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위대한 튤립과 엄마의 사랑

92년생 엄마의 장난감, 세번째 이야기

by 덕순

이 위대한 튤립을 소개하자면, 육아에 지쳐 노래 부를 힘조차 없는 엄마들을 대신해서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불러주는 메시아 같은 분이시다.

덕순이도 칭얼거릴 때 이 튤립을 틀고 노래에 맞춰 흔들어주면 이내 울음을 그치고 튤립을 쳐다본다.


나 대신 노래하라고 튤립을 틀어주고 잠깐이나마 쉬면 좀 편하겠다만,

이토록 고마운 튤립을 본받아 나는 스스로 튤립이 되기로 했다.


장난감 대신 엄마가 직접 노래를 부르고 아기와 율동을 하며 놀아줄 것.

이것이 우리의 두 번째 원칙이다.




튤립 사운드북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색깔 별로 수록된 동요가 다르다.

내가 어릴 적에도 불렀던 익숙한 동요도 있었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도 있다.

이 동요들은 멜로디와 가사가 단순한 동요다 보니 한 두 번 듣다 보면 그새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다.

나는 이 위대한 튤립들이 엄선한 노래들을 열심히 따라 불렀고, 어느새 가사를 보지 않고도 모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튤립이 훨씬 음정과 박자를 잘 맞추면서 노래를 불러주시는데,

굳이 스스로 인간 튤립이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나는 비록 튤립보다 노래는 못 부를지언정,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노래를 부르는 입 모양이다.


아기는 주변 말소리에 자극을 받는데, 말을 하는 입 모양을 유심히 보고 따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양육자가 직접 건네주는 말들이야말로 아기의 가장 큰 언어 자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직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맘마? 맘마? 배고파요?'

'덕순이 응가했어요?'

'안아? 안아? 안아줘?'

이런 단순한 말들이 대부분인 데다,

그렇다고 아기 앞에서 내 첫사랑부터 결혼까지의 대서사시를 읊는 것도 못할 짓이다.


그래서 노래는 참 유용하다.

적당한 음절에 재미있는 박자와 멜로디까지 갖췄으니 아기의 관심을 끌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쏘옥 쏙쏙-방울-빙글빙글-방울 여기저기 내 방울-'

덕순이 앞에서 튤립이 가르쳐주신 노래를 흥얼거리면 덕순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으며 나를 뚫어져라 본다.


가끔 한국말 노래에 흥미가 떨어지면 나는 영어 동요도 불러준다.

(우리 부모님의 피나는 노력으로 일찍부터 조기교육을 한 터라, 나는 영어 발음이 좋은 편이다.)

'The wheels on the bus go round and round-round and round-round and round-'

엄마의 발음이 좀 느끼해진 걸 알아차렸는지 덕순이는 또 나를 뚫어져라 본다.

덕순이가 영어를 벌써 유창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세상에는 다양한 말들이 있구나, 하는 정도만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둘째로 내가 직접 노래를 부르면 내 마음대로 가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나의 소중한 애청자 덕순이가 주인공이 되도록 바꿔주고 싶지만, 튤립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핑크 공룡 쿠쿠-핑크 공룡 쿠쿠- 쿠쿠는 쿨쿨-잠꾸러기-'

이 노래의 주인공은 쿠쿠지만 나는 이 노래를 배워서 덕순이에게 이렇게 불러준다.


'핑크 공룡 덕순-핑크 공룡 덕순- 덕순이는 쿨쿨-잠꾸러기-'

덕순이는 별안간 핑크색 잠꾸러기 공룡이 된 셈이지만, 나는 사랑하는 내 딸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불러주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열창한다.


이밖에도 덕순이의 테마곡은 여러 개가 있다.

모두 엄마 아빠가 사랑을 담아 주인공을 덕순이로 바꿔준 동요들이다.


'꼬라지-꼬라지-덕순이 꼬라지-

덕순이 꼬라지는 왕꼬라지-

엄마(2절은 아빠) 닮았네-'

송아지 노래를 바꾼 이 노래는 덕순이가 잠투정이 심할 때 (나와 남편은 이것을 꼬라지를 부린다고 말한다.) 불러주는 노래이다.

노래가 무슨 뜻인지 아는 건지 덕순이는 칭얼거리다가도 이 노래를 들으면 배시시 웃곤 하는데 그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덕순이는 나와 남편에게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아이다.

30년간을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 둘을, 결혼을 했어도 가족보다는 연인 사이 같았던 우리 둘을 진짜 가족이라는 특별한 인연으로 묶어준 첫 아이이기 때문이다.


'덕순아, 우리 한번 노래해볼까? 하나, 둘, 셋, 넷-'


그런 덕순이에게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닿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오늘도 덕순이의 손바닥에 내 엄지 손가락을 대어 본다.


덕순이가 내 엄지 손가락을 꽉 쥐면 나는 나머지 손가락으로 덕순이의 작은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박자에 맞춰 함께 손을 흔든다.




'달달 무슨 달-덕순이처럼 예쁜 달-

어디 어디 떴나-덕순이 위에 떴지'


따뜻한 겨울 햇살이 내려앉은 조용한 거실에 음정과 박자가 어딘가 이상한 엄마의 어설픈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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