘 못 마시지만 그래도 다른 술과 달리 와인은 여유시간을 즐길 때면 집에서 한잔씩 마신다.


와인 한잔에 홍당무처럼 붉게 변한 얼굴로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오전 9시 반 정도.

나의 공간인 침대에 누워 책을 보다가 나릇 해지는 눈꺼풀로 시계를 바라보면 오전 10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사물이나 타인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달을 때마다 구토라는 생리작용을 느끼 듯 오전 10시면 가족이라는 공간 속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통해 나의 존재 의미를 느끼고 즐기는 것 같다.


"나는 존재한다-세계는 존재한다-그리하여 나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뿐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매한가지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무서운 일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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