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가 마라샹궈를 안 먹는 이유

모유 수유, 그 험난한 여정, 마지막 이야기

by 덕순


임신했을 때부터 줄곧 먹고 싶었던 음식이 있다.


온갖 맛있는 재료 다 때려 넣고 볶은

마라샹궈

그 옆엔 시원한 맥주 한 잔.




시실 임신했을 때는 먹는 것을 가리지 않았다.


담당 선생님께서도 술과 담배를 빼고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으라고 하셔서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입덧 때문에 속이 울렁거릴 땐 불닭볶음면,

출근해서 비몽사몽일 땐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초여름에는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 한 대접,

남편과 데이트를 하러 나간 날에는 제일 좋아하는 회전초밥까지...


원래 살던 대로 사는 게 제일 좋은 태교라는 말을 믿었던지라 별 걱정이 없었고,

덕순이도 다행히 뱃속에서 무척 건강하게 커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비교적 자유로웠던 임산부의 삶이 끝나고

수유부의 삶에 들어서자 나는 이전까지 누렸던 '먹고 싶은 걸 먹는 자유'에 제동을 걸었다.




임산부나 수유부나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똑같은데

어쩐지 덕순이가 내 몸에서 만들어지는 젖을 받아먹는다고 생각하니,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더더욱 조심해야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영화 <겨울왕국> 2편에서는 올라프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먹는 물은 최소 네 사람이나 동물을 거쳐간 물 이래'


올라프의 실없는 소리에 안나와 엘사는 그런 말은 하지 말라며 질색하지만,

나는 뜬금없게도 이 대사가 말 그대로 '꽂혀버렸다.'




덕순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조리원에서 잠깐 분유를 먹은 것을 빼면,

줄곧 엄마의 젖만 먹고 자랐다.


태어나서 140일 동안

머리카락이 자랐고,

손톱과 발톱이 자랐고,

키가 훌쩍 컸고,

태어났을 때보나 몸무게가 약 3배나 늘었다.


뱃속에 있을 때는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자랐고,

태어나서부터는 내 몸에서 나온 젖을 먹고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으니,

덕순이의 모든 몸은 모두 내 몸을 거쳐 나온 것들이다.

(굳이 따지자면 아빠의 유전자를 제외하고...)


그런 덕순이를 보면,

덕순이가 내 몸의 일부를 넘어 나의 분신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 7일째 되는 날 덕순이의 배꼽에 있었던 마지막 탯줄 조각이 떨어졌을 때,

이제껏 한 몸이었던 우리 둘이 드디어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아쉬움이 컸었는데

모유수유 덕분인지 우리 둘 사이는 다시 그 어떤 것보다 끈끈하게 엮인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머리카락 한 올만 봐도 나는 생각이 깊어진다.


'내 몸의 일부였던 너의 머리카락, 손톱, 발톱, 손가락, 발가락...'




'You are what you eat.'


이란 말이 있다.

내가 먹는 음식들이 곧 나를 만든다는 말로,

나는 이것을 건강하고 윤리적인 음식을 먹으라는 말로 해석했다.


내가 먹는 음식들이 내 몸을 만들고,

내 몸이 덕순이의 몸을 만든다.




이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자니, 나는 차마 마라샹궈를 다시 먹을 수가 없었다.

맵고, 짜고, 온갖 향신료 범벅인 마라샹궈로 덕순이의 몸을 채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마라샹궈뿐일까.


임신 중에도 커피 한 잔은 꼬박꼬박 마셨는데 이젠 디카페인 커피만 마시고 있다.

빨간 김치 대신 백김치로,

좋아하던 짬뽕 대신 우동으로...

좀 더 건강한 덕순이를 만들기 위해 나는 나만의 대안을 찾고 있다.




하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덕순이가 백일이 지났을 때쯤부터 나는 약간의 숨구멍을 뚫고 있다.


주말엔 남편이 만들어 준 떡볶이도 먹고 쫄면도 먹는다.

오랫동안 매운 것을 안 먹다 보니 입맛이 순해져서 금방 혀가 아려오는데, 그땐 사이다도 한 모금씩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샹궈는 내가 지키고 싶은 최후의 보루다.

내가 아는 세상의 모든 음식 중 가장 자극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정말 철저하게 고단백 저염식 식단을 하는 엄마도 있고,

나처럼 스스로 정한 애매한 기준선을 넘나드는 엄마도 있고,

스트레스가 더 몸에 해롭다며 먹고 싶은 것을 모두 먹는 엄마들도 있다.


모유수유에 있어 정확한 식단의 기준은 없고

판단과 선택,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엄마의 몫이다.


엄마의 몫에 누군가 첨언을 한다면 의도가 어찌 됐건 그것은 잔소리일 뿐이다.


매일 샐러드와 두부를 먹는 엄마든,

마라샹궈를 먹는 엄마든,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다 똑같고 모유수유가 험난한 것은 다 똑같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은 덕순이가 태어난 지 140일째 되는 날이다.

140일 동안 모유수유를 하면서 겪은 큰 위기가 세 번 있었을 뿐이지, 세 번의 위기 끝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아마 내 목표인 돌까지 완모를 하게 된다면 그동안 겪은 위기는 대략 백번까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다 못한 이야기는 나중에 돌아와서 네 번째, 다섯 번째,... 마지막 백 번째 위기까지 다시 남겨보려 한다.




매일매일이 고비인 이 험난한 여정을 왜 선택했는지, 후회는 없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후회는 없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모유 수유를 할 거야.'


모유 수유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와 고민과 고통을 모두 상쇄시킬 만큼

아이와 교감하는 데 오는 행복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미 우리 사이를 연결해주었던 탯줄은 끊어진 지 오래지만

아직 모유수유라는 견고한 연결 고리가 우리 둘 사이를 이어주고 있고,

그 느낌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신비롭고 행복하다.




덤으로 덕순이는 지금까지 배앓이나 변비를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다.

번 주르륵 게운 것만 빼면 토를 한 적도 없다.

이렇게 건강한 덕순이 덕분에 이때까지 먹는 걸로 걱정한 것은 몸무게가 너무 많이 늘거나 적게 늘 때뿐이다.


외출은 또 얼마나 간편한지.

젖병과 분유, 텀블러를 이것저것 챙길 필요도 없다.

개인적인 공간만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덕순이에게 수유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 완모 여정을 이어나가기 때문에

'내가 그때 모유 수유를 했더라면...'

하는 미련 자체가 없다.




아마 돌까지 완모를 하게 된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정말 고생했지만 정말 잘했다.

나 정말 대단하다.'

라고 말이다.




부디 지금 겪고 있는 위기들도 나중에 추억으로 돌아볼 수 있길 바라며,

오늘의 힘듦도 열심히 헤처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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