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알고보면 매력덩어리 천기저귀

새내기 작가의 천기저귀, 마지막 이야기

by 덕순


요즘에는 자동차도 하이브리드가 인기 있다.

뒤늦게 정착했지만 지금까지 순항 중인 덕순이의 천기저귀 생활도 그렇다.


덕순이의 엉덩이 발진은 모두 나았지만 그 뒤로도 나는

일회용 기저귀와 천기저귀를 적당히 섞어 가며 큰 어려움 없이 잘 쓰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모유수유보다 시작은 훨씬 어려웠지만

일회용 기저귀와 함께 쓰다 보니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오히려 모유수유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오로지 직수만 꾸준히 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이어나가기가 천기저귀보다 어려운 듯했다.


이렇게 천기저귀를 계속 쓰다 보니 그 전에는 몰랐던 천기저귀만의 장점들이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매일매일 종량제 봉투를 꽉 채우던 기저귀 쓰레기들이었다.


덕순이가 태어나고, 여러 지인들로부터 일회용 기저귀를 선물로 잔뜩 받은 터라 나는 한동안 기저귀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았다.

아니 오히려, 저 많은 기저귀를 언제 다 쓰지 하는 부담감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기저귀를 갈 때 주저함이 없었다.


기저귀에는 아기가 눈 오줌 양만큼 노란색 소변 표시줄이 파란색으로 변하는데, 아주 조금만 파란색으로 변했을 때에도 바로 갈아버렸다.


덕순이가 여자 아기라 아무래도 기저귀를 더 청결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아무리 기저귀를 흥청망청 써도 창고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낮동안 한 시간에 적게는 1번, 많게는 2~3번을 갈았다.

하루에 버리는 기저귀 쓰레기만 해도 10장은 족히 넘었다.

덕분에 매일매일 종량제 봉투에는 기저귀 쓰레기가 가득 채워졌고, 남편이 매일매일 치워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봉투가 터질 듯했다.


'매주 기저귀 한 팩만큼 새로운 쓰레기를 만드는 게 과연 괜찮은 걸까?'

터지기 일보 직전 휴지통을 보면 나는 마음이 항상 무거웠다.


(나는 쓰레기 하나를 버리려 해도, 그 쓰레기가 영원히 썩지 않고 어느 바다 깊은 곳에서 바다거북을 괴롭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필요가 없는 물건도 버리기보단 당근 마켓에서 무료로 나누는 것을 더 선호한다.)




다행히 천기저귀를 쓴 뒤로 나는, 여전히 기저귀를 자주 갈아줘도 이 무거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회용 기저귀를 쓸 때에는 기저귀가 애매하게 젖어있으면 버리자니 아깝고, 계속 쓰자니 찝찝했는데 천기저귀는 아무리 자주 갈아주어도 빨래하는 것이 번거로울 뿐, 쓰레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회용 기저귀는 하루에 2-3장이 채 나오지 않았고,

휴지통에 넘쳐서 튀어나오던 기저귀 쓰레기들이 매일매일 종량제 봉투를 비우지 않아도 될 만큼 줄어들었다.




사실 환경을 위해서라면 일회용 기저귀를 아예 안 써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내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나에겐 기회가 되면 하루 종일 장황하게 말할 수 있는 개똥철학이 있다.

어차피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평생 자연을 소비한다.

밥을 먹고, 차를 타고, 쓰레기를 버리고, 배변하는 것 모두 다 자연을 소비하는 것이다.

아무리 환경을 위해 이 한 몸 바쳐 노력한다 해도 결국 내가 이 세상에 안 태어나는 것만 못하다.

나는 윤리와 환경을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그중에 육식을 하는 사람을 향해 날 선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존경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엔 그들의 삶도 무결점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삶도 파헤치고 파헤치다 보면 결국,
어쩔 수 없이 자연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차피 이 지구에 백해무익한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구에 태어났고 소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완벽하게 지구를 안 망칠 수는 없으니,
살아가는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
최선을 다해 자연을 조금 덜 소비하는 것.

그리고 나의 빈틈을 인정하고 서로의 빈틈을 향해 비난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도리이다.




'오늘은 일회용 기저귀를 3장 썼네.

10장씩 쓰던 예전보다 훨씬 많이 줄였구나.

이렇게라도 줄이는 게 어디야. 나 참 잘하고 있다.'


매일매일 나는 스스로에게 칭찬을 한다.

오늘 하루도 지구를 '조금 덜' 괴롭혔구나 하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천기저귀는 우리 집 재정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일회용 기저귀만 쓸 때에는, 창고에 쌓인 기저귀가 빠르게 동이 났고 기저귀로 쓰는 돈도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기저귀 66매가 들어있는 한 팩이 2만 원 정도이니, 일주일에 한 팩씩 쓴다 하면 한 달에 기저귀 값만 10만 원이 든 셈이다.

(괜히 아빠들이 기저귀 값, 분유값 벌러 출근한다고 하는 게 아니다.)


천기저귀를 함께 쓰는 지금은 한 달에 일회용 기저귀 한 팩을 채 못쓰고 있다.

이러다 덕순이가 먼저 커버려서 기저귀가 작아져서 못 쓸 것 같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처음 천기저귀를 장만할 때에는 꽤나 지출이 컸지만

일단 한번 사고 나면 그 뒤로 따로 지출할 것이 없어 꾸준히만 쓴다면야 천기저귀만큼 가계 절약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천기저귀를 하다 보면, 남들은 엄두를 못 내는 어려운 일을 해낸 것 같은 성취감도 덤으로 얻는다.

'진짜 대단하다. 완모에 천기저귀라니.'

주변에선 나를 두고 이렇게 칭찬을 많이 했다.


요즘 엄마 안답게 참 사서 고생한다는 걱정도 섞여있겠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으니 앞으로 나에게 어떤 시련이 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힘들어봐라. 어디 모유수유에 천기저귀만 하겠어.

두 가지를 동시에 다 한 엄마니까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천기저귀를 쓰면서 다른 엄마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세상에 나처럼 아기가 오줌을 누는 신호를 알아맞히는 엄마는 얼마 없을 것이다.


천기저귀를 쓰다 보니 덕순이가 오줌을 누는 표정과 행동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아직도 덕순이가 배고파하는 울음은 종종 헷갈려하긴 하지만 말이다.




천기저귀의 시작은 거창했고 끝은 미약했다.

처음 다짐한 것처럼 천기저귀를 하루 종일 완벽하게 하진 못했지만 미약하면 뭐 어떤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첫 술에 배부르랴 했지만 나는 워낙 오랫동안 작가를 꿈꿔왔던 지라,

브런치 작가에 응모하면서부터 내 이름 석자가 있는 책을 출간하리라 큰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내 글은 여전히 부족하다.

소재가 특별할 만큼 재밌는 인생을 딱히 산 것도 아니고,

(남편의 지적에 의하면) 혼자 너무 진지해져서 글이 쓸데없이 무거워지곤 한다.


좀 부족하면 뭐 어떤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덕순이의 엉덩이를 감싸주는 부드러운 천기저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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