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못 해먹겠다, 천기저귀

새내기 작가의 천기저귀, 세 번째 이야기

by 덕순


살면서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미뤄왔던 숙원 사업들을 한 번에 처리하고 싶은 날.


그런 날 뜬금없이 소파를 들춰가며 대청소를 하기도 하고, 헬스장 등록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도 찾아온 그날,

나는 구석에 모셔둔 천기저귀를 꺼냈다.




'이제부터 천기저귀를 쓰리라' 하는 큰 맘을 먹고 꺼낸 건 아니었다.


오히려 며칠 전에는 쌓아만 둔 천기저귀를 처분해야겠다 마음먹었었다.

앞으로 영영 쓸 일이 없을 것 같으니 '빨래만 한 미사용 새 상품'으로 올려 내가 산 반 값이라도 챙기기로 했다.


당근 마켓에 올리기 전에 나는 대충 가격을 알아보았다.

'천기저귀'를 검색해보니 우리 동네 주변에도 나 같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빨래를 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주인 잃은 천기저귀들이 꽤나 많이 올라와 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의 가격을 보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천기저귀가 한 장에 약 6천 원~8천 원 정도 하는데 중고로 나와있는 상품은 장 당 천 원 꼴이었다.

그마저도 인기가 없어 몇 달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고 있었다.

무료 나눔을 해야 가져갈 판이었다.


'이게 얼마 짜린데... 어차피 조금이라도 돈을 돌려받긴 글렀구나.

억울하게 파느니 차라리 내가 실컷 써서 버려도 안 아깝게 만들어버리자.'


제 값을 받을 수만 있었다면 이대로 천기저귀는 다른 주인을 만났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기가 없는 덕분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천기저귀를 쓰기로 다짐한 그날은 덕순이가 50일이 지나고 어느 정도 컸던 때였다.


이제 기저귀가 잘 맞는지 크기를 가늠해볼 겸 꺼내서 덕순이의 몸에 대충 대보니 잘 맞아 보였다.

내친김에 한번 입혀보자 했고, 어떻게 입히는지도 몰라서 사용 설명서를 보며 따라 해 보았다.


입혀놓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잘 맞았다.


처음 덕순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에는 기저귀가 덕순이만 했는데,

50여 일 동안 쑥쑥 자란 덕분에 이제는 입혀보니 얼추 기저귀스러워졌다.


새로운 기저귀의 느낌이 신기한지 덕순이는 이리저리 기분 좋은 발길질을 했다.


'그래. 지금까지 너무 많이 미뤄왔어. 이제 진짜로 천기저귀를 써보자.'

드디어 익숙해진 일회용 기저귀를 뒤로하고 새로운 천기저귀를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참 좋았다.

보들보들한 순면의 감촉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천기저귀를 입힌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덕순이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기들은 체온 조절 능력이 미숙해서 체온이 조금만 떨어져도 딸꾹질을 한다.)


'갑자기 추워졌나?'

걱정이 되어 덕순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기저귀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일회용 기저귀는 흡수체가 있어 오줌을 눠도 어느 정도 보송보송한 감촉이 있지만, 순수하게 면으로만 만들어진 천기저귀는 그러지 않았다.


덕순이의 오줌이 닿자마자 무겁게 축축해졌고, 젖은 면을 계속 살에 맞대고 있으니 추워서 딸꾹질을 한 것이었다.


서둘러 새 천기저귀로 갈아주었고 딸꾹질도 멎는 듯했다.


그리고 불과 10분 후, 나는 기저귀가 혹시 다시 젖었나 싶어 확인해보았다.

설마 아니겠지... 했지만 기저귀는 10분 만에 또다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아니 방금 전에 갈았는데 또 오줌을 눈 거야?'

믿기지 않았지만 또 덕순이가 추워할세라, 얼른 새 기저귀를 채워주었다.




그렇게 처음 천기저귀를 쓴 한 시간 동안 5번을 갈았다.


