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완벽하지 않아도, 하루 한 장씩만이라도

새내기 작가의 천기저귀, 네 번째 이야기

by 덕순

빨갛게 부어오른 덕순이의 엉덩이는 스치기만 해도 몹시 쓰라릴 것 같았지만,

다행히 아직 크게 번지진 않은 터라 덕순이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새벽에 들어놓고도 자버린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때 얼른 깨서 기저귀를 갈아줬더라면...




하지만 자책할 시간도 부족했다.

나는 서둘러 방구석에 곱게 모셔둔 천 기저귀 뭉치를 꺼냈다.


금방 축축해져서 오히려 더 발진이 악화될 수 있는데 왜 천기저귀를 꺼냈냐, 하면

기저귀 발진에는 통풍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상처가 빠르게 아물려면 연고를 바른 뒤 바람을 잘 통하게 해야 했다.

그래서 통풍이 아예 안 되는 일회용 기저귀는 적합하지 않았다.


천기저귀의 면으로 덕순이의 엉덩이를 감싸주고

방수 재질의 기저귀 커버는 통풍을 위해 활짝 열어두었다.


그리고 수시로 천기저귀가 축축해졌는지 확인하며 바꿔주었다.

이전에 이미 호기롭게 천기저귀를 썼다가 한 시간 만에 호되게 고생하고 포기했었지만, 그때와 상황은 달랐다.


그때는 굳이 천기저귀를 쓸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발진을 치료해야 한다는 아주 강력한 동기가 부여되어 있었다.


'지금은 천기저귀를 꼭 써야 해. 하루 종일 한번 써보자.'




사람은 동기가 부여되는 순간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고3 수험생 시절엔 가고 싶은 대학교 사진을 책상에 붙여놓고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했었다.

평생 다이어트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내가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자 6개월 만에 살을 쭉 빼고 예쁜 몸매를 만들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뿐인 내 소중한 아기의 엉덩이를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일찍이 포기해버린 천기저귀를 다시 꺼내 들었고, 엄청난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각오했다.




예상대로 천기저귀는 한 시간에 서너 번씩 축축해졌다.


수시로 기저귀가 젖었는지 확인하고,

축축해지면 바로 엉덩이를 씻어주고 연고를 바르고 새 기저귀로 갈아주었다.

똥을 싸면 그 기저귀를 세면대에서 비누로 벅벅 문질러서 빨았다.


갑자기 육아에 난이도 높은 임무들이 추가되어 몹시 힘들고 피곤했지만,

이 한 몸 불태워서 덕순이의 엉덩이를 지키는 것 만이 제일 중요했다.




덕순이를 괴롭혔던 발진은 내 피나는 노력 덕분에 3일 만에 모두 완치되었다.

상처는 아물었고 새 살이 올라 약간은 딱지처럼 꺼끌꺼끌했지만 이내 부드러워졌다.




무슨 일이든 계속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기 마련.


3일 동안 열과 성을 다해 천기저귀를 쓰고 보니, 그새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다.




첫 번째, 기저귀는 30분 주기로 체크할 것.


수시로 기저귀를 확인하다 보면 어느 때엔 너무 자주 확인하게 되고 어느 때엔 너무 늦게 확인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일정한 시간을 주기로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고 30분이 가장 적당해 보였다.


30분이란 시간은 기저귀가 축축해졌을 때 내가 견딜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이었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어도

(새 기저귀를 갈아주자마자 바로 오줌을 눈다 해도),

30분 후면 다시 새 기저귀로 갈아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30분이란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아서 천기저귀를 제 때 안 갈아줘서 생기는 발진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정각 8시, 8시 반, 정각 9시, 9시 반... 의 순서로 기저귀를 확인하면 되니까 기저귀를 체크해야 할 시간을 가늠하기 쉬웠다.




두 번째, 잠을 자기 전 일회용 기저귀로 바꿔줄 것.


덕순이가 잘 때 천기저귀를 쓰면 오랜 시간 동안 축축해진 상태로 살에 맞닿아 발진을 더 악화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고 30분마다 기저귀를 갈아주자니, 겨우 재운 잠이 깨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깨어있는 동안에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까지 하려다 일찌감치 포기할 바에야, 할 수 있는 만큼만 열심히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순이는 졸릴 때 부리는 특유의 몸짓과 투정이 있다.

갑자기 짜증이 늘어나고, 엄마 품에 계속 안겨있으려 하고, 고개를 숙이고 파묻으려 한다. 똘망똘망한 눈도 맥없이 풀어진다.


그때가 덕순이가 곧 잠을 잔다는 타이밍이기 때문에 나는 그 신호를 놓치지 않고 얼른 일회용 기저귀로 갈아주었다.

덕순이가 긴 잠을 자고 난 뒤 일회용 기저귀는 오줌이 쌓여 무거웠지만 천기저귀만큼 축축하진 않아서 엉덩이는 보송보송했다.




