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산후조리원의 혹독한 모유 수유 훈련기

모유 수유, 그 험난한 여정, 두 번째 이야기

by 덕순


아직 못 떠난 더위가 느지막이 남아있는 9월 19일,

나는 태어난 지 이제 겨우 3일 된 덕순이를 안고 난생처음 조리원이란 곳을 왔다.


들어는 봤지만 내가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곳.

안에서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짐작도 안 가는 곳.


이 낯선 곳에서 나와 덕순이는 2주 동안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입소 첫날부터 가슴 마사지실에서 연락을 받아 찾아갔더니,

마사지 선생님께서 막힌 유선을 뚫어서 젖이 더 잘 돌 수 있게 마사지를 해주셨다.


(아기까지 낳고 보니 웬만한 수치심은 다 내려놓게 되어서, 처음 보는 분 앞에서 옷을 훌러덩 벗고 눕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다.)


선생님은 모유 수유를 하고 싶으면 본인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일단 유축을 3시간 간격으로 낮에도 밤에도 꼬박꼬박 하세요.'

선생님의 첫 번째 지침이었다.


지침을 따라 내 방에 구비된 유축기를 처음 사용해보았는데,

가슴에 깔때기를 차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젖소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젖소는 젖이라도 잘 나오지,

20분 동안 유축기에서 나온 내 모유는 열 방울이 채 안될 정도로 초라했다.




'책에서는 무조건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된다고 했는데,

왜 유축을 따로 해야 하는 거지?


덕순이는 계속 신생아실에 있으니까 분유를 먹는 건가?

나는 언제 젖을 물릴 수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왜 아직 나는 젖이 안 나오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젖병에 고이지도 못하고 바닥에 얇게 깔린 모유에 너무 실망했다.




그렇게 모유 수유의 험난한 여정에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이해가 되던 안되던, 나는 가슴 마사지 선생님의 말을 무조건 따르기로 결심했다.


무척 피곤했지만 새벽에도 3시간씩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서 꼬박꼬박 유축을 하고,

신생아실로부터 수유 콜이 오면 달려 나가 덕순이를 안고 수유실에서 젖을 물렸다.


조리원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수유 콜'

아기가 배고파하면 신생아실 선생님들께서 산모가 있는 방에 전화를 주신다.

콜을 받은 산모는 신생아실에 가서 배고픈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부족한 양은 나중에 선생님들이 유축한 모유나 분유로 보충해주신다.


내가 묵었던 산후조리원은 산모의 조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곳이라

산모가 원하지 않으면 굳이 수유 콜을 안 해주셨지만,

열정이 넘쳤던 나는 새벽에도 콜을 부탁드려가며 모두가 자는 한밤중에도 혼자 수유실에서 젖을 물렸다.


하지만 이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직접 젖을 물리는 '직수'는 쉽지 않았다.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이상을 자는 신생아는 배고픈 와중에도 늘 졸리다.

게다가 따뜻한 엄마 품에서 젖을 물고 있자니,
쏟아지는 잠을 주체하지 못하고 1-2분 이내에 깊은 잠에 빠져든다.


나는 곤히 잠든 덕순이를 깨우려고

귓불도 만지작거리고, 발도 간지럽혀보고, 어깨도 주물러봤지만

한번 잠이 든 덕순이는 좀처럼 깨지 못했다.


결국 지친 몸을 이끌고 수유실에 가도

덕순이에게 제대로 젖을 물려보지 못하고 허탕 치기 일쑤였다.




유축은 더 절망적이었다.

유축한 모유는 젖병에 아기의 이름과 용량을 적어 신생아실 앞 냉장고에 보관했는데,

의도치 않게 다른 산모들의 젖병도 보게 되었다.


용량을 가늠할 만큼도 양이 안돼서 '소량'이라고 적힌 내 초라한 젖병 옆에는

우유 한 팩은 족히 될 것 같은 젖병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옆 방, 그 옆 방 산모들의 것이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

이제껏 시험 점수로 줄 세우기에 익숙한 나였지만 적응이 안 되는 박탈감과 열등감이 생겼다.


학점이니, 토익 점수야 공부를 덜 한 내 탓이지만,

이 산후조리원에서 제일 꼴찌인 내 모유양은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걸까?


얼른 아기가 배부를 만큼 주고 싶은데

타고나기를 이 정도밖에 젖을 못 만든다는 게 몹시 분했다.


더군다나 출산 후 호르몬의 변화로 감정선이 내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을 쳤던지라 냉장고를 열어볼 때마다 속상해서 참 많이도 울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울 일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내 삶의 목표가 '완모'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 절망했던 것 같다.




다행히 절망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절망적인 첫 일주일 동안 나는 아무리 속상해도 선생님의 지침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잘 지켰다.

수유 콜이 올 때마다 덕순이에게 가서 젖을 물렸고 3시간마다 꼬박꼬박 유축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나는 그제야 조리원의 생태계(?)가 조금은 파악이 되었다.


산모는 아기에게 젖을 물릴수록 자극을 받아 젖 양이 늘어나고,
추가로 유축을 하면 유축을 하는 빈도만큼 추가로 젖 양이 늘어난다.