그제야 나는 일회용 기저귀를 쓸 때에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과 달리 아기들은 오줌을 한 번에 싸지 않고 조금씩 여러 번 눈다는 것을.


'그동안 내가 한두 시간 동안 기저귀를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현대 문명의 놀라운 기술 덕분이었구나.'

한 시간 만에 기저귀만 5번을 갈아 보고 나서야 나는 일회용 기저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번거로운 것도 문제였지만 이대로 천기저귀를 쓰면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축축한 기저귀를 오랜 시간 동안 그대로 입히게 되면 기저귀 발진이 생길 수 있었다.


기저귀 발진은 일회용 기저귀의 면이 아기에게 맞지 않아 생기는데,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지 않을 때에도 똥, 오줌에 있는 독성 때문에 생긴다.


만에 하나 내가 깜빡하고 천기저귀를 제 때 갈아주지 않는다면 일회용 기저귀를 쓸 때에는 없던 기저귀 발진이 오히려 천기저귀를 써서 생길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부지런하다 해도 덕순이가 잘 때에는 더 골치가 아프다.

잠이 든 덕순이의 기저귀를 갈다간 덕순이가 잠에서 깰 수 있다.

(육아를 하면 느끼는 사실인데, 아기를 재우는 건 정말 정말 힘들고 그런 아기를 깨우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잠을 잘 자라고 그대로 놔둔다면?

오랜 시간 동안 오줌이 살에 닿은 탓에 기저귀 발진이 생길 수 있다.


'천기저귀 쓰다가 오히려 없던 기저귀 발진이 생기겠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못 해 먹겠다. 천기저귀'


앞으로 쭉 천기저귀를 쓰겠다는 다짐은 한 시간 만에 산산조각 났다.

남은 건 이미 써버린 천기저귀뿐이었다.


그 전엔 그나마 '미사용'이니 천 원이라도 받았을 텐데 '사용'한 순간부터는 돈 받을 생각을 아예 할 수 없었다.




이때까지 나는 모유수유만큼 힘들고 어려운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내 기준으로 천기저귀는 힘들고 어렵기로 일 등이었다.

수많은 역경과 시련에도 완모를 꿋꿋이 이어가는 내가 하루는커녕 한 시간 만에 포기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뒤로 천기저귀는 아주 아주 가끔, 덕순이가 놀 때 한 번씩 맛보기 용으로 써보곤 했다.


쓰는 건 하루에 다섯 장이 채 안되었고 그마저도 귀찮은 날엔 아예 꺼내지 않았다.


이따금 쌓여있는 천기저귀의 보드라운 면을 만지작거리면 나는 아주 약간 고민이 들었다.


'분명 이 순면이 덕순이에겐 더 좋을 텐데...

내가 정말 정말 부지런해진다면 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굳이 천기저귀를 쓸 이유가 없었고, 일회용 기저귀는 차고 넘칠뿐더러 너무 편리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천기저귀를 써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덕순이는 80일경부터 통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긴 시간 동안 새지 않는 밤 기저귀 (물론 일회용)을 채워주었다.


일반 기저귀보다 더 흡수력이 뛰어나서 최대 12시간까지 버틴다는 기저귀였다.

덕분에 나는 밤마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수고를 하지 않고 잘 수 있었다.




'뿌루룩'


어느 날 새벽, 잠결에 나는 덕순이가 방귀를 뀌는 소리를 들었다.

덕순이와 같이 자면서 귀가 예민해진 탓에 금세 깼지만 이내 나는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기저귀를 갈아줄 때 나는 크게 놀랬다.

그때 내가 들은 소리는 방귀 소리가 아니라 똥을 지리는 소리였다.


촉각이 예민한 아기들은 조금만 찝찝해져도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운다는데 덕순이는 똥을 싸도 싱글벙글 웃는 아기라, 똥을 지린 채로 그대로 쭉 자버린 것이다.


밤새 똥이 묻은 채 있었던 엉덩이는 똥독이 올라 새빨갛게 부어있었다.


그렇게 내가 그토록 걱정했던 발진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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