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시금치를 싫어하는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

92년생 엄마의 장난감, 마지막 이야기

by 덕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이 맛있는 피자를 보면 어렸을 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어릴 때 이 피자 위에 있는 치즈를 몹시 싫어했다.

그래서 피자를 먹는 날이면 항상 치즈를 걷어내어 언니를 주고, 케첩이 묻은 피자빵만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치즈가 잔뜩 올라간 피자를 즐겨먹는다.


어디 피자뿐일까?


어릴 땐 휴게소에서 사 먹는 통감자와 맥반석 오징어 구이가 너무 싫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메뉴여서 휴게소를 들리면 늘 엄마가 사 왔는데, 그 냄새만 맡아도 비위가 상해서 헛구역질을 했다.

지금은 생각만 해도 신이 나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곁들이고 싶다.


그런가 하면 치킨을 먹을 땐 치킨 껍질을 다 발라내고 순살만 골라 먹었다.

바삭하고 짭조름한 껍질을 찾아먹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할 정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음식뿐 아니라 즐겨 읽는 책, 취미, 지식의 양, 생각하는 방식까지 모든 방면에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이란 말을 좋아한다.

오늘 좋아하는 음식이 어제는 싫었을 수도 있고, 또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은'이란 말 덕분에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덕순이가 앞으로 커가면서 내 바람과는 조금 엇나가더라도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예를 들자면 시금치를 싫어하는 덕순이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


'덕순이가 지금은 시금치를 싫어하는구나. 엄마도 어릴 땐 푸릇푸릇한 채소들이 너무 싫었어. 그런데 지금은 시금치가 너무 맛있는 거 있지. 우리 덕순이도 나중에 관심이 생기면 다시 먹어보렴. 그땐 좋아할 수도 있어.'


지금까지 쌓아온 우리들의 원칙이 흔들릴 때, '지금은' 그렇더라도 멀리 내다보며 마음의 여유를 가질 것.

이것이 우리들의 세 번째 원칙이다.




유튜브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재미있는 영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작은 스마트폰 하나에는 밤을 새도 모자랄 만큼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앞서 말했지만 내 바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순이가 미디어에 너무 현혹되지 않고, 본인의 주관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신없는 세상에서 덕순이가 온갖 유혹을 다 뿌리치고 엄마의 바람대로만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덕순이도 조금 더 크면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징징거릴 테고,

엄마가 잔뜩 모은 동화책들보다 만화책이나 웹툰을 더 좋아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선 유튜브의 존재를 최대한 늦게 알았으면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아이처럼 한글을 떼기도 전에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만화 영상을 찾아보는 경지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덕순이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했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는 그 순간이 되면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다.


'괜찮아. 나도 그랬는걸.'


나라고 항상 미디어에 휩쓸리지 않고 태평양 같은 평정심을 갖고 살아온 게 아니다.

오히려 덕순이게 바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좋은 책들과는 담을 쌓고 지낸 세월이 더 길다.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한글을 조금씩 알게 된 6살쯤에는 동화책이 무척 재미있었다. 지금 동화책들에 비하면 글도 많고 투박한 책들이었는데, 이땐 책을 읽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똑같은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엔 친구들과 놀지 않고 교실에 있는 책들만 읽느라 담임 선생님이 친구들과 나가 놀라며 책을 못 읽게 하신 적도 있었다.

(엄마는 그래서 내가 천재라고 아주 큰 오해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책을 사랑한 순간은 아주 짧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엄마의 치맛바람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나는 억지로 하는 공부에 진절머리가 나서 책조차도 싫어졌다.

엄마가 사다 놓은 역사 전집이나 동물과 식물 대백과는 책장에 그대로 먼지가 쌓이도록 꽂혀 있었다. 그 대신 동네 만화책방에서 빌려온 순정 만화책과 인터넷 소설을 쌓아 놓고 읽었다.

중학생쯤엔 그나마 책이라고 읽었던 만화책들을 뒤로하고 온라인 게임에 푹 빠져서 시험이 끝난 날이면 밤새도록 게임을 했다.

그러다 고등학생 무렵엔 게임이 흥미가 떨어지고, 엄마가 인터넷 강의를 들으라고 사준 PMP에 영화를 잔뜩 넣어서 야자 시간에 몰래 보았다.

그 후로도 참고서나 문제집을 빼고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서점을 들린 적은 손에 꼽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는 것처럼 밖에 나가면 항상 서점에 들러 책을 한참 고르고 골라 사는 지금의 나는, 불과 4년 전부터 변했던 것 같다.

거의 20년 동안, 책을 사랑했던 어릴 적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는데, 나이를 먹고 나니 특별한 계기가 없이도 자연스럽게 다시 책을 찾게 되었다.


어릴 적 싫어했던 시금치를 지금은 아무 이유 없이 잘 먹게 된 것처럼, 긴 시간 동안 책을 멀리했던 내가 지금은 아무 이유 없이 책을 즐겨 읽게 된 것이다.

아마도 아주 어릴 때 책을 사랑했던 기억이 남아, 가벼운 유흥거리에만 휩쓸려 떠다니던 나를 본래 방향으로 이끌어준 게 아닐까 싶다.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이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속도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덕순이에게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주는 북극성 같은 엄마가 되자 하고 다짐했다.


자극적인 미디어에 너무 이끌리지 말고, 여유를 갖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면서 정작 내가 여유가 없어져서 덕순이를 닦달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깟 하루 이틀 유튜브 좀 보았다고, 게임 좀 했다고 세상이 무너지고 인생이 망하는 게 아니다. 인생은 멀리 내다봐야 한다.


내가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모은 책들을 뒤로하고 덕순이가 게임에 푹 빠져있는 순간이 오면 나는 덕순이를 닦달하지 않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게임이 재미있나 보네. 엄마도 그런 적이 있었어. 하지만 가끔 생각이 나면 책을 다시 읽어보렴.

게임은 네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책은 너에게 생각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해줄 거야. 나중엔 엄마처럼 다시 책이 재밌어질 수도 있을 거야'


마치 지금은 싫더라도 나중엔 시금치가 맛있어질 수 있을 거라고 다독이는 것처럼 말이다.

keyword
이전 14화14. 위대한 튤립과 엄마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