세 번째, 기저귀가 축축해지는 신호가 보이면 바로 갈아줄 것.


천기저귀를 쓰다 보니 놀라운 능력 하나가 생겼다.

덕순이가 오줌을 누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30분 단위로 기저귀를 체크했지만, 칼같이 무조건 30분을 주기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덕순이의 표정과 행동에서 신호가 보이면 그다음 갈아줘야 하는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확인해서 갈아주었다.


덕순이는 똥을 눌 때처럼 오줌을 눌 때 얼굴에 힘을 잔뜩 주었다.

똥은 워낙 소리가 요란해서 금방 알아차리지만 오줌은 소리 소문 없이 누기 때문에 모르고 넘어갔었는데,

천기저귀를 쓰다 보니 덕순이를 더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용히 아주 잠깐 힘을 잔뜩 주고 나면 금세 다시 방실방실 웃었는데 그때마다 기저귀를 만져보면 역시나, 갓 나온 따끈따끈한 오줌이 만져졌다.


(아기를 기르다 보니 아기의 똥, 오줌은 전혀 더럽지가 않게 느껴진다.

엄마의 위대함이랄까.)


또한 천기저귀를 쓴 덕분에 덕순이가 오줌을 하루 종일 찔끔찔끔 싸는 게 아니라, 수유를 한 직후 2~3시간 동안 계속 찔끔찔끔 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유를 한 뒤 30분 단위로 체크하면 3~4번은 매번 기저귀가 젖어있었는데 그 뒤로는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기저귀가 젖지 않았다.

이것 또한 일회용 기저귀를 쓸 때에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우리 덕순이 젖을 많이 먹었나 보다. 3시간째 쉬야를 하네. 이제 슬슬 끝나겠구나!'

덕분에 나는 아무리 기저귀가 매번 축축해져 있어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갈아줄 수 있었다.




천기저귀를 쓰면서 나는 덕순이를 예전보다 더 세심하게 관찰했고, 덕분에 덕순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았다.

엄마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분이랄까.


그뿐만 아니라, 엄마가 아닌 '나'로서의 업그레이드도 있었다.


천기저귀를 통해 얻은 나만의 노하우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먼, 어딘가 '어설픈 구멍'이 하나둘씩 있다는 점이다.


앞서 나 자신을 완벽주의자라 칭했지만

나는 천기저귀를 젖을 때마다 매번 갈아주지도, 하루 종일 쓰지도 못했다.


본격적으로 천기저귀를 쓰다 보니 나는 내가 완벽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알았고,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부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고,

굵은 나무가 얇은 갈대보다 태풍에 더 잘 꺾이는 법이다.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안 할 거면 아예 안 해.'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고, 내 의지는 바람이 조금만 거세게 불어도 금방 꺾이곤 했다.


다이어트를 하겠노라 결심을 한 첫날엔 무심코 먹은 과자에 금방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과자를 먹은 이상 오늘 하루는 망했어. 내일부터 다시 하자. 그 대신 오늘은 맘껏 먹자. 내일부터 진짜 진짜 다이어트해야 하니까.'


시험공부를 하던 날엔 잠깐 한눈을 팔고 놀면 그날 하루는 '이미 버린 날'이 되었다.

'또 게임을 하다니. 오늘 하루는 망했어. 내일부터 다시 하자. 그 대신 오늘은 맘껏 놀자. 내일부터 진짜 진짜 공부를 해야 하니까.'




나이를 먹어도 숨 쉴 여유가 없는 내 마음은 여전했다.


영원히 화려할 것만 같았던 내 삶이 무채색이 되어있음을 오래전부터 짐작했지만, 다른 길을 걸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언가 시작하려 하면 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에잇. 시작도 하기 전에 자신이 없어지네. 관두자.'


이렇게 접어둔 꿈들만 마음 한 구석에 천기저귀처럼 애물단지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나는 늘 지금의 나를 바꾸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 기웃거리지만 했지만 그저 그뿐,

밥벌이로 다니는 회사 말고는 무언가 진득하게 해 본 게 없었다.




그랬던 내가, 절대 완벽할 수 없는 육아의 세계에 발을 디디면서,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기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지만,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깨닫게 된다.


'아- 내가 이건 이 정도밖에 못하는구나. 뭐 어때. 이 정도만큼은 열심히 해보자.'

나는 천기저귀를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부지런함은 부족했지만, 적어도 덕순이가 깨어 있을 때만큼은 최선을 다해 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능력도 마찬가지 었다.


나는 이리저리 이야깃거리를 곧 잘 생각해내지만, 남들만큼 재미있게 풀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작가가 되고 싶은 꿈에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보다 좀 재미가 없어도, 인기가 없을 것 같아도 일단 시작을 하는 게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글솜씨를 가졌다면야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고

부족한 글을 계속 써내려 갔고

그 글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조금은 어설픈 새내기 작가의 어설픈 천기저귀 도전 무용담은 이렇게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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