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엄마의 선택은 지루한 오뚝이

92년생 엄마의 장난감, 두 번째 이야기

by 덕순

덕순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이 모빌은 아기 있는 집엔 꼭 있는 '국민 모빌'이다.


알록달록한 색이 처음에는 촌스럽게 보였지만,

이 모빌 덕분에 나는 밥을 먹고, 용변을 보고, 밀린 빨래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고마운 모빌이지만 내 마음 한편에 걸리는 게 있다.

덕순이가 이 모빌을 지나치게 넋 놓고 본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자유 시간이 생겼으니 감사한 게 당연하지만, 것은 내가 덕순이와 함께 하면서 지키고 싶은 원칙을 조금 벗어난다.


(덕순이의 동의는 없었지만 어쨌든) 우리들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원칙,

여유가 있는 장난감을 지향할 것.



요즘 나오는 장난감들은 정말 화려하다.

버튼을 누르면 형형색색 불빛과 함께 멜로디가 나오고, 알아서 춤을 추기도 한다.


이런 장난감이 절대 나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시각과 청각 자극으로 아기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기는 이런 장난감들을 넋 놓고 보고만 있게 된다.

이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어서 장난감을 만지거나 이리저리 굴려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조금은 심심해도 아기가 이것저것 만져보고 굴려보는 장난감도 있다.


덕순이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이 오뚝이 툭 치면 안에서 딸랑딸랑 소리가 난다.

방울 소리를 내며 흔들거리는 오뚝이는 이내 제 자리를 찾아온다.


'안녕 덕순아? 나는 오뚝 오뚝 오뚝이야. 나는 언제나 이렇게 흔들흔들 춤을 춰!'

나는 이 오뚝이를 흔들어주면서 덕순이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어느 날은 오뚝이를 엎드려 놀고 있는 덕순이의 엉덩이 위에 올려놓았다.

'안녕 덕순아? 나는 오뚝 오뚝 오뚝이야. 오늘은 네 엉덩이 위로 올라왔어!

내가 잘 서있을 수 있을까?'


덕순이는 엄마가 열연하는 오뚝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입으로 가져가서 빨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뚝이는 건전지로 작동하는 장난감이 아니 빨아도 위험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시청각 자극의 세기가 크면 클수록 아기는 장난감을 '관찰'만 하게 된다는 점에서 아기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조금 덜 화려한 장난감을 선호한다.




손으로 쥐고 놀랬더니, 머리 위에 중심잡기 놀이 중
촉감책은 무슨 맛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온 정신을 뺏기지 않을 만큼 조금은 심심한 장난감.

내가 말하는 '여유가 있는 장난감' 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이런 장난감은 엄마의 손길이 더욱 절실하다.

건전지가 없으니 엄마가 직접 장난감에 빙의해서 말을 걸어줘야 하고,

이리저리 굴려가며 새로운 방법으로 놀아주어야 한다.


일분일초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엄마에겐 참 힘든 일이지만,

나는 내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남은 시간에 최선을 다해 덕순이와 함께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그리고 덕순이가 혼자 놀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모빌의 힘을 빌리고 있다.)




아직 아기 덕순이에게는 어려운 얘기지만,

나는 덕순이가 앞으로 살면서 현란한 자극들에 몰입되어 정신을 뺏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새 없이 유튜브 영상이 나오는 텔레비전,

재미있는 게임들이 넘쳐나는 스마트폰 등...

앞으로 덕순이에게 펼쳐진 화려한 재밋거리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덕순이의 마음속에 엄마와 함께 하던 오뚝이는 추억으로 남아

심심함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찾을 줄 아는 그런 아이로 컸으면 한다.


그래서 덕순이는

나처럼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사는 아이로 컸으면 한다.




장난감에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어 글이 또 지나치게 장황해졌지만

나는 오늘도 이 무겁고 심오한 바람을 담아 오뚝이를 흔들어 본다.


'안녕 덕순아? 나는 오뚝 오뚝 오뚝이야. 나를 잊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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