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유축 지옥에 빠져버리다

모유 수유, 그 험난한 여정, 세 번째 이야기

by 덕순

병원에서 조리원까지 긴 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뒤, 본격적인 실전 육아가 시작되었다.


모유 수유 여정은 순항 중이지만 쉽진 않았다.


한 달은 덕순이가 2시간마다 젖을 먹을 때라 체력적으로 몹시 힘들었다.

모유 수유는 남이 대신해줄 수가 없어서 나는 낮이고 밤이고 직접 수유를 했는데, 밤에 잠을 푹 못 자는 게 제일 힘들었다.


덕순이는 잠에서 깨기 20~30분 전부터 끙끙댔는데, 그 소리에 이미 나는 잠이 깨서 긴장상태였다.

덕순이가 깨면 30분 동안 여차저차 젖을 물리고 또다시 30분 동안을 트림을 시켜주고 소화가 되도록 안아주었다.

그러면 덕순이가 그다음 수유 시간에 깰 때까지 나는 한 시간도 채 잠을 잘 수 없었다.


세상에서 자는 게 제일 좋았던 나는 그렇게 소중한 밤을 한 시간씩 쪼개가며 쪽잠을 잤고, 좀비가 되어갔다.




잠을 못 자는 고통은 정말 괴로웠지만,

사실 이 정도 어려움은 이미 모유 수유를 결심했을 때 각오했었다.


모유는 분유보다 소화가 빨리돼서 아기가 금방 배고파하기 때문에, 수유 텀이 분유보다 짧다.

보통 분유를 먹는 아기들은 3시간 간격으로 배고파하는데, 모유를 먹은 아기들은 2시간 간격으로 배고파한다.

수유 텀 간격이 짧을수록, 수유 횟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유를 먹는 아기들은 분유를 먹는 아기보다 늦게 통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주변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기들이 벌써 5-6시간을 한꺼번에 잘 때,

덕순이는 아직도 1시간 반 마다 잠에서 깨서 젖을 찾았지만 나는 그럴수록 나를 위로하고 다독였다.


'덕순이가 자주 젖을 찾는 걸 보니 더 크려나보다.

작게 태어났으니까 잘 커야 하잖아.

내가 피곤한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아.

벌써부터 이런 걸로 덕순이를 다른 아기들과 비교하면 안 돼.


언젠간 덕순이도 길게 잠을 자는 날이 오겠지?'


나는 덕순이만의 성장 속도를 존중해주고 싶어서

덕순이가 배가 고파 젖을 찾을 때에는 어김없이 젖을 물렸다.


공갈젖꼭지를 물리면 편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덕순이가 좋아하지 않았을뿐더러

아기가 배가 고파 일어난 것이니 배불리 먹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기적이 찾아왔다.


내 정성에 보답해준 건지, 덕순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잠을 길게 자기 시작했다.


50일쯤이 된 어느 날, 한밤 중에 덕순이가 배가 고파 칭얼거렸을 때, 자정쯤 됐겠거니 하고 깼는데 이미 새벽 2시를 훌쩍 넘었었다.

한 번에 5시간을 훌쩍 자버린 것이었다.


그 뒤로 덕순이는 점점 자는 시간이 늘어나더니

100일이 다가올수록 밤에 한 번도 젖을 찾지 않았다.


10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까지.

세상 모든 엄마들의 소원인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빨간색이 수유, 파란색이 잠


수유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밤에 자는 시간이 늘어나는 '백일의 기적'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아직 백일도 안 된 아기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잘 자주 다니.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고마운 덕순이의 통잠 때문에 세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아기가 분유를 먹는 것은 엄마의 몸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피곤한 것 빼고는)

예를 들어 아기가 분유를 더 많이 먹는다고 엄마의 심장 박동이 그에 맞추어 빨라지거나 하지 않는다.
분유는 애초에 엄마의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기를 향하는 방향으로만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모유는 다르다.

모유는 엄마의 몸에 생성된다.
아기가 모유를 더 많이 먹으면 엄마의 몸은 그만큼 모유를 더 많이 생산한다.
아기가 모유를 적게 먹으면 엄마의 몸은 또 그만큼 모유를 더 적게 생산한다.

즉, 모유수유를 하게 되면 아기와 엄마 모두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유의 양은 한 템포 느리게 조정된다.

아기가 모유를 더 많이 먹으면 바로 모유가 증가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증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는 더 많이 먹고 싶지만 모유가 그 양을 못 따라가는 구간이 생긴다. 길어야 며칠 좀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젖을 다 먹고도 배고파서 우는 아기를 보면 엄마는 죄책감과 당혹감에 서둘러 분유를 주게 된다.

