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천기저귀, 시작 한번 어렵네

새내기 작가의 천기저귀, 두 번째 이야기

by 덕순

2021년 9월 17일.

더위가 한 풀 꺾이는 초가을이 찾아왔을 때 덕순이가 태어났다.


덕순이와 조리원에서 함께 지내는 날동안 나는 모유수유에만 온갖 정신을 쏟느라 기저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집에서 내가 혼자 덕순이를 돌보는 거였다면 천기저귀를 꺼낼 법도 했지만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덕순이를 돌봐주는 조리원에서 당당하게 천기저귀를 꺼낼 수 없었다.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그분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조리원에서는 일단 선생님들이 사용하시는 일회용 기저귀로 쓰고 나중에 집에 가서 생각하자.'


그때의 나는 일회용 기저귀도 어떻게 채우는지 몰랐어서 천기저귀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일회용 기저귀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선생님들께 여쭤가며 덕순이와 함께 있을 동안 열심히 연습했다.


내가 아무리 천기저귀를 쓰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어도, 이 일회용 기저귀를 쓸 일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서도 천기저귀를 꺼내야 하는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만일 기저귀 발진이 생기면 내 방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천기저귀를 채워줘야지.'


아기들의 피부는 무척 연약하다.
10개월 동안을 따뜻한 양수 안에서 보호를 받다가 세상에 나왔으니 바람결에 스쳐도 아프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기저귀를 차야 한다.

생식기와 엉덩이에 바람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고,
오줌을 누면 축축해지고,
일회용 기저귀라면 온갖 흡수체와 화학약품이 섞인 면과 하루 종일 피부가 닿아있지만
기저귀 없이 매번 똥과 오줌을 치우는 일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견뎌야 한다.


아마 기저귀는 아기들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넘어야 하는 관문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아기들은 무난하게 넘어가지만, 유난히 피부가 예민한 아기들이 있다.

기저귀를 채우면 생식기와 엉덩이가 빨갛게 부어오르면서 발진이 생기는데

가렵고 쓰라린 통증을 동반한다.


그런 아기들에겐 일반 일회용 기저귀가 너무 독하기 때문에

대나무 재질의 면으로 되어 있는 비싼 일회용 기저귀나 천 기저귀를 써야 한다.


만약 덕순이가 조리원에 있는 동안 기저귀 발진이 생기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나는 주저 없이 천기저귀를 쓰려고 했다.

피부가 유난히 예민한 남편을 닮았으면 왠지 덕순이도 기저귀에 피부가 예민하게 반응할 것 같아 미리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내가 하는 수만 가지 걱정들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덕순이는 일회용 기저귀를 써도 발진이 생기지 않았다.


'고마운 덕순이... 굳이 천기저귀를 쓰지 않아도 발진도 없고 엉덩이도 보송보송하네.

일단 천기저귀는 나중에 생각하자.'


내 바람대로 건강하게 태어난 덕순이에게 감사했지만,

나에게 천기저귀를 써야 하는 이유 하나가 사라진 셈이었다.




조리원에서 14일을 머무른 뒤, 나와 덕순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신생아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 실전 육아에 돌입한 것이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오랫동안 집을 비운 탓에 집 상태는 엉망인데, 짐 정리에 쌓여 있는 택배 상자들까지...

집안일과 육아를 병행하려니 남편과 둘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손이 모자랐다.


그런 나에게 곱게 모셔둔 천기저귀를 개시하는 일은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부지런한 것으론 누구와 겨뤄도 자신 있었는데, 갓 태어난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척 힘든 일이었다.


'너무 바빠서 아직은 쓸 수 없을 것 같아.

덕순이를 돌보는 데 요령이 생기도 집도 어느 정도 정리되면 그때 해보자.'


이렇게 나에겐 천기저귀를 굳이 쓸 필요가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내친김에 나는 변명거리 하나를 더 만들어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덕순이는 한 팔에 감길 만큼 무척 작았는데

크기나 가늠해볼 겸 천기저귀를 꺼내보았더니,

천기저귀가 말 그대로 덕순이만 했다.


엉덩이만 감싸줘야 하는 기저귀가 덕순이 몸통을 감싸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지금 천기저귀를 차는 것은 너무 시기상조 같았다.


물티슈만한 덕순이


'덕순이가 이 기저귀를 차려면 좀 더 커야 하겠는걸?

지금은 기저귀를 찼다가 가슴팍까지 기저귀가 올라오게 생겼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


이렇게 나는 또 천기저귀에서 한 걸음 더 멀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겐 또 다른 변명거리가 찾아왔다.

감사하게도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출산 선물로 기저귀를 보내준 것이었다.


처음 택배를 받았을 때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기저귀 박스로만 탑을 쌓아 천장에 닿을 기세였다.


덕분에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기저귀를 흥청망청 쓰면서도 돈 걱정을 하지 않았다.

창고에는 늘 기저귀가 넉넉하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많은 기저귀는 나에게 새로운 과제를 주었다.


