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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키온니 Oct 13. 2022

39세, 승무원이 되다.

1. 지구 건너편, 미지의 나라로 

2) 살라말리쿰, 슈크란(아랍어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카타르항공에 입사하게 되면 도하(카타르의 수도)에 거주하면서 하우징(2~3명이 셰어 할 수 있는 아파트), 회사까지 차량 셔틀, 유니폼 세탁, 거의 무제한의 10%의 금액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직원 티켓(가족, 친구까지 적용) 혜택을 이용할 수 있으며 가장 훌륭한 부분은 세금은 1도 납부하지 않는 "택스프리" 찬스까지 주어진다. 세계 웬만한 곳은 모두 가볼 수 있다는 다양한 취항지와 4일 오프를 포함한 원하는 곳으로의 비행 신청은 매달 4곳까지 가능하다. 카타르는 인구가 적은 산유국으로 서아시아의 부국 중 하나이자, 나아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나라 중 하나이다.(나무 위키 참고) 더욱이 올해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역사상 최초로 서아시아에서 개최되는데 얼마나 부국이냐면 무더운 날씨를 감안하기 위해 야외 에어컨 시스템까지 완벽하게 갖춘 경기장이라고 하는데 아마 내가 입사했던 2012년부터 10년 뒤 열릴 월드컵을 예상하여 도시를 열심히 정비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이렇게 부국의 빵빵한 혜택을 주는 회사에서 왜 '퇴사'를 결심했을까 의아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입사의 첫날부터 모든 것이 꿈같았다. 지구 반대편 미지의 세계에 온 것이 실감 나게 전통의상을 입은 카타리(카타르인)들이 가득한 공항에 첫발을 내디뎠고 교육 첫날에는 같은 배치(동기)들을 셔틀버스에서 만나는데 우크라이나, 케냐, 인도네시아, 중국, 이란 등 만나기 힘든 국적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며 마치 공짜 어학연수를 온 것 같은 기쁨에 빠졌다. 온통 처음 들어 보는 항공기에 관한 기술적인 용어 포함, 영어로 수업을 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렇게도 원하고 원했던 지라 첫 휴가가 올 때까지 향수병이라고는 모르던 나였다. 매번 다른 국적의 승객, 동료들과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내 나라 한국과의 시차, 물리적 거리, 4계절이 없는 메마른 사막의 땅, 가족과 친구들과의 소소한 시간들, 음식 모든 것들이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다. 많은 곳을 가고 많은 이들을 만남으로 인한 경험들은 나의 오감과 생각들을 생성되기 시작했는데 줄곧 많이 한 생각들은 "나는 누구일까 또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의문점들이었다. 지구 반대편 미지의 나라에서 오롯이 혼자뿐이라는 끝도 없는 고독함과 외로움들은 스스로를 채워나가야 하는 나만의 과제였다. 누구보다 원하던 직업이었고 삶이었지만 겉으로 완벽해 보인다고 해서 그저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타향살이는 그 자체가 녹록지 않은 것이다.


주기적으로 몰려오던 "향수병"에 스스로를 적응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진 타인과의 관계 덕분이었다. 모두가 이방이었기에 오히려 마음을 쉽게 나누고 표현할 수 있었고 승무원이라는 직업으로 내 역할에 충실했을 때 내진심을 알아주고 감사해주는 승객과 동료들의 웃는 얼굴 하나면 그것으로 행복해졌다. 밀물과 썰물처럼 감정의 동요가 도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할 때쯤인 5년 차, 이제는 중동의 그곳이 내 집처럼 편안해졌고 한국에서의 나의 삶을 떠올렸을 때 덜컥 두려워졌다. 여전히 더 배울 것도 가볼 곳도 많았지만 나도 모르게 회사가 주는 안락함에 길들여지는 것을 발견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제껏 단조롭고 평온한 삶보다는 모험적이며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다. 타향살이가 그제야 적응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안정된 삶에서 직면해본 적 없는 감정의 저 깊은 나락까지 경험하다 보니 이제야 내가 누군지 끊임없던 해답을 알게 된 거 같다. 이제 외로움이란 두려움도 극복했겠다 알 수 없는 용기가 저만치서 쏟아올랐다. 살라말리쿰 하며 보딩 준비를 하고 슈크란 하며 인사하던 나, 드디어 퇴사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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