결국 분유를 먹으면서 아기가 모유를 먹는 시간은 줄어들고, 엄마의 몸은 젖을 적게 생산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마찬가지로 아기가 모유를 적게 먹을 때에도 모유는 시간 차를 두고 천천히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가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모유가 생성되어 남아도는 구간이 생긴다.
이 시기도 길지 않지만, 아무리 아기가 젖을 다 먹어줘도 엄마는 가슴이 딱딱하게 뭉쳐있고 매우 불편해진다.
게다가 젖이 계속 차올라서 압력이 높아지고, 아기가 젖을 빨 때 굵고 센 줄기로 발사된다. 아기는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젖줄기에 사래가 걸려 컥컥거리고 놀라서 울게 된다.
(이를 사출이라고 한다.)
당황한 엄마는 남아도는 젖을 미리 유축기로 빼내서 가슴을 조금 가볍게 해 보지만, 엄마의 몸은 이것을 아기가 먹은 것으로 인식해서 그만큼 젖을 더 생성한다.

결국 엄마가 미리 빼는 양만큼 이 더 늘어나면서, 엄마의 몸은 젖을 많이 생산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금까지 모유 수유를 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바로,

'아기를 믿고 그대로 둘 '이다.


젖이 부족해서 울어도, 반대로 너무 많이 나와서 울어도

아기는 언젠가 요령을 터득해서 적응을 한다.

엄마의 몸도 언젠가 아기의 필요에 맞게 젖 양을 조정한다.


그때까지 조금 힘들어도 분유를 먹이거나 유축을 하지 않고 계속 젖을 물려야 한다.


하지만 아기의 울음은 이성을 흐리게 하는 힘이 있다.

아기가 우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당장 쉬운 길을 택한 순간부터 엄마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다.



나는 놀랍게도 후자의 경우였다.

조리원에서부터 남들보다 모유 양이 적은 것을 익히 알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모유양 늘리기'였다.


하루 세끼 밥을 미역국 한 사발과 함께 꼬박꼬박 챙겨 먹고,

젖 양을 늘린다는 비싼 허브차와 영양제까지 사서 먹었다.


내 노력 덕분에 덕순이는 모유만으로도 배부르게 먹었고, 50일까지는 몸무게가 상위 1% 일 정도로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




문제는 덕순이가 통잠을 자면서부터였다.

밤에 두세 번은 꼭 수유를 했는데 덕순이가 길게 잠을 자면서부터 수유 양이 줄어들었다.


덕순이는 예전보다 적게 먹기 시작한 것인데,

내 몸은 아직 적응을 못하고 밤에도 모유를 계속 만들었다.


덕순이는 곤히 자는 깜깜한 새벽,

나는 가슴에 전기가 통한 듯 징-하는 불쾌한 느낌에 잠을 설쳤다.

(젖이 생성될 때 느껴지는 특이한 통증이 있다.)

아기가 빨아주지 않은 가슴은 뭉칠 대로 뭉쳐 딱딱해졌고 열도 났다.

이대로 계속 둔다면 출산의 고통보다 더 아프다는 젖몸살이 올 것만 같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난 덕순이가 첫 수유로 딱딱해진 가슴을 물면 가슴에서는 젖 줄기가 물총처럼 세게 나왔다.

덕순이는 젖을 물다 사래가 걸려 컥컥거리면서 입을 뗐는데, 그럴 때마다 몹시 짜증 섞인 울음을 터트렸다.


'조리원에서 선생님이 분명히 유축을 따로 하지 말고 젖만 꾸준히 물리라고는 했는데.

당장 가슴은 아프지, 아기는 울지...


모르겠다.

일단 유축으로 좀 빼내서 가슴을 가볍게 해서 물려보자.

지금 당장 덕순이가 편하게 먹는 게 더 중요해.'


결국 나는 이 상황의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덕순이의 울음을 견디지 못하고 당장의 편한 길을 선택했다.




덕순이가 잠든 한 밤중,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몰래 유축을 했다.


딱딱하게 뭉친 가슴이 조금 가벼워질 때까지 유축을 하고 나면, 젖병에는 모유가 100ml가 훌쩍 넘게 담겨 있었다.


조리원에서 양이 적다고 속상해했던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잉여분이 새벽마다 생산되었고, 나는 그 양을 매번 빼내서 덕순이가 좀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덕순이는 아침에 편하게 젖을 빨 수 있었지만 나는 날이 갈수록 초췌해졌다.


이제야 덕순이가 밤에 한 번도 안 깨고 자는데,

왜 나는 이렇게 억지로 일어나서 고생을 해야 하는지 억울하기도 했다.


냉동실에 가득 쌓여가는 유축 모유도 골칫덩어리였다.

유축한 모유를 담은 저장팩들은 나날이 냉동실을 가득 채우는데, 딱히 쓸 데도 없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애물단지가 되었다.




'애기가 드디어 잘 자주는데 난 같이 자지도 못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유축을 해야 할까?'


이 악순환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라도 유축을 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젖몸살이 오고 덕순이는 딱딱하게 뭉쳐있는 젖을 제대로 못 빨고 배고파할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유축 지옥은 2-3주 동안 나를 힘들게 했고,

나는 처음으로 단유를 할까 고민도 해보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단유를 하지 못했던 것은 이맘때쯤부터 덕순이가 젖병을 아예 거부하기 시작해서였다.