'천기저귀는 일단 이 기저귀들을 모두 쓰고 난 뒤에 생각해야겠다.

선물 받은 건데, 덕순이가 커버려서 못 쓰면 너무 아깝잖아...'


아기는 백일 즈음에 태어났을 때 몸무게의 약 두배가 된다.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그렇기 때문에 기저귀를 한 종류의 사이즈로만 잔뜩 사두면 나중에 아기에게 너무 작아서 못 입히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천기저귀는 아직 덕순이에게 너무 커서 쓰려면 한참은 더 기다려야 할 텐데,

멀쩡한 기저귀를 사이즈가 안 맞아서 못 입히는 일이 생길 바에야 일회용 기저귀를 계속 쓰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내가 마련한 수많은 변명거리들 때문에 곱게 모셔둔 천기저귀들은 방구석 한편에서 좀처럼 나오지 못했다.

나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제일 큰 이유는 '후회'였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사느라 쓴 돈이 너무 아까웠다.


거진 20만 원 가까이 되는데, 기저귀라서 중고 값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육아 용품 중 입에 닿거나 오염이 자주 되는 물건들은 헐값에 거래된다.)


아무리 한 번도 사용을 안 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몇 번 쓴 천기저귀를 세탁만 한 새 상품이라고 속여 판다면?

정말 꼼꼼하게 보지 않는 이상 구분하기 어렵다.


구매하는 사람은 이런 리스크까지 모두 감수하고 사기 때문에 그 위험성만큼 가격은 터무니없이 낮아진다.


'20만 원을 주고 애물단지를 들였는데 이제 똥값에 파는 수밖에 없네.

팔자니 손해 보는 돈이 너무 아깝고,

쓰자니 지금 당장은 못 쓸 것 같고...'

패기 넘치게 준비한 천기저귀들인데 어느새 너무나 미워졌다.




겉보기엔 어쩔 수 없어 보이는 이유들이었지만,

나는 내심 부정하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 당장 천기저귀를 못 쓰는 이유들은 모두

내가 '지금 당장은 쓰기 싫어서' 만든 변명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 지면

'굳이 예전 방식대로 하던 것을 바꾸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나는 이것이 사람 마음에 있는 '관성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예측이 가능한, 안정적인 것을 좋아한다.

(정말 도전 정신이 뛰어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지루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 미리 알 수 있고,

이것은 우리에게 큰 안정감을 준다.

마치 사막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매일 오후 4시에 와 달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큰 긴장감과 불안감을 주기 때문이다.

지루함은 감수할 수 있지만 이 긴장감과 불안감은 생존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사리 변곡점을 찾지 못하고 늘 같은 원주를 맴돌게 된다.


물리학에서 물체가 이전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관성이라 부르듯이,

사람들도 마음속에 저마다의 관성을 갖고 있다.




관성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어제도 빵을 굽던 제빵사가 오늘 갑자기 새로운 꿈을 향해 빵집을 떠난다면,

빵을 굽는 사람 하나가 사라진다.


세상은 빵을 굽는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제빵사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굳이 바뀌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고 빵을 구워야 한다.


그것이 비록 지루하고 보잘것없는 일이여도 말이다.




그와 동시에 관성은 삶을 잠식시킨다.


우리 모두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삶을 소비하지만,

마음속에 회의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며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빈 인생 속을 돌이켜보면,

삶의 권태기가 오는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자 관성을 이겨내고 어제와 다른 길을 선택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제와 다른 길에서 만날 거센 폭풍우가 두려움이 삶의 권태를 마땅히 받아들인다.




나는 관성과 변화 사이에서 조율을 참 못하는 사람이다.

나의 무게 중심은 늘 관성에만 쏠려 있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면서 사느니, 지루해도 원래 살던 대로 계속 살래'


타고난 성격도 위험한 것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세상이 험난한 것을 깨닫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항상 '극 안정주의'를 택했다.


그래서일까.

대학교를 졸업 후 회사 취업, 결혼, 출산까지...

남들이 보았을 때 '잘 산다'는 삶을 그대로 따라 했다.


'크게 성공하지도, 실패하지도 않는 삶'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삶을 좇아 살아오는 것뿐이었다.

이런 삶의 신조는 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어 모든 일상에도 영향을 끼쳤다.




새로운 메뉴가 나와도 늘 먹던 메뉴를 골랐고,

새로운 영화보단 이미 한 번 본 영화를 더 보는 것을 좋아했다.

큰맘 먹고 무언가를 살 일이 있으면 눈이 빠져라 상품 리뷰를 정독했다.

(그리고 결국 못 사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어제까지 쭉 잘 쓰던 일회용 기저귀를 저버리고,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천기저귀를 처음 도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채우는 건지 사용 설명서를 읽는 것조차 머리가 아프다.

차라리 그것보다 나는 이미 능숙해진 일회용 기저귀를 꺼내 채워줬다.




천기저귀의 시작은 요란할 정도로 거창했지만,

관성에 잠식당한 나는 천기저귀에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렇게 후회 가득한 마음만 찝찝하게 남은 채로 두세 달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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