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멀어진 수면교육, 남겨진 원초적 본능

멍청하고 부지런한 수면교욱, 두 번째 이야기

by 덕순


* 이 글은 수면교육의 단점을 파헤치고 수면교육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장문이 아닙니다. 세상에 100명의 아기가 있다면 아기를 재우는 100가지의 방법이 있고 그중 덕순이와 함께 했던 1가지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없고 다름만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던지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으니까요.


수면교육을 처음부터 포기해버리니 마음은 편해졌다. 옆 동네 아기가 3일 만에 성공해서 통잠을 잔다고 속상할 필요도 없었다. 난 시도도 안 했으니까

그 대신 나는 덕순이가 언젠간 잘 자겠거니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스무 살까지 엄마 옆에 자는 애는 없잖아. 우리 덕순이도 스무 살 전엔 혼자 자겠지.'

나는 이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렇다. 유난히 겁이 많아서 사춘기가 지나도록 엄마 옆을 못 떠났던 나도 스무 살 땐 혼자 잤고, 스물일곱 살 땐 자취를 해보겠노라 하고 독립을 선언했었다. 어차피 때가 되면 알아서 멀어질 우리 아기, 엄마 품이 좋다고 할 때 실컷 안아 보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상당히 혹독했다.




덕순이는 낮이고 밤이고 내 품에 안겨 잤다. 밤에는 다행히 깊게 잠이 들어서 숨죽이고 눕히면 그대로 잤지만, 낮에는 얕은 토끼잠을 자느라 자는 동안 절대로 눕힐 수가 없었다. 눕히는 시늉이라도 하면 눈을 번쩍 뜨고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때문에 나와 덕순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기띠로 함께 붙어있었다.


덕분에 나름 지적이고 우아했던 나의 일상은 원초적으로 변해갔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최소한의 생활도 누리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용변을 보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이 중 무엇하나 잠이든 아이를 품에 안은 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덕순이가 잠깐이나마 혼자 노는 시간에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는데, 엄마가 모든 용무를 마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기에는 덕순이는 너무 어렸다.


'미안해 덕순아. 엄마 잠깐만-!'

조용히 모빌을 보다가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트리는 덕순이를 뒤로하고 나는 좁은 집구석을 단거리 경주하듯 뛰어다니며 일처리를 했다.

밥은 늘 국에 말아 들이마셨고 용변을 볼 때도 최선을 다해(?) 빨리 끝내려고 애를 썼다.

인간적인 모습은 하나 없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우울해질 시간도 없었다. 덕순이가 허락해주는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코 자자 덕순아. 코-'

덕순이가 졸려서 잠투정이 시작되면 한참을 짜증을 내는데 나는 잠이 들 때까지 덕순이를 안고 둥가 둥가 해 주었다.

덕순이가 비로소 잠이 들면 그제야 나는 쉴 수 있었다. 사실 덕순이가 혼자 누워 잠을 잔다면야 그동안 밀린 용무들을 처리할 수 있으니 내가 집안을 뛰어다니며 허둥지둥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집 대장님께서는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포함해서) 늘 내 품에서 잠이 들었고, 그동안 나는 막상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었다.


아기를 안은채 할 수 있는 일은 핸드폰으로 노닥거리거나 TV를 보는 일 따위 들이었다. 다른걸 무언가 진득하게 하려 해도 아기가 깰 까 봐 할 수 없었다. 조용히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잡고 육아 동지들과 채팅을 하고 쇼핑을 하는 게 가장 최선이었다.


덕분에 내 하루는 굉장히 조여졌다 느슨해졌다를 반복했다.

덕순이가 일어나 혼자 노는 찰나엔 눈을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낮잠을 잘 때에는 핸드폰만 잡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덕순이를 안은 채 앉아서 그대로 졸았는데 차라리 잠을 자는 게 체력 보충이라는 면에서 더 의미 있어 보였다.


'네가 혼자서 잘 자준다면야 내가 그동안 화장실도 가고, 식사도 하고, 씻고 나와서 네가 놀 때 최선을 다해 옆에서 함께 놀아줄 텐데...

하지만 아직은 우리 아기가 혼자 자는 게 힘들구나.

혼자 잘 때까지 엄마가 옆에 있어줄게'

한바탕 회오리가 휩쓸고 간 것처럼 정신없었던 시간이 끝나고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집 안. 나는 내 품에서 그릉그릉 코를 골며 자는 덕순이를 쓰다듬었다.




수면교육을 멀리 하니 나는 자유를 잃었고 수많은 욕구들 중 가장 원초적인 욕구만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방해받지 않는 깊은 잠을 자고, 느긋하게 용변을 보고, 씻고, 여유로운 식사를 하는 것 따위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존을 위해 누리는 아주 당연한 것들.

하지만 나의 '멍청하고 부지런한' 육아를 하면서는 더 이상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고 나는 그제야 아기를 낳기 전에 누렸던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울함이 몰려왔다.

'원래 나는 삶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하고, 직장에서 나름 열심히 일하고... 대단하다 하진 못해도 똑 부러지게 살았었는데... 지금은 온통 먹고 자고 싸는 것만 생각하는구나.'

출산 후 너덜너덜해진 몸처럼 머릿 속도 단순해지다 못해 멍청해진 기분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너무 멀리 와버려서, 불과 일 년 전의 나를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내 품에서 자고 있는 사랑스러운 덕순이의 모습 덕분이었다.

새근새근 코를 골며 엄마 품 속을 파고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대로 시간이 영영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평생 덕순이가 내 품 안에서만 잠을 자진 않을 것이다.

때가 되면 알아서 혼자 잠이 들 테고, 또 나중엔 자기 방에서 혼자 자겠다고 선언을 하겠지. 그 '때'는 아기들마다 서로 다를 뿐, 반드시 온다.

그 '때'가 오면 나는 덕순이를 일찍부터 수면교육을 하지 못해 고생했던 것을 후회할까, 아니면 내 품을 떠났다는 아쉬움에 슬퍼할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일 것 같았다. 나는 덕순이가 말 그대로 스무 살까지 내 품 안에서 자다가 스물한 살에 이제부터 혼자 자겠노라 한다 해도, 아쉽고 슬퍼할 것 같았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고생했던 기억은 미화되어 추억이 되고, 돌이켜보면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 그리움에 사무치는 쓸쓸한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니 나는 아기띠에 묶여 덕순이와 한 몸이 된 이 순간이 몹시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 우리 딸도 언젠가 엄마 품이 좁고 답답해질 날이 오겠지? 혼자 잔다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 얼마나 서운할까?

덕순아, 스무 살까지 엄마 품에 자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 대신 우리 덕순이가 어른이 되면 덕순이가 엄마를 안아줘. 약속-'


내 품에 안겨 세상 모르게 깊은 잠이 든 덕순이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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