젖병 꼭지만 물면 인상을 확 찌푸리면서 뱉어냈는데, 이런 아기를 두고 나 편하자고 억지로 젖병을 물리는 건 너무 가혹한 일 같았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꾸역꾸역 버텨왔다.




그리고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나는 어떤 계기로 이 유축 지옥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주변에서 완모를 하는 엄마들은커녕, 아기를 기르는 엄마들도 흔치 않아서

육아 정보도 나누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줄 겸, 나는 맘 카페를 통해 여러 인맥을 쌓았다.


덕순이 또래 아기들을 기르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힘든 고충을 털어놓고 위로를 주고받았는데, 힘든 육아를 견디는 데 있어 그 무엇보다 나에겐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유축을 안 하자니 애가 사레가 들려 먹는 게 힘들고...

유축을 하자니 젖 양이 줄지를 않아서 계속하게 돼요.'


완모를 하는 엄마들이 모여있는 채팅방에 나는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모두들 모유수유가 얼마나 힘들고 매일매일이 나 홀로 전쟁인지 잘 알기 때문에, 내 고민을 잘 들어줄 것 같아서였다.


감사하게도 나는 그곳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아기가 웬만한 사출은 다 먹을 만큼 컸을 거예요.

아기를 믿고 한번 유축 없이 버티고 물려보세요.'


생각보다 간단했다.


사출 때문에 사레가 들려 컥컥거리던 덕순이는 이미 2-3주 전의 덕순이고,

지금의 덕순이는 그때보다 훨씬 자랐기 때문에 그때와 다를 거란 생각을 왜 못했을까?


아기는 매일매일 몰라보게 쑥쑥 크는 만큼 젖을 빠는 힘과 삼키는 힘도 세진다.
다만 젖을 빠는 힘이 젖을 삼키는 힘보다 먼저 세진다고 한다.
젖을 힘껏 빨아서 입안 가득 모았는데, 모두 삼키질 못하니 젖을 빼고 잠시 쉬기도 한다.

젖을 삼키는 힘은 뒤따라 세지는데, 어느덧 아기는 오히려 사출이 심한 쪽을 더 좋아할 만큼 엄마의 젖을 잘 받아먹게 된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유축기를 멀리하고, 아침까지 오래간만에 깊은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첫 수유를 하려 하니, 예상대로 가슴은 빠져나오지 못한 모유로 가득 차 딱딱하게 뭉쳐있었다.


돌덩이 같은 가슴을,

처음으로 덕순이를 믿고 그대로 물려보았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다.


덕순이가 나름 잘 받아먹었던 것이다.

사출이 심할 때에는 중간중간 입을 떼고 쉬는 텀도 있었지만 사출이 잦아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젖을 물고 힘차게 빨았다.


내가 덕순이가 잘 못 먹을까 봐 혼자 고생하는 사이, 덕순이는 이미 훌쩍 커버렸다.


진작에 이럴걸!


후회도 됐지만 고생 끝에 찾은 유축 지옥의 출구는 너무나 행복했다.

더 이상 힘들게 새벽에 일어나 혼자 유축을 할 필요도 없었고,

덕순이도 사레들려 힘들어하지 않고 젖을 잘 받아먹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분명 모유 양은 줄어든 수유 양에 맞게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날 이후, 한 일주일 동안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슴이 딱딱하게 뭉쳐있었다.

유축 대신 새벽에 젖이 돌지 않도록 부지런히 양배추 크림을 바르고 아이스팩을 가슴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젖 양은 어느새 덕순이가 먹는 양에 맞춰 줄어들어 있었다.

긴 밤을 지나 아침에 일어나도 뭉쳐있지 않았다.


유축 지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지금까지 모우 수유 여정에서 겪은 위기 중 가장 힘들었던 이 위기를 겪고 나니,

나는 모유 수유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모유 수유는 전적으로 아기의 몫이다.


엄마는 아기가 먹는 양이나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

얼마나 먹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수시로 물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아기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아기를 믿는 수밖에 없다.


아기가 평소보다 덜 먹는 날에는

'우리 아기가 지금까지 많이 먹어서 오늘은 조금만 먹으려나보다.' 하고

아기가 평소보다 더 먹는 날에는

'우리 아기가 오늘은 더 크려나 보다.' 하고 젖을 물려야 한다.


말은 쉽지만, 늘 걱정의 연속이다.

잘 먹은 건지, 부족한 건 아닌지

늘 걱정에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게 모유 수유를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조금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이런 엄마가 되고 싶다.

사랑하기 때문에 걱정한다.

자식을 걱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덕순이가 스스로 헤처 나가기를 기다려 줄줄 아는 엄마가 되고 싶다.


눈이 쌓인 험한 산속을 앞장서서 길을 찾고 이끌어주는 엄마보다,

눈 속을 헤매며 길을 찾는 자식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며 이따금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건네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백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모유 수유, 그 험난한 여정 동안 나는 숱한 위기와 고비를 넘겼고,

그중 가장 힘들었던 세 번째 위기를 겪으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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