아직 빠는 힘이 세지 못한 아기는 필요한 양을 다 못 먹는 경우가 많아서 부족한 양은 유축한 모유와 분유로 채운다.

엄마는 직수와 유축을 부지런히 하고,
신생아실 선생님들은 아기들이 배고프지 않게 보충을 해 주시고,
아기는 최선을 다해 받아먹는다.

완모를 성공하려면 엄마, 아기, 신생아실 선생님까지 모두 열심히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산모가 열심히 아기에게 젖을 물릴수록 젖 양이 늘고 아기가 추가로 필요한 보충 양이 줄어들게 돼서 직수의 비중을 키울 수 있다.


그림의 빨간색 파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완모에 다다를 수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조리원에서 산후조리는 우선순위에서 잠시 밀어두었다.

아기의 첫 생후 2주는 모유 수유의 골든타임이라 부를 만큼 중요한 시기여서

나를 위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덕순이만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모유 수유에 타고난 몸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더 노력한 대가일까?


일주일쯤 지나자 바닥을 맴돌던 모유 유축 양도 크게 늘었다.

다른 산모들처럼 젖병을 가득 채우진 못하더라도, 절반까지 따라잡았다.


그리고 매번 수유실에 가서 직수를 한 덕분인지

덕순이는 점점 젖을 물릴 때 먹는 양이 많아졌다.


이맘때쯤이면 아기들이 먹기 쉬운 젖병에 익숙해져서 엄마의 젖을 거부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덕순이는 다행히 매번 엄마 젖이 코 앞에 닿으면 고개를 돌려가며 탐색하다가 작은 입을 크게 벌려 물어주었다.


젖병은 아기가 힘을 주지 않아도 내용물이 똑똑 떨어지지만, 젖은 아기가 빨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젖을 직접 빠는 것은 젖병을 무는 것보다 약 60배가 힘들다고 한다.

영리한 아기들은 벌써 그 차이를 알고 편한 쪽을 선택하려 한다.
간혹 황달에 걸린 아가들은 한동안 분유만 먹어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젖병만 물다 보니 젖병에만 익숙해지기도 한다.

아기들이 엄마 젖을 거부하지 않도록 하려면, 꾸준히 직수를 해서 엄마 젖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마음고생 심했던 첫 일주일이 지나자, 모유 수유의 여정은 순탄했다.


꾸준한 유축과 직수로 양이 점점 늘었고,

이젠 직수만으로 아기를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붙었다.


마사지 선생님은 매일매일 가슴 마사지와 함께 모유 수유 지도를 해주셨는데,

이제 남은 일주일 동안은 아기와 최대한 오래 같이 있으면서 직수를 해보라고 하셨다.

아기와 떨어져 있으면 아기가 배고파하는 신호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었다.


조리원에서 정해진 모자동실 시간은 저녁 6시부터 8시였다.


나는 덕순이를 신생아실에서 내 방으로 데려와,

낮에 잠깐 쉬는 시간과 밤에 자는 시간을 뺀 모든 시간에 함께 있었다.


아직 먹는 힘이 부족해서 덕순이는 젖을 다 먹은 것 같다가도

1시간이 채 안돼서 배고파했다.

그때마다 나는 덕순이의 배고픈 신호를 알아차리고 젖을 물렸다.


아기와 계속 함께 있다 보니

화장실을 가는 것도

잠깐 물을 뜨러 나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점점 직수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 잠깐의 불편함은 꾹 참았다.


돌이켜 생각해도 나는 참 유난 맞은 엄마였다.


아무도 덕순이가 분유를 먹는다고 나를 비난하지 않을 텐데,

나는 반드시 모유 수유를 성공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내 정성은 남들이 보기에도 유난 맞았는지,

신생아실 선생님들은 나와 덕순이를 '모범생'이라 불러주셨다.


엄마 젖을 잘 받아먹는 덕순이가 모범생인 건데,

감사하게도 엄마의 노력이 크다며 나도 함께 칭찬을 해주셨다.




조리원 퇴소 전 날, 나는 덕순이와 함께 지내면서 완벽한 '완모'를 했다.

분유 보충 없이 모유로만 아기를 배불리 먹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조리원의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성공했을까?


이론과 실전은 늘 하늘과 땅 차이였고

내가 책으로 배운 모유 수유에 대한 이론은 이론일 뿐,

실전은 이곳 조리원에서 직접 부딪혀보며 배울 수 있었다.




2.84kg 작은 몸으로 태어나, 젖을 빠는 힘도 부족했을 것 같은 덕순이는

조리원에 머물렀던 2주 동안 3.5kg로 훌쩍 자라서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덕순이는 분유를 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보니,

집에 고이 닦아 모셔둔 새 분유 포트는 아쉽지만 한 번도 쓰지 못했다.


아직도 우리 집구석에 그대로 있는 분유 포트를 보면 혼자 자화자찬을 한다.


'나 참 대견하다. 집에 돌아와서부터 정말 완벽한 완모를 했네.'




이대로 덕순이의 첫 돌까지 순항할 것만 같았던 내 모유수유 여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째 위기를 만났다.



그것은 11월 말부터 시작된 '